4차 한우파동...한우 할인판매가 최선일까
4차 한우파동...한우 할인판매가 최선일까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3.03.2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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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명품 한우, ‘할인판매’로 이미지 퇴색 우려

온‧오프라인 '잦은 할인'에 할인체감 효과 반감될 공산 커

위기의 한우산업, 해법은 없나[2]
지난 2월 농식품부, 농협, 한우자조금, 한우협회가 함께 진행한 '소프라이즈' 한우 할인판매 행사 모습.
지난 2월 농식품부, 농협, 한우자조금, 한우협회가 함께 진행한 '소프라이즈' 한우 할인판매 행사 모습.

[팜인사이트= 옥미영 기자] 

“싸게 팔 바엔 소각한다.”

영국의 명품 패션 브랜드인 버버리가 지난 2018년 의류‧액세서리‧향수 등 재고상품 2860만 파운드(약 422억원)어치를 폐기하면서 나온 말이다.

버버리는 재고상품이 싸게 풀려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8년까지 누적 5년간 우리 돈으로 약 1330억원에 달하는 상품의 폐기방식을 선택했다. 버버리뿐만 아니라 다른 명품 역시 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제품의 경우 할인판매가 아니라 회수해 소각하거나 버리는 방식을 택해왔다.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으로 명품브랜드들의 소각 관행은 중단되긴 했지만 “헐 값에 판매되면 브랜드 가치가 훼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며 고품격 이미지와 가격 유지에 사활을 건 명품 브랜드 주체들의 마켓팅 전략을 극명하게 나타낸 사례로 기록된다.

 

수급불균형으로 빛바랜 명품한우

소각해 없애는 것은 아니지만 한우산업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적절한 공급량 유지를 통해 제대로 된 가치와 가격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그것인데, 지난 2018년 한우협회는 농업계에선 생산자단체 최초로 선제적 수급조절 사업을 통한 장기적인 가격 안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농가가 십시일반 모은 자조금을 활용해 번식에 활용되는 암송아지를 비육용으로 전환함으로써 적절한 한우 공급량을 유지를 통한 한우의 가치, 가격을 유지해 나가자는 것이 취지였다.

한우협회의 제안으로 농식품부와 오랜 협상에 돌입하며 선제적 수급조절 사업은 실현되는 듯 했으나 사업승인까지 마친 정부가 돌연 미경산우 비육지원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서며 결국 ‘골든타임’은 놓치고 말았다.

당시 연간 1만두씩 두당 30만원의 미경산우 비육 지원(연간 예산 30억원)을 탐탁치 않아하며 수급조절사업을 관망‧방해했던 정부는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공급과잉의 상황을 수년이 지난 지금 수 백억원대의 할인판매지원금 등 가래를 총 동원해 막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우소비촉진, 할인판매에 ‘올인’

올해 한우 할인판매는 정부 및 한우업계가 당초 계획했던 것 보다 규모와 기간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우자조금 지원금은 91억원에서 무려 230억 늘어난 322억원으로 확대됐다. 늘어난 230억원의 절반 이상은 유통사 판매지원과 온라인 한우장터 등 할인행사에 쓰여질 전망이다.

할인판매에 투입된 정부의 지원금 증가 영향으로 지난해 이미 확정된 한우자조금 예산까지 최근 다시 재조정됐다. 기존의 유통사 판매지원 예산은 33억원에서 올해 130억원으로 약 1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이로써 할인판매는 올해 3월, 4월, 5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행사가 잇달아 예약되어 있다.

대신 각종 한우 온‧오프라인 광고와 농가의 역량 강화교육, 한우 농가의 교육 및 컨설팅 등 자조금 집행 주체별로 예산이 모두 감액‧조정됐다.

 

한우, 할인판매가 최선일까

“한우고기를 삼겹살이나 생닭 한 마리 가격으로 팔면 소비자들은 만족할까요?”

