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로 내몰리는 축산업, 두달 후면 축산난민?
규제로 내몰리는 축산업, 두달 후면 축산난민?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1.23 0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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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협조 안되고 건축사무소는 상담 꺼려
현실과 동떨어진 법 시행에 축산농가 원성 ↑
26개 복잡한 관련법 적법화 걸림돌 ‘골머리’
2018년 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위기의 식량산업, 미(未)허가 축사 구제방안은?’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토론회에서 축산농가들이 미허가 축사 기한 연장과 특별법 제정 촉구를 외치고 있는 모습.
2018년 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위기의 식량산업, 미(未)허가 축사 구제방안은?’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토론회에서 축산농가들이 미허가 축사 기한 연장과 특별법 제정 촉구를 외치고 있는 모습.

앞으로 두 달 후면 가축분뇨법 시행에 따라 수많은 축산 난민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이하 가분법)이 올해 3월 25일부터 본격 시행돼서다. 이 법의 취지는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지만 광범위한 축사 규제로 수많은 축산농가가 강제 퇴출 공포에 신음하고 있다. 실제로 복잡한 관련법 때문에 지자체 행정에 혼란을 부추기고 농가들 스스로 학습하고 부딪쳐야 적법화에 대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는 게 현장 반응이다. 아예 적법화를 포기하고 정부의 강제 폐쇄 조치 등 행정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고령농들도 부지기수. 수 십 년간 축산업으로 생계를 이어온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적법화 의지 있어도 관련 지자체 ‘나 몰라라’
농가, 민간 설계사무소에 “공부해 달라” 호소

경기도에서 젖소 84마리를 키우는 이영병(53·김포)씨는 낙농가다. 그는 정부에서 가축분뇨법을 개정(2014년)할 때 김포에서 ‘서울우유 김포 낙우회’라고 하는 낙농가 단체장을 맡았다. 당시 미허가 축사 문제가 낙농가들의 주요 관심분야였던 만큼 축사를 적법화하기 위한 활동에 동분서주했다. 낙농가들은 적법화를 하기 위해 토지의 측량부터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농민 소유의 땅이 측량방식의 변화(GPS측량)로 실제 기준과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 소유의 구거(4~5m 폭의 개울)를 침범한 한 농가는 적법화에 애를 먹었고, 당시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미사용 구거의 경우 적극적으로 농가에 매각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라는 협조 공문을 지자체에 하달했다.

그러나 관할지역 지자체인 김포 농어촌공사를 찾아간 낙농가는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내용에 대한 사실을 해당 공무원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데다 알아본다며 시간만 끌 뿐 진척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적법화를 하기 위해 농가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지역의 건축설계사무소다. 축사의 건축과 증축과 관련 대행해 줄 전문기관이 이 기관뿐이지만 무허가 적법화와 관련해서 만큼은 상담조차 꺼린다.

복잡한 법률 문제를 해결하고 준공 승인까지 얻어내기에는 감당해야 할 인력과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농가들이 건축사무소에 가축분뇨법 개정안 서류를 직접 출력해 “공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이영병씨는 “정부에서 유예기간을 줬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손발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역에 수 십 개의 설계사무소가 있지만 농가의 요구에 응해주는 곳은 1~2곳 뿐이다. 이러한 현실도 모르고 법을 시행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가족농 꿈에…지자체 “폐쇄하라”는 답변만
지역마다 법 달라 혼선 자초 강력한 상위법 필요

적법화를 위해 지자체에 상담을 의뢰했지만 “폐쇄하라”는 답면만 돌아온다는 절규어린 호소도 있다. 지자체마다 조례에 따라 다른 기준을 내세워서다.

경남의 김영농(가명·61)씨 가족은 대대손손 돼지를 키우는 축산인이다. 아버지로부터 농장을 물려받아 42년째 줄곧 돼지만 키웠다. 김씨의 아들도 축산관련 대학에 입학해 농장을 이어갈 생각을 하고 있다.

1,500평 규모의 김씨 농장에는 돼지 3,500마리가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축산법에 따라 허가 등록도 받고 큰 돈을 들여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가축분뇨폐수처리장도 갖췄다. 최근에는 김씨 농장주변으로 도시화가 진행돼 인구유입이 늘어 도시민과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친환경 농장을 건설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3년전 무허가 축사 적법화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정부에서 ‘제대로 관리하겠구나’ 쯤으로 여겼다. 김씨가 적법화를 위해 지자체에 문의한 후 김씨의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지자체로부터 축사를 철거해야한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보전관리지역에 위치한 김씨의 농장은 건폐율 20%를 지키려고 했지만 2년전 바뀐 조례로 인해 그마저도 안되니 ‘폐쇄하라’는 답변만 돌아온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수 십 년간 돼지만 열심히 키워 온 사람한테 하루아침에 폐쇄하라니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니냐”면서 “정부에서 규제하기 전에 한발 나서서 대응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오히려 농민들을 일터에서 쫓겨나게 하는 게 사리에 맞느냐”며 반문했다. 이어 “경남의 다른 지역에서는 건폐율 20%만 지키면 허가를 내준다”며 “지역마다 다른 조례에 따라 적용하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미허가 유형·비용·절차 복잡 다양해
정부 “가분법 유예 힘들다” 원칙 고수

적법화가 불가능한 사례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많은 비용과 절차가 소요되는 것도 적법화가 늦어지는 이유다. 미허가 축사를 적법화하기 위해서는 이행강제금(규정을 위반한데 따른 비용), 측량비, 설계비, 환경컨설팅 비용 등이 필요하며 절차도 복잡해 이행강제금 납부, 측량, 자진신고, 설계, 건축물대장(가설건축물) 등재, 분뇨처리시설 설치 신고·허가, 축산업 허가(등록) 변경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무허가 축사의 유형도 다양하다. 건축허가/신고 및 용도변경, 배출시설 (변경)허가/신고, 가축사육제한구역, 건폐율 초과(가설건축물), 대지와 도로와의 관계, 대지안의 공지(이격거리 문제), 가축분뇨처리시설, 축사차양 및 축사간 지붕연결, 구거 및 국·공유지 문제 등 대표적인 유형만 따져도 9가지나 된다.

유예기간이 3년이나 됐음에도 불구하고 가축질병 등 축산업의 특수성으로 인한 시간부족도 이유로 꼽힌다. 2015년 3월 법 시행 후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가 ‘무허가 축사 개선 세부실시요령’을 발표했고 적법화 기간 중 AI와 구제역이 약 11개월 동안 발생해 전국의 축산이 올스톱됐다. 축산농가가 실제로 적법화 할 수 있었던 기간은 약 1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적법화를 하기 위한 현실이 녹록치 않음에도 정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농식품부는 가분법 유예에 대한 뚜렷한 입장표명 없이 농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만 밝혔고 환경부는 가분법 유예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송형근 환경부 물환경정책국장은 “악취로 인해 민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국민들의 생활 환경과 수질 보전을 위해서라도 적법화는 이뤄져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다만 “적법화에 노력하는 농가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가분법 유예와 관련해서는 1월말~2월로 예정된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소위원회의 '가축분뇨법 개정(안) 심사'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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