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42] 한 해의 마지막 날 행하는 나례(儺禮)에는 수탉(雄鷄)을 잡아 땅에 묻었다
[53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42] 한 해의 마지막 날 행하는 나례(儺禮)에는 수탉(雄鷄)을 잡아 땅에 묻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2.0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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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58호, 양력 : 2월 1일, 음력 : 12월 27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한 해의 마지막 달인 섣달(季冬) 마지막 날에는 궁궐과 민간에서 사신(邪神)과 역질(疫疾)을 쫓는 의식을 행하였는데 이를 나례(儺禮), 또는 대나례(大儺禮), 대나(大儺)라고 불렀습니다.

통상 섣달은 28수의 별자리 중 허수(虛宿)와 위수(危宿)를 지나는 시기로, 허수와 위수는 재앙과 불운 그리고 죽음을 가져다주는 별로 음기가 강해져, 이 시기에 대나의식과 희생(犧牲)을 신에게 바쳐 음기를 제거하는 방책(旁磔)을 행하여 재앙과 질병을 물리쳤습니다.

대나례는 천문을 관측하고 역서(曆書)를 발간하며 시간을 알려 주는 등의 일을 담당하던 관상감(觀象監)의 주도로 연행되었는데, 한양 사대문 안인 광화문(光化門) 및 흥인문(興仁門), 숭례문(崇禮門), 돈의문(敦義門), 숙정문(肅靖門)에서 행하였으며,

나례의 행렬은 4대(隊)로 나누어 각 대마다 역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방상씨(方相氏)가 1인, 진자(侲子)가 12인, 집편(執鞭)이 5인, 노래 부르는 자(唱帥), 몽둥이를 든 자(執棒), 징 연주자(執錚), 북 연주자(執鼓), 피리(吹笛) 연주자 각각 1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매 대마다 횃불(炬)을 가진 10인이 앞에서 행진하였습니다.

또한 대나의 절차는 관상감이 역귀를 몰아내는 나자(儺者)를 거느리고 새벽에 근정전(勤政殿) 문 밖으로 나가면 승지(承旨)가 역귀(疫鬼)를 쫓을 것을 고한 뒤에 궐 안의 한 사람이 선창하면 다른 사람이 따라 대답하였으며, 요란하게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며 횃불 행렬이 함께 광화문으로, 사대문 밖으로 몰아내었습니다.

제레(祭禮)는 먼저 봉상시(奉常寺)의 관원이 돗자리를 깔아 놓고 제관과 관원이 북향하고 있다가 재배한 뒤에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은 뒤 다시 재배하면 나자가 나올 무렵에 반드시 수탉(雄鷄)을 잡고 술을 부어 제사를 마친 뒤 제물을 땅에 묻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나 의식은 민간에서도 연행되었는데, 푸른 대나무 잎과 박태기 나무(紫荊) 가지, 익모초 줄기, 동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합하여 만든 액막이용 빗자루와 북(鼓)과 방울을 가지고 창문과 문지방을 두드리면서 매구(枚鬼)를 쫓아낸다고 말하며 문 밖으로 쫓는 시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36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대궐 뜰에서 나례(儺禮)를 베푸니, 임금이 이를 야밤중(夜分)까지 구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91권, 세종 22년 12월 27일 병신 기사 1440년 명 정통(正統) 5년

대궐에서 나례를 베풀다

대궐 뜰에서 나례(儺禮)를 베푸니, 임금이 이를 구경하여 야밤중(夜分)까지 이르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91권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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