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년전 오늘 - 축산 소식] 제주도에 3만두의 말이 목양(牧養)되었고 도지사가 관리하였다
[587년전 오늘 - 축산 소식] 제주도에 3만두의 말이 목양(牧養)되었고 도지사가 관리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2.3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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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35호, 양력 : 12월 31일, 음력 : 11월 25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제주도는 태조(太祖)대에 제주목(濟州牧)을 설치한 이래 8도 체제가 확립되기 전에는 전라도 나주목(羅州牧)의 관할이었으나, 태종(太宗) 대부터는 제주목사가 전라도관찰사의 지휘, 감독을 받지만 제주 전역을 관할하였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국가에서 필요한 말을 확보하기 위해 해안가와 섬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해 운영하였는데, 목마장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둔(國屯)과 민간이 운영하는 사둔(私屯)으로 구분하여, 국용(國用)에 필요한 말은 국둔에서 길렀으며, 제주도 목장은 국내 최대의 목마장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국가에서 운영하던 목장의 관리를 관할하며 말의 번식, 개량, 관리, 조달 등을 맡아본 정6품 관직을 감목관(監牧官)이라 하였는데, 감목관은 각 도 관찰사의 지휘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에 있는 목장을 관할하였습니다.

통상 각 도의 목장에서는 암말 100필과 수말 15필을 1군(群)으로 편성하여, 1군마다 군두(群頭) 1명, 군부(群副) 2명, 목자(牧子) 4명을 배치하여 말을 관리하게 하였고 이들은 매년 85필 이상을 번식시키는 임무를 지녔으며, 매년 5월에 감목관(監牧官)과 안무사(按撫使)가 마필을 점고(點考)하고 문부(文簿)를 작성하게 하였습니다.

제주도의 목장에서는 많을 때는 2만~3만 필, 적을 때는 1만~2만 필의 말이 목양되었는데, 생산된 말은 주로 공마(貢馬)로 진상되었으며, 평년에는 세공마(歲貢馬)로 300필,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식년(式年)에는 300필을 추가로 진상하였으며, 세종(世宗) 대에는 제주의 국둔 마필 중 3세 이상 6세 이하의 새끼 없는 암말 500필을 색출하여 전라도 각 고을에 분산해 기르게 하다가, 농한기에 황해도 초도(椒島), 백령도(白翎島), 기린도(麒麟島) 등의 목장에 놓아기르게도 하였습니다.

587년전 오늘의 기사에는 제주(濟州)의 목장(牧場)은 좋은 말이 생산되는 땅인데, 수령(守令)들이 이 지방 사람을 따로 감목관을 임명해 놓으니 말을 기르는 일은 자기에게 관계가 없다고 여겨, 말의 번식(繁息)이 점점 예전과 같지 못하니, 수령에게도 감목관을 겸임하도록 하여 함께 말 기르는 일을 살펴서 번식하게 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 11월 25일 병술 기사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제주의 수령에게 감목관을 겸임하도록 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제주(濟州)의 목장(牧場)은 좋은 말이 생산하는 땅인데, 수령들은 생각하기를, 이미 본지방 사람으로써 감목관을 임명해 놓으니 말을 기르는 일은 자기에게 관계가 없다고 여겨, 일찍이 마음을 쓰지 않았으므로 말의 번식(繁息)하는 것이 점점 예전과 같지 못합니다. 지금부터는 수령에게도 감목관을 겸임하도록 하여 감목관과 함께 말 기르는 일을 살펴서 번식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7책 54권 2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