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위한다던 농진청 업계 눈치만 '살살'
농민 위한다던 농진청 업계 눈치만 '살살'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3.14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맹독성 피마자박 농민 피해 우려 뻔한데
검토 끝낸 비료공정규격 고시 앞두고 '올스톱'
관련 보도에 "의견 수렴한다" 진화 나섰지만
'차일피일' 회피 태도 공무원 경직성 도마위
남은 음식물 건조박(왼쪽)과 피마자박(아주까리박).
남은 음식물 건조박(왼쪽)과 피마자박(아주까리박).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농업 발전과 농민 복지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농촌진흥청이 농민은 뒷전인 채 민간기업의 눈치만 살피는 행정을 펼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유기질비료 원료 중 하나인 피마자박(아주까리박)을 대체할 수 있는 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진청의 늑장 행정으로 해당 원료 사용이 차일피일 미뤄져 농민 건강이 위협받고 있어서다.

현재 피마자박은 유기질비료 원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맹독성 물질인 리신(Ricin)이 함유돼 주위가 요구되는 원료다.
 

리신, 생물학 무기로 사용될 정도로 위험

리신은 생물학 무기로 사용되는 보툴리누스(botulium), 색시톡신(saxitoxin), 트라이코세신 마이코톡신(trichothecene mycotoxins)과 더불어 독극물 성분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농민들이 사용하는 유기질 비료에 리신이 함유된 피마자박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피마자박은 독성 때문에 비료로만 사용되다 보니 가격이 저렴해 유기질 비료 제조 업체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이미 2016년 개와 고양이가 이를 먹고 폐사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비료 내 리신 함유량을 10mg/kg 이하가 되도록 관리기준을 강화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

또한 농민들이 비료 살포시 피부나 호흡기로 리신이 침투할 수 있고 비료 살포 후 비가 내릴 경우 독성물질이 하천수나 지하수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 환경부에서도 골칫거리로 꼽고 있다.

올해 1월 전북 익산시 함라면에서 발생한 집단 암 발병 사건은 인근 비료공장 굴뚝에서 다른 유해물질과 함께 리신이 검출돼 암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더욱 주의가 요구되는 물질이다. 10년 사이 이 마을 주민 80명 중 30명이 암에 걸려 충격을 던져줬다.
 

맹독성 피마자박, 외화 유출하면서까지 수입

더구나 피마자박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외화 낭비라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2017년 피마자박 수입량은 45만 톤,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810억 원에 이른다. 맹독성 물질을 외화를 유출하면서까지 국내로 들여오는 셈이다.

피마자박을 대체할 수 있는 원료는 뭘까. 다름 아닌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다. 음식물 재활용 업체에서는 남은 음식물을 가공 처리한 후 건조과정을 거쳐 분말 형태로 만든 '음식물 건조박'을 상용화했다. 음식물 건조박은 독성이 없음은 물론 가격도 저렴해 농민부담도 적다.

피마자박의 단가는 kg당 180원 수준이라면 음식물 건조박은 절반 가까운 70원으로 유기질비료 연간 판매량(50만 톤)을 고려했을 때 비료 1포당 약 1,100원을 경감시킬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음식물 비료 효과 농진청에서 이미 입증

음식물을 활용한 비료 효과는 입증됐을까. 농진청에 따르면 음식물 분해 산물로 만든 퇴비의 이화학 분석 결과 음식물 퇴비(FWC)의 유기물 함량은 48.22%로 높은 수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중에 유통되는 유기질비료의 유기물 함량 공정규격은 30% 이상으로 기준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음식물 분해 산물로 만든 퇴비의 이화학 분석 결과. (출처=농촌진흥청)
음식물 분해 산물로 만든 퇴비의 이화학 분석 결과. (출처=농촌진흥청)

농민들이 우려하는 염분 함량도 기준에 부합했다. 공정규격인 2.0%보다 0.19%p 낮은 1.81%의 수치를 보였으며 총질소(T-N) 역시 2.73%로 비료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작물 생육에 미치는 영향도 시중에 유통되는 비료와 차이가 없었다. 농진청에서 음식물 분해 산물로 제조한 비료와 시중에 유통 중인 아미노산 함유 생물 비료를 토마토 어린 묘에 처리해 생체량과 생육 길이를 분석한 결과, 두 비료 모두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으며 오히려 실험에서는 작물 길이와 무게 모두 음식물 비료가 약간 높았다.
 

음식물 잔반 분해 산물 제조 비료의 작물 생육에 미치는 영향(온실). 왼쪽부터 아무 것도 처리하지 않은 토마토 유묘와 음식물 분해산물 제조한 비료(중간), 시중에 유통 중인 아미노산 함유 생물비료(오른쪽 끝). (출처=농촌진흥청)
음식물 잔반 분해 산물 제조 비료의 작물 생육에 미치는 영향(온실). 왼쪽부터 아무 것도 처리하지 않은 토마토 유묘와 음식물 분해산물 제조한 비료(중간), 시중에 유통 중인 아미노산 함유 생물비료(오른쪽 끝). (출처=농촌진흥청)

"땅에서 생산된 유기물 다시 땅으로" 자원순환 개념

2017년 기준, 하루 평균 우리나라의 각 가정에서 발생시키는 음식물 잔반 발생량은 1만 4,700톤에 이른다.

정부에서 2차 오염 예방을 위해 음식물 쓰레기 매립을 금지하면서 이를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농진청 스스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업계 눈치 보기와 늑장 행정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음식물 건조분말 업체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서울 인근 한 비료업체 관계자는 "피마자박의 유해성, 국부의 유출, 경제성 등 모든 것을 따져봤을 때 정부에서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함에도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면서 "음식물 건조박은 땅에서 생산된 유기물을 다시 땅으로 보내는 자원순환의 좋은 예"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업체들의 반발도 있지만, 농민을 위해서라도 바뀔 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축분에도 남은 음식물 혼합 허용하고 있어

물론 음식물 건조박을 비료로 활용하는 데 반대 목소리도 있다. 가축분유기질비료협동조합에서는 3월 13일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음식물쓰레기 건조분말의 유기질비료 원료 허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조합은 성명서에서 "음식물쓰레기 건조분발 사용을 허가한다면 비료업계에 혼란을 더하고 (정부의) '유기질비료지원사업'은 농지를 대상으로 하는 폐기물매립사업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활용 업체의 한 관계자는 "가축분퇴비에도 50%이하로 남은 음식물 혼합을 허용하고 있다"라면서 "결국 모든 자원은 순환돼야 하며 가축분뇨와 음식물 쓰레기 모두 잘 활용돼야 국가뿐만 아니라 농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축분은 되고 음식물은 안된다는 논리는 형평성에 어긋나며 규제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문제"라면서 "위생처리가된 건조분말의 허용을 미루는 건 경직된 공무원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농진청, 농민 위한 정책 드라이브 걸어야

비료 공정규격설정과 관련, 관련 업계 간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기미가 보이자 농업계의 눈은 농진청으로 쏠리고 있다. 농진청은 농민들의 의견 수렴과정을 거친다고 했지만, 관련 업계와 단체 간 시소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 의견조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경남 밀양의 한 농민은 "그동안 농진청이 농민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한 일이 뭐가 있느냐"면서 "특히 농자재 분야에서는 중립을 지키는 척만 하고 업체와 농민간 싸움을 수수방관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농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정확한 검증으로 확실하게 보여줄 때"라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