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77] 조선 초 60년간 중국에 보내진 마필수가 6만 6천두에 달했다
[59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77] 조선 초 60년간 중국에 보내진 마필수가 6만 6천두에 달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0.3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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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93호, 양력 : 10월 31일, 음력 : 9월 23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중국에 보내지던 사행(使行) 중 주로 말(馬)을 조공(朝貢)할 때 파송되는 사절을 관압사(管押使)라 하였습니다. 이들 관압사는 원칙적으로 해(亥), 묘(卯), 미(未)에 속하는 연도에 즉 4년에 1번 정조사(正朝使) 또는 동지사(冬至使)와 함께 보내졌으며, 조선에서 피로(被擄)된 중국인이나 일본인, 그리고 외교 사건의 연루자 또는 범죄자를 중국으로 압송할 때 파견되는 관송사(管送使)와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관압사는 정3품 이상의 문관 출신이 주로 선임되어 파견되었으나, 외교적 현안을 다루지 않을 때에는 무관(武官) 출신이거나 역학(譯學) 출신자 중에서도 선정되었으며, 처음에는 다른 사행과는 별도로 중국에 파견하였으나, 사신의 잦은 왕래로 사행하는 길 주변의 백성에게 끼치는 폐해가 커서 정조사와 함께 출행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초기 중국은 조선 왕실을 압박하여 말의 조공(朝貢)을 요구하였는데, 그때마다 조정에서는 말을 모집하고, 말을 바친 자에게 포상하는 정책인 납마(納馬)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납마제도는 후에 ‘납마사목(納馬事目)’이 제정되어 말을 모집하고, 자진하여 납부하는 사람에게 신분이나 말의 수에 따라 포상하는 규정으로 정비 되었습니다.

조선 개국이후 중국에 조공으로 보내진 말의 수는 기록에 따라 집계두수가 차이가 있으나 태조(太祖)대에 6천여 필, 태종(太宗)대에 2만5천여 필, 세종(世宗) 대에 가장 많은 3만5천여 필이 중국으로 보내진 것으로 집계되어 이 시기 60여 년간 6만6천여 필의 말이 중국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595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세종(世宗) 대에 6차분 말 1천 필을 감독하여 요동(遼東)으로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 9월 23일 신축 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좌군 사직으로 하여금 말 1천필을 요동으로 보내다

좌군 사직(左軍司直) 고기충(高奇忠)을 보내어 여섯 번째의 운(運)으로 말 1천 필을 감독하여 요동(遼東)으로 가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21권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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