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51] 정월 보름날 북극성에 지내는 제사에는 호랑이, 표범 모양의 연등을 달았다
[60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51] 정월 보름날 북극성에 지내는 제사에는 호랑이, 표범 모양의 연등을 달았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2.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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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67호, 양력 : 2월 19일, 음력 : 1월1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도교(道敎)에서 일년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3번의 보름날은 음력 1월 15일, 음력 7월 15일, 음력 10월 15일로, 이들을 각각 상원일(上元日), 중원일(中元日), 하원일(下元日)로 칭하며 통칭하여 삼원일(三元日)이라고 하였는데, 이 날에는 천상의 선관(仙官)이 1년에 3번 선악을 살펴 그에 따라 장수와 화복을 주는 날로 여겼습니다.

특히 상원일에는 천관(天官)이 복을 내려주고, 중원일에는 지관(地官)이 죄를 구해 주며, 하원일에는 수관(水官)이 액운을 막아 주는 날이라 하여, 이 날이 되면 각종 도교 행사는 물론 음식을 차리고 별이 뜬 시각에 하늘을 향하여 무언가를 비는 의식인 초례(醮禮)를 행하여 신에게 축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초례에는 옥황상제를 뜻하는 천황(天皇), 북극성의 신명(神名)인 태일(太一), 이십팔수 별자리 중의 하나로 남방주작 7수(宿) 중 네 번째 성수(星宿) 등을 숭배 대상으로 하여 천황초(天皇醮), 삼계초(三界醮), 태일초(太一醮), 북두초(北斗醮), 남두초(南斗醮), 본명초(本命醮) 등이 거행되었으며, 이러한 초례의 목적은 풍우(風雨)의 순조, 자연재해의 종식, 기곡(祈穀), 구병(救病), 임금의 장수와 안녕 등을 기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삼원일 중 가장 중요시되고 행사가 많은 날이 상원(上元)인 정월 대보름으로, 이 시기는 농사철로 접어드는 때이며, 마을 공동으로 동제(洞祭)와 각종 놀이가 펼쳐졌고, 대표적인 민속 풍속 중에 보름날 전날 밤에 잠을 자지 않는 ‘보름밤 지키기’라는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 풍속은 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하여 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만약 자는 사람이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놓았는데, 이 날이 천관(天官)이 내려와 인간의 잘잘못을 따져서 수명을 결정하는 날로, 잠을 자지 않으면 천관이 인간의 잘못을 따질 수 없게 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도교의 풍습이었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절식(節食)으로는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었으며, 기풍, 기복행사로는 볏가릿대(禾竿) 세우기, 복토(福土)훔치기, 다리 밟기 등을 행하였고, 그해 농사의 풍흉(豐凶)을 알아보려고 치는 농점(農點)으로서는 달집태우기, 집불이, 소밥주기, 닭울음점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각종 제의(祭儀)와 놀이로는 지신밟기, 별신굿, 안택고사, 기세배(旗歲拜), 쥐불놀이, 사자놀이,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었으며, 고싸움, 나무쇠싸움 등 각종 편싸움, 제웅치기, 나무조롱달기, 더위팔기, 개보름쇠기, 모기 불놓기, 방실놀이등의 액막이와 구충행사(驅蟲行事)도 행하여졌습니다.

조선 초기 왕실에서도 삼원일에는 정기적으로 초례가 거행되었는데,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인 삭망(朔望)에 거행하던 것을 삼원일과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인 사립일(四立日)에 태일초(太一醮)를 거행하도록 하였으며, 초례를 거행하기 위해 연등을 대궐 안에 설치하면서 등 모양을 용(龍)이나 봉황(鳳凰)은 물론 호랑이, 표범 등의 모양으로 만들어 달았습니다.

607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상원일(上元日)에 궁궐에서 태일(太一)을 제사지내기 위하여 연등을 달았는데, 왕실에 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던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에서 용봉(龍鳳), 호표(虎豹)의 모양으로 섞어서 각각 만든 종이 등(燈) 5백 개를 바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종실록 23권, 태종 12년 1월 15일 경자 기사 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상원일에 태일을 제사지내기 위한 연등을 대궐안에 설치하다

금중(禁中)에 등(燈)을 매달았으니, 상원일(上元日)에 태일(太一)을 제사지내기 때문이었다. 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에서 각각 종이 등(燈) 5백 개를 바치고, 또 용봉(龍鳳)·호표(虎豹)의 모양으로 섞어서 만든 것이 또한 많았다. 처음에 임금이 15일에 등(燈)을 달고자 예조 참의(禮曹參議) 허조(許稠)를 불러서 고전(古典)에 상고하고 하윤(河崙)에게 물어서 아뢰도록 하였다. 허조(許稠)가 아뢰었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상고하여도 없고, 오직 전조(前朝) 때 상정례(詳定禮)에만 나와 있는데, 그 기원(起原)은 한(漢)나라에서 태일(太一)을 제사지냄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윤(河崙)도 또한 성인(聖人)의 법이 아니라고 말하니, 정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

임금이 말하였다. "삼대(三代) 이후로는 한(漢)나라나 당(唐)나라와 같은 것이 없다. 경은 한나라 제도를 본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하니, 허조가 대답하였다. "신은 원컨대, 전하는 반드시 삼대(三代)를 본받고 한나라·당나라를 본받을 것이 족히 못됩니다."

임금이, "그렇다면 예조에서 반드시 상정(詳定)하여서 아뢸 것이 없다. 내가 궁중에서 또한 행하겠다."

하고, 내자시·내섬시에서 각각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삼원일(三元日)에 연등(燃燈)하는 것을 대략 사림광기(事林廣記)에 모방하여 되도록 간이(簡易)한 데 따르고, 용봉(龍鳳)·호표(虎豹)의 괴이(怪異)한 모양을 만들어서 천물(天物)을 지나치게 허비하지 말라."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 윤회종(尹會宗)이 나와서,

"궁중에서 연등하는 것이 성인의 제도가 아니니, 원컨대 파하소서."

하니, 임금이 "내가 연등의 행사를 크게 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궁중에서 잠깐 시험하는 것뿐이다."

하였다. 하루 앞서 임금이, "상원(上元)에 연등하는 것이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폐할 수는 없다."

하고, 비로소 북쪽 궁원(宮苑)에서 연등하는 것을 구경하고, 등(燈)을 만든 장인(匠人) 26인에게 사람마다 쌀 1석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4장

【주】삼원일(三元日) : 상원(上元)·중원(中元)·하원(下元)을 가리킴. 상원은 음력 정월 보름날, 중원은 음력 7월 보름날, 곧 백중(百中)날, 하원은 음력 10월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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