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56] 살아있는 기러기(雁)를 전담으로 잡아 나라에 바치는 생안간(生雁干)이 있었다
[59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56] 살아있는 기러기(雁)를 전담으로 잡아 나라에 바치는 생안간(生雁干)이 있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2.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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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72호, 양력 : 2월 26일, 음력 : 1월 22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기러기(雁)는 계절마다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 물고기와 날짐승 등을 종묘(宗廟)에 올려 감사의 뜻을 표하는 천신종묘의(薦新宗廟儀)에 쓰는 물목(物目)으로 사냥이나 지방에서 진상(進上)을 통해 조달하였으나, 사신의 접대와 종재(宗宰)에게 식사 등의 일을 관장하던 예빈시(禮賓寺)에서 직접 기르기도 하였으며, 왕조실록에는 160여건의 기사가 등재되어 있습니다.

기러기는 한자로 보통 안(雁)이 가장 많이 쓰였고 실록에는 홍(鴻), 홍안(鴻雁), 주조(朱鳥)등의 표기도 있으며, 이외에 양조(陽鳥), 옹계(翁鷄), 사순(沙鶉), 육루(鵱鷜), 상신(霜信), 매매(䳸䳸)등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임금 대 별로 제례나 예식과 같은 의례 이외에 주요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종(太宗)대에는 강원도 평강현(平康縣)에 우박이 5치 가량 내려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뜻하는 홍안(鴻雁)이 맞아 죽은 적이 있으며, 임금이 동교(東郊)에서 매사냥(放鷹)하는 것을 구경하고 고니인 천아(天鵝)와 기러기, 꿩을 잡아서 덕수궁(德壽宮)과 인덕궁(仁德宮)에 바쳤다 하였고, 왕실용 가축을 기르는 전구서와 예빈시에서 기러기 외에 염소(羔),양(羊), 돼지(唐猪), 오리(鴨), 닭(鷄) 등을 사육하는데 쌀과 콩이 너무 많이 드니, 당시 가축 사양 지침서인 농잠집요(農蠶輯要)에 의하여 양사(養飼)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특히 황해도 풍천군(豐川郡) 사람 중 신분은 양인(良人)이나 노비와 같은 천역(賤役)을 지고 있는 신량역천(身良役賤)으로 나라에 산 기러기를 잡아 바치는 일을 맡아 보던 진상 생안간(進上生雁干)이 해마다 봄·가을로 각관(各官)에서 주로 진상(進上)하는 물건을 마련하는 일을 맡아 보는 산접간(散接干)과 각호(各戶)를 횡행(橫行)하며, 나라에서 관리하는 곳간인 공름(公廩)을 허비한다는 보고가 있자, 모조리 추고(推考)하여 군역(軍役)에 붙이도록 하게 한 바도 있습니다.

세종(世宗)대에도 경기 철원 일대와 함길도 함흥에서 큰 우박이 내려 기러기들이 맞아 죽은 기록이 있으며, 임금의 형(兄)인 양녕대군(讓寧大君)에게 기러기 외에 오리 및 매 일련(一連)을 내려 주었고, 예빈시 정6품 벼슬관리인 우정언(右正言)이 양(羊), 돼지, 기러기, 오리의 사료(飼料)를 지급하면서 쌀 10석(石)을 함부로 내어 준 것이 들어나, 사헌부에서 논죄(論罪)하기를 청하니 속형(贖刑)으로 속장(贖杖) 90도에 처하도록 특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태조의 비(妃)인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를 모신 사당인 문소전(文昭殿)과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인 광효전(廣孝殿)에는 노루, 사슴, 기러기, 오리 등의 진상을 모두 바치지 말라고 명한 기록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실록의 기록 외에도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기러기 기름(雁肪)은 팔다리와 몸이 쑤시고 무거우며 마비가 오는 풍비(風痺), 힘살이나 힘줄이 오그라들고 당기면서 뻣뻣하여지는 증상인 연급(攣急), 한쪽이 마비가 오는 반신불수인 편고(偏枯)등으로 기(氣)가 통하지 않는 것을 다스리고, 머리털, 수염, 눈썹을 기르고 근육이나 뼈를 장하게 하며, 살코기는 모든 풍(風)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후기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기러기가 추우면 북으로부터 남쪽을 찾고 더우면 남으로부터 북안문(北雁門)에 돌아가니 신(信), 날을 때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예(禮),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자되 하나가 순경하고 낮이 되면 갈대를 머금어 화살을 피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고마움과 공경의 뜻으로 보내는 물건인 예폐(禮幣)하는 데 쓰인다고 하였고,

이러한 뜻에서 유래하여 혼인예식에서는 신랑은 신부집에 이르러 혼례의 첫 의식으로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신부 집에 전하는 전안례(奠雁禮)를 행하며, 남의 형제(兄弟)는 기러기가 의좋게 나란히 날아다니는 데서 유래하여 안행(雁行)이라고 하였습니다.

598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예빈시에서 양, 돼지, 닭, 오리 외에 당기러기(唐雁) 등을 홍제원동(洪濟院洞)의 수연(水碾) 과 서강(西江)의 잉화도(仍火島) 등에서 길렀는데 잘 자라지 않으니 수초(水草) 가 좋은 곳에다가 옮겨 기르자는 보고를 하자 그대로 시행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 1월 22일 을유 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예조에서 예빈시 보고에 의거하여 동물 사육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예빈시(禮賓寺)의 보고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양·돼지·닭·오리·당기러기(唐雁)등은, 전자에는 수연(水碾, 홍제원동 洪濟院洞) 과 잉화도(仍火島, 서강 西江)등에 나누어 길렀는데, 권지 직장(權知直長)을 정해 보내어 감독하여 기르게 하였으나, 마음을 써서 먹여 기르지 아니하므로 양과 돼지가 날로 파리하기만 하오니, 수초(水草) 좋은 곳에다가 전구서(典廐署)의 전례에 의하여, 관청을 짓고 본시(本寺) 관리를 나누어 보내서 감독하여 기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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