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년전 오늘 - 축산 소식109] 어마(御馬)가 날뛰고 길들여지지 않아 다리를 저는 말을 탔던 세종
[587년전 오늘 - 축산 소식109] 어마(御馬)가 날뛰고 길들여지지 않아 다리를 저는 말을 탔던 세종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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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25호, 양력 : 12월 14일, 음력 : 11월 8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궁궐의 마구간인 내구(內廐)에서 관리하던 말을 내구마(內廐馬) 또는 내구 유양마(內廐留養馬)라 하였고, 이중에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나 군사 훈련을 할 때, 능행(陵幸)을 할 때와 같이 직접 말을 탈 때 제공되는 말을 어마(御馬) 또는 어승마((御乘馬)라 하였습니다.

왕조실록에 내구마에 대한 기록은 300여건으로 주로 사신이나 신하들에게 하사한 기록이 대부분이며, 임금별로는 세조(世祖) 다음으로 세종(世宗)대에 내구마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통상 내구마는 평상시에 내사복시(內司僕寺)에서 훈련시키고 관리하였는데, 세종(世宗)대에는 사복시(司僕寺)의 관원들이나 양마(養馬)하는 자들이 생마(生馬)를 길들인다고 내구마(內廐馬)를 함부로 타고 다니자 제조(提調) 외에는 특별한 교지가 아니면 타지 못하게 하였으며, 갑자기 수일동안 내구마 40여필이 죽자 다른 지역에서 말을 조련하게도 하였습니다.

특히 내구마가 훈련이 되지 않아 ‘말은 많으나 탈 만한 것이 없고, 의장(儀仗)을 갖추어서 행하면 놀라서 날뛰기 때문에, 근일에 밖에 나갈 적에는 다리를 저는 말을 타는 것은 길든 말이기 때문’이라며 죄인을 심문하고 탄핵하는 추핵(推劾)을 하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사냥하는 것을 보다가 대군(大君)중에 하나가 말을 달려서 사슴을 쫓는데 다른 사슴이 와서 받으면서 말에서 떨어지자 그 말은 발광하며 홱 도는 버릇이 있는 말인데 이러한 악한 버릇이 있는 말을 기른 사복 관리(司僕官吏)를 추문하라고 역정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냥을 위해 산을 감시하는데 큰 멧돼지가 화살에 맞고도 포위망을 뚫고 나와서 내구마를 들이받아 죽게 하자 해당 관원들의 죄를 다스리자는 대신들의 건의에 ‘뜻밖에 생긴 일이니 그 일은 거론(擧論)하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하였으며, 내구마 사양을 위해 경기(京畿)의 백성들이 생곡초(生穀草)를 수납하는 데 고생한다는 건의를 듣고 내구마의 사육두수를 절반으로 줄이기도 하였습니다.

587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내구마 1백 필을 감하게 하여 각 고을에서 바치는 고초(藁草)를 줄이도록 전지(傳旨)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 11월 8일 기사 기사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내구마 일백 필을 감하게 하다

명하여 내구마 1백 필을 감하게 하고, 이내 각 고을에서 바치는 고초를 감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54권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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