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3] 지우려는 기록 上 - 서울특별시는 왜 양곡도매시장을 모른척 할까
[기획연재 3] 지우려는 기록 上 - 서울특별시는 왜 양곡도매시장을 모른척 할까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11.12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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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매인 허가를 내주지 않는 서울시의 속내
양곡도매시장 30주년 기념식 사진 모습.
양곡도매시장 30주년 기념식 사진 모습.

"서울특별시에 중도매인 허가를 요구해도 들어주질 않습니다. 저희 유통인들이 어떻게든 도매시장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쳐봐도 서울시는 묵묵부답입니다."

김진규 한국양곡유통협회장은 중도매인의 신규 허가를 위해 서울시를 노크했으나 번번히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고 말한다. 서울시 공무원은 “일정상 만나기 힘들다”고 회피하거나 “규정이 그렇다”며 원칙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담당자도 자주 교체돼 업무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게 김 회장의 전언이다.

양곡유통인들이 중도매인 허가를 늘려달라는 이유는 하나다. 중도매인 중 다수가 양재동 양곡시장 개장 시 유통업에 종사했던 1세대로 지금은 대부분 고령이기 때문이다. 세대교체를 위해선 서울시의 허가와 승인이 필요하며 도매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36명에 그치고 있는 중도매인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게 중도매인들의 판단이다.

중도매인 숫자 확보와 세대교체는 도매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다. 중도매인 수 확보로 출하자에게는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고 소비지의 다양한 판로를 개척해 농민들이 손쉽게 출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인들은 자신들의 사업영역이 겹쳐 경쟁이 심화되더라도 중도매인 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서울시가 도매시장 이전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염곡동 지역. 대상지는 자연녹지지역이며 개발제한구역과 공원이 인접해 있다. 도매시장 계획면적은 10,913㎡.
서울시가 도매시장 이전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염곡동 지역. 대상지는 자연녹지지역이며 개발제한구역과 공원이 인접해 있다. 도매시장 계획면적은 10,913㎡.

서울시는 이미 양곡도매시장 이전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서울 염곡동의 이전부지 매입을 추진할 자금까지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양곡도매시장이 서울에 양곡을 공급하는 비율은 5.3%로 낮은데다 (대내외 여건상) 성장하기 힘든 구조”라면서 “서울 전체의 종합적인 정책을 둘러봐야 하는 서울시로서는 토지 이용 효용성, 경제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도매시장 이전은) 생업이 걸린 유통인들과는 충분히 협의해야 할 부분”이라며 한발 물러서면서 “양재동 테크시티 사업이 2022년 착공 예정인 만큼 유통인들과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견을 좁혀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재 테크시티(Tech City) 사업이란 양곡도매시장이 위치해 있는 양재와 우면 일대에 R&D 연구소를 유치하는 등 이 곳을 R&CD 혁신거점으로 삼겠다는 서울시의 도시관리방안 계획 중 하나다.

서울시는 양곡도매시장이 수급조절을 통한 가격안정, 양곡거래 기준가격 형성 등 설립취지와 기능이 축소됐고 중도매인 고령화 등 양곡시장의 기능회복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양곡도매시장의 거래량과 거래금액은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해 양곡 거래물량은 2만4239톤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70%가량 축소됐고 거래금액도 1/4로 쪼그라들었다. 다만 농업계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양곡시장은 숫자로만 해석하면 안된다는 게 그들의 지적이다.

양곡시장에서는 양곡 가격을 매일 발표해 양곡 유통의 기준가격을 제시하고 있어 농민뿐만 아니라 유통업계의 참고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미곡과는 달리 잡곡의 경우 영세농민들이 다수 포진해 양곡시장 출하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양곡도매시장의 존재 이유로 꼽힌다.

서울시가 양곡 도매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도매시장은 서울에 양곡을 판매하고 있는 전통시장과 쌀상회 등 수많은 영세 소매유통과 유통채널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소상공인 살리기에 나선 문재인 정부와 발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곡도매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서울시가 협조해야 된다는 의미다.

한 유통전문가는 “두 차례의 양곡 시장 이전은 도매시장의 발전과 양곡 수급에 대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유통 상인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곡 시장 이전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양곡 유통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유통인들에게는 싼 시장사용료와 양곡유통의 랜드마크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인센티브가 양곡시장 이전을 위한 동력이 된 만큼 새롭게 양곡시장 이전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중도매인들에게 그만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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