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 “알밤 먹는 닭이 낳은 계란입니다”
[기획1] “알밤 먹는 닭이 낳은 계란입니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1.23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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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축산에 도전장 낸 동물복지 계란 청년 농부
김범 대표는 젊다. 직장인이라면 신입사원 나이인 32세. 한 농장의 어엿한 대표가 된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취업을 걱정하는 여느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밤나무를 키우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산림과 축산을 융합한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범 대표는 젊다. 직장인이라면 신입사원 나이인 32세. 한 농장의 어엿한 대표가 된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취업을 걱정하는 여느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밤나무를 키우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산림과 축산을 융합한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보늬숲밤농장 김범 대표(32)는 닭을 키운다. 보통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들은 수십 만수 이상을 가둬 키울 수 있는 대형 농장을 가지고 있다. 산업화 이후 정부가 생산성을 강조하며 몸집을 불려온 결과다.
 
반면 김 대표의 농장은 단출하다.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도 없다. 닭들은 옹기종기 모여 모래 목욕을 즐긴다. 양계장이라고 하기엔 치열함이 없고 취미라고 하기엔 제법 수가 많다.
 
김 대표 농장의 닭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건 다름 아닌 밤나무다. 닭들은 밤송이를 피해 산 전체를 안방 삼아 휴식을 즐긴다. 스트레스 없는 환경은 닭들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저만치 물러서게 해준다.

 

밤나무 숲에서 뛰어놀고 있는 닭
밤나무 숲에서 뛰어놀고 있는 닭

최근 친환경 농업, 방목 축산이 주목받고 있다. 계란에 살충제가 검출된 이후 소비자들은 식품안전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좀 더 안전한 축산물, 충분한 휴식을 즐기고 동물 본연의 삶을 사는 일명 ‘착한 식품’을 찾는 건 소비자의 권리다.
 
김범 대표가 생산하는 계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납품 요청이 올 정도로 김범 대표의 농장에서 나오는 계란은 ‘인기 만점’이다. 그의 농장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탐낼 만도 하다.
 
김범 대표는 “처음 양계업을 시작할 때 병아리가 많이 죽었다”면서 “관행 사육이 아닌 자연에서 키우다 보니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산란계 농가로의 변신
토종닭부터

 

보늬숲밤농장
보늬숲밤농장

김범 대표가 자신감을 얻고 산지 양계를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는 산림 업계의 지원 덕택이다. 과거 부처 간 협력과제로 산림과학원과 축산과학원이 산지 축산 연구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하면서 김범 대표 농장에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김 대표는 수십 년간 밤농사를 지어온 아버지의 도움과 대학 때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연구과제에 참여했다.
 
시작은 토종닭부터였다. 토종닭은 일반 육계(닭고기용)나 산란계와 달리 자생력이 강해 사육이 수월하다. 정부에서 닭을 공급했고 김 대표 농장에 맞는 사양기술을 지도했다. 김 대표는 정부 과제를 계기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닭 사육에 대한 노하우를 쌓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닭을 출하할 때 어려운 점도 많았다”면서 “당시 AI가 발생해 축산과학원에서는 산림축산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듬해부터는 닭과 병아리를 직접 구매해 방목으로 키워 출하했고 진천 도축장에서 도축을 한 후 진공포장을 해 판매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가축사육농가들은 특정 시기에 수익이 집중된다. 한우는 설과 추석인 양대 명절, 돼지는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행락철, 육계는 복날을 앞둔 시점에 소비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연중 수익이 발생하는 계란으로 눈을 돌렸고 2016년 3월 산란계 병아리를 입식하면서 산란계 농가로 변신한다.

 

밤나무 부산물 사용해
간식으로 활용

 

알을 품고 있는 닭
알을 품고 있는 닭

보늬숲밤농장의 닭들은 면역력이 강하다.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고 모래 목욕을 하는 등 동물복지의 최적지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만 9,834㎡(약 6,000평)의 임야에 196㎡(약 59평))의 고정 축사를 짓고 펜스를 둘러 농장을 구성했다. 모두 1,200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으니 1마리 당 약 16평이 넘는 실외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동물복지 마크를 받기 위한 조건인 실외 방목장 1.1㎡를 훨씬 뛰어넘는다.
 
김 대표는 또 이동식 미니 축사와 물 급유기를 설치하고 닭들이 편안하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으며 면역력이 약한 병아리들은 양계장 안에서 키운 뒤 일정 정도 크면 산에 방사한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밤나무에서 생산되는 부산물도 활용한다는 점이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밤 중 상품성이 없는 벌레 먹은 밤을 활용해 미강(쌀겨)과 미생물을 버무려 발효한 뒤 간식으로 먹인다. 달짝지근한 밤이 유산균, 바실루스, 효모 등과 섞이며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한 간식으로 탄생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자유롭게 물을 먹고 있는 닭들
자유롭게 물을 먹고 있는 닭들

친환경이 발달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낮다. 인증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부족한데다 아직 그만한 가치를 지불할 만한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긴 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친환경 생산이 현실적으로는 힘들다"라며 “일단 관행적으로 생산한 상품과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아 생산자들이 굳이 친환경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소비자들도 산림의 가치와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림축산은 축산업계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관행 축산에 지친 농민과 다원적 가치를 알아봐 주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고 있어서다. 계란 살충제 사건은 이런 분위기의 발화점이 됐다. 김 대표는 안심하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계란을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복합 농장을 구상 중이다.

 

계란을 수거하고 있는 김범 대표
계란을 수거하고 있는 김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