경북 의성에서 한우를 수십 년간 사육해온 조득래씨는 최근의 한우 할인판매와 관련해 이같은 소회를 피력냈다. 그는 한우 한 마리를 키워 출하하기 위한 30개월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이 ‘헐 값’에 판매되고 마치 떨이 처분되듯 저가에 할인판매되는 지금의 상황이 허탈하게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할인판매 효과는 소 값 지지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한우자조금 지원은 물론 농협 등 유통업체의 경우 할인판매로 인한 자체부담이 마리당 1백만원에 달하는 등 한우할인판매는 관련 업계의 고혈로 진행되고 있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지속되는 소프라이즈 행사 효과는 벌써부터 약발이 다한 듯 소 값 상승 효과로 이어지는데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도매시장 kg당 한우가격은 거세우 기준 kg당 1만 6천원선을 간신히 지탱하는 가운데 3월 중순 현재 평균가격은 1만5천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한우업계의 할인판매는 거의 연중 가까운 수준으로 진행될 예정에 있어 소비자들의 할인체감 효과는 갈수록 떨어질 공산이 크다.

다시돌아온 한우. 3월 24일부터 시작된 한우 할인판매행사의 홍보 전단.
다시돌아온 한우. 3월 24일부터 시작된 한우 할인판매행사의 홍보 전단.

잦은 할인판매, 소비자 가격 저항선 낮아질까 ‘우려’

마켓팅 전문가들은 할인판매와 관련한 가장 큰 부작용에 대해 ‘브랜드 가치 하락’을 꼽는다. 할인판매와 관련해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할인판매=팔리지 않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할인판매가 아니라 제품을 회수해 소각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선택한 명품브랜드들의 전략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할인판매 부작용은 이 뿐만이 아니다.

소비자의 가격 지불의향을 크게 낮춰 놓음으로써 할인판매가 아닌 정상적인 가격 판매 상황에서 가격 저항에 따른 소비절벽에 부딪칠 수 있다. 소비자의 낮아진 가격 지불 의향은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과 건강한 소비 생태를 무너뜨리며 할인판매 이후의 급격한 소비위축 등 부작용이 뒷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우고기의 가격에 대한 막연한 소비자 불신과 자조금이 투입되는 업종별 유통업체 사이의 형평성도 도마에 오른다.

잦은 할인판매로 인해 소비자들은 정상적인 한우고기 소매가격에 의문과 불신을 가질 수 있는 데다, 자조금 지원 등에서 배제된 소규모 식육마트와 정육점은 가격 경쟁력을 잃게 돼 다양하고 건강한 한우고기 유통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7일 열린 한우자조금 대의원 총회에서 당진의 한 대의원은 “한우자조금의 할인판매 지원이 대형마트에 집중되면서 소규모 정육점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다”라며 “한우고기 소매 유통의 한 축인 정육점들의 피해를 최소화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한 한우고기 할인판매 행사가 도매시장 구매 및 거래 활성화에 영향을 미쳐 한우고기 가격 지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 김형규 중도매인 조합장은 "대형 유통점들의 한우 할인판매 진행 기간 주변 상권의 정육점들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대기업에 집중된 한우 할인판매 지원금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암소 숙성기술 보편화하고 정육부위 조리법 다양화해야

한우가격이 좀처럼 반응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지금의 상황에선 할인판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소비 진작 수단이 없어 난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최근 가격 하락과 맞물려 출하물량 중 암소 비중이 증가하고 비선호 부위의 체화가 두드러지면서 한우 암소 및 정육 부위 소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안 마련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한우가격 하락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농가들의 암소 도축 및 출하물량 증가가 자칫 한우고기의 품질과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때문에 한우업계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할인판매를 수단으로 한 소비 촉진 방법에서 벗어나 한우 암소 및 정육 부위의 맛과 가치를 높일 숙성 및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해 새로운 소비 활성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우업계 한 전문가는 “암소 공급물량이 증가할 경우 거세우의 품질고급화로 쌓아온 한우고기의 맛과 품질의 차별화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면서 “한우 암소의 상품화를 위한 숙성기술을 대중화하는 한편, 사태와 정육 등 비선호 부위의 소비 다양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장기적인 한우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또 “도매시장 가격이 하락하면서 자체적인 할인판매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자조금의 재원을 할인판매에 올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면서 “축산물의 경우 생산비 비중이 높고 출하 기간이 긴 특성이 있는 등의 객관적 정보는 물론 한우고기 유‧무형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홍보해 소비자 인식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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