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가
[기자수첩] 누가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2.03 2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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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차다. 텐트가 서걱서걱 찬바람을 막는다. 농성장의 텐트가 바람은 막지만 한 겨울의 냉기는 텐트벽면을 타고 그대로 안으로 쏟아져 내린다. 차가운 공기는 다시 들숨으로 데워 뜨거운 입김으로 나온다. 영하 15도를 강타하는 추위가 매섭다. 입김조차 얼 지경이다. 새벽녘에는 더하다. 오리털파카조차 온기를 잡아두지 못한다.

한겨울, 축산인들이 아스팔트로 나왔다.

가축분뇨법으로 인해 그들의 터전이 철거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법에 맞추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생떼가 아니다. 기간이 더 필요하고 특별법도 필요하다. 26개의 관련법을 지켜내라는 건 지나치다. 법의 무리함을 설명하고 요구해도 들어먹질 않는다.
그래서 거리로 나왔다.

농성과 시위에도 질서는 있다. 오늘 당번은 한우와 사슴이다. 농성장은 순번제로 돌아간다. 내일은 젖소와 육계, 모레는 양계와 토종닭. 이런식이다. 2인 1조로 축종별 단체장들이 농성장을 지킨다. 굳이 길바닥으로 나온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문득 과거가 궁금했다. 지금의 축산 단체장들을 처음 본 건 6여년전 시위 현장에서였다. 당시 그들은 트럭위에 몸을 맡기고 깃발을 들었다. 다른 한손에는 마이크, 머리에는 빨간 끈을 질끈 동여맸다. 끈에는 ‘FTA 반대’가 새겨져 있었다.
 
“이러다 시위꾼 되시겠어요.” 라는 농담에 “국가가 그렇게 만드네요.” 라고 답한다. “추운 날씨에 축산인들 기세가 꺾일까 걱정”이라 덧붙인다. 축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축산 농가수는 수 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또 쪼그라들 위기다. 그래서 한숨의 깊이가 다르다.

유일하게 농업을 밑천으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다. 그도 축산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김영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독히도 미움 받았다. 배신자라는 낙인도 찍혔다. 그런 그도 가축분뇨법은 괴물법이라 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법이라 사족까지 달아가며 구구절절 설명했다. 축산업에 조금이라도 애착이 있으면 가축분뇨법은 논쟁거리조차 안된다.

축산은 항상 미운털이 박힌다. 지역에선 각종 분뇨와 악취로 눈총을 받는다. 비인도적으로 키운다고 욕도 먹는다. 그래서 축산을 하면 눈치만 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미FTA체결 때는 관세 양보로 철강과 자동차 협상에 지렛대가 됐다. 규모화의 영향도 있지만 축종을 가리지 않고 축산 농가수가 심각하게 줄어든 이유다. 먹거리 산업 종사자가 반토막 났다는 사실은 누구도 귀를 기울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기는 좋아해도 축산은 싫다는 국민이 많다. 값싼 고기는 먹고 싶어도 한 농장에 수 만 마리의 밀집사육은 싫다는 이도 있다. 아이러니다. 축산 딜레마의 스타트라인은 항상 이 지점이다. 축산인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도 혐오에서 시작됐다. 혐오는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낙인찍고 법과 제도는 그들에게 폭력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수 십 년동안 축산진흥 정책을 펼쳐왔다. 국민들에게 좋은 단백질을 공급하는 데는 고기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농가들에게 ‘효율’을 따졌고 ‘물가안정’을 강요했다. 잘, 싸게만 키워내면 그만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풍족한 시대다. 사회는 또 다시 그들에게 요구하고 희생을 강요한다. 유대감은 사라졌다.

그들이 거리로 나온걸까. 사회가 그들을 내몬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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