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53] 중앙부처 소속의 말 안장(鞍子)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이 있었다
[60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53] 중앙부처 소속의 말 안장(鞍子)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이 있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2.2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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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69호, 양력 : 2월 21일, 음력 : 1월17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공조(工曹)에 소속되어 말 등위에 얹는 안장(鞍裝)을 만드는 장인(匠人)을 안자장(鞍子匠) 또는 안장장(鞍粧匠)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주로 관부(官府)에 소속되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을 제작하던 일을 전업으로 하던 장인인 경공장(京工匠)으로,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안장을 만들거나, 외국 사신에게 줄 안장을 만들었습니다.

지방에도 안자장이 있었으나 이들은 지방 관청에 소속되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의 제작을 하는 외공장(外工匠)은 아니었으며, 다만 중앙에서 안장 제작이 필요하면 한양으로 불려가서 작업을 하면서 매일 임금으로 목수(木手)의 보다는 낮지만 기와를 다루는 개와장(蓋瓦匠) 수준의 임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안자장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공조(工曹)에 공식으로 소속되어 있는 인원은 10명으로 되어 있으나, 안장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사장(私匠)인 안자장외에 가죽 제품을 만드는 한양의 주피방(周皮房)의 피장(皮匠)도 안장을 만들었으며, 여러 장인이 안장을 만드는데 참여하여 은(銀) 장식품을 만드는 야장(冶匠), 가죽을 만드는 피공(皮工), 목재 틀을 만드는 목안휘항장(木鞍揮項匠) 등도 제작에 참여하였고, 안장 외에 악기 제작은 물론 각종 행사에 필요한 안장도 제작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임금의 말 안장은 어안(御鞍)이라 하여 임금이 타는 어승마(御乘馬)와 궁궐 안의 마구간인 내구(內廐)를 담당하던 내사복시(內司僕寺) 소속으로 왕실의 가마(輦)와 안장(鞍)을 담당하던 별도의 정3품아문의 관청인 덕응방(德應房)이 관리하였는데, 어안의 밑에 까는 땀갈이(汗替)의 가장자리인 연식(緣飾)은 염소 가죽인 전피(甸皮)를 사용하지 않고 소나 말가죽으로 대신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진상(進上)하는 안자(鞍子)는 금은(金銀)의 장식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말안장 아래를 덮는 녹색의 방석이나 담요인 녹색첩(綠色䩞)은 정2품 이상의 당상관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장(國葬)의 발인(發靷)이나 능(陵)·원(園)·묘(墓)를 천릉(遷陵)할 때에 동원하던 의장 반차(儀仗班次)에서 붉은 색 자수(紫繡)를 놓은 안장(鞍裝)이 장착된 말은 자수안마(紫繡鞍馬) 또는 홍수안마(紅繡鞍馬)라고 불렀으며, 청색 청수(靑繡)를 놓은 안장(鞍裝)을 장착한 말은 청수안마(靑繡鞍馬)라고 불리었습니다.

600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사헌부(司憲府)에서 주홍색 비단으로 말의 안장을 꾸미는 것을 금지하게 하여 달라고 청하자 그대로 시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3권, 세종 1년 1월 17일 임술 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주홍색 비단으로 말 안장 꾸미는 것을 금하다

사헌부에서 주홍색 비단으로 말의 안장을 꾸미는 것을 금지하게 하여 달라고 청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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