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71] 흰 까마귀가 나타나 백관(百官)이 길복(吉服)을 입고 하례(賀禮) 하였다
[62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71] 흰 까마귀가 나타나 백관(百官)이 길복(吉服)을 입고 하례(賀禮)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3.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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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87호, 양력 : 3월 20일, 음력 : 2월 14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까마귀는 한자로 오(烏)자로 많이 표기되어 있으나 자오(慈烏), 효조(孝鳥), 노아(老鴉)등으로도 표기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200여건의 기록에 임금 대 별로도 고르게 기록되어 있고, 조류(鳥類)로서의 의미 외에 가장 많이 인용된 표현은 오조지정(烏鳥之情), 자오지정(慈烏之情). 반포지정(反哺之情) 등의 표현으로, 그 뜻은 까마귀가 처음 태어나서 어미가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 먹여 키우지만, 자라서는 새끼 새가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뜻으로 효심(孝心)을 가리키는 의미로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는 뭇 까마귀가 날아서 모여드는 것은 모두 두려운 일로 여겨 근신하고,심지어는 재앙이나 질병의 피해가 의심되는 곳을 일시적으로 피하는 피방(避方)을 하기도 하였고, 다만 흰 까마귀가 나타나면 상서롭고 신령한 것으로 여겨 경사(慶事)로서 임금이 하례(賀禮)를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생물(生物)로서 까마귀에 관한 임금대별 주요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조(太祖) 대에는 태조가 젊었을 때, 정안옹주(定安翁主) 김씨(金氏)가 담 모퉁이에 다섯 마리의 까마귀가 있음을 보고 활을 쏘기를 청하였는데, 태조가 단 한 번을 쏘니 다섯 마리 까마귀의 머리가 모두 떨어져, 이를 이상히 여겨 절대로 이 일을 누설하지 말라한 적이 있으며, 까마귀 떼가 개성에 있던 사찰인 연복사(演福寺), 평안도 대동지역의 백록산(白鹿山), 도성(都城) 안 등지에 많이 날아와 모여들었고, 이런 뭇까마귀가 모여드는 일은 두려운 일로 임금이 급하고 급하지 아니한 것을 살피어 백성의 힘을 덜어 주면, 백성이 기뻐하고 하늘도 좋아 하여 아름다운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상소하고 있습니다.

정종(定宗) 대에는 까마귀가 밤중에 대궐 위에 날아와 울고, 경복궁(景福宮)을 빙빙 돌았고, 궁성 북원(北園)에 모여서 울자, 천문(天文), 지리(地理)를 관장하는 서운관(書雲觀)에서 재이(災異)가 여러 번 보여, 마땅히 임금이 근신하는 수성(修省)을 하여 변(變)을 없애야 하고, 재이를 일시적으로 피하는 피방(避方)을 하여야 한다고 하여, 개성인 송경(松京)으로 환도를 하기도 하였으며, 까마귀가 덕나동(德那洞) 밤나무에 모이니, 스님 일곱 분을 데려다가 금강경(金剛經)을 읽게도 하였습니다.

태종(太宗) 대에도 역시 궁궐 북쪽 후원이나, 백록산에 여러 차례 까마귀가 모여서 날며 울었고, 세종(世宗)대에는 전 부사직(前副司直) 관리가 종묘(宗廟)의 소나무에서 까마귀가 울고, 하늘에서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 비가 오고 구름이 시커멓게 끼면, 이럴 때에 왕조가 바뀐다는 요망스런 말을 꾸며 낸 것으로 밝혀져 중죄(重罪)로 다루어 참형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하였습니다.

예종(睿宗) 대에는 임금이 흰 까마귀가 후원(後苑)에 날아와서 모이는 것을 보고 이는 과덕(寡德)한 소치이므로, 깊이 스스로 꾸짖는다고 하면서 감옥에 가둔 체옥(滯獄)한 자가 많음을 염려하여 가벼운 죄수는 사(赦)하고자 하였으나, 승지(承旨)들이 흰 까마귀에 대한 고사(古事)를 상고하여, 정성이 종묘(宗廟)에 감동되면 흰 까마귀가 이르는 것으로 이는 세상에 상서로운 일이고, 드문 경사이므로 하례를 드린다고 하자, 여러 차례 물리친 후 백관(百官)들이 길복(吉服)을 입고 하례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연산군(燕山君) 대에는 조학소(造鶴所)에서 쓰는 날개가 흰 거위, 큰 새 및 가설 무대인 채붕(彩棚) 위에 배설할 산 까마귀, 까치 각 50 마리, 산 부엉이, 꾀고리, 산 매, 산 따오기, 솔개, 비둘기, 꿩 각 20마리 등을 경기 각 고을에서 상납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620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뭇 까마귀가 궁성 북쪽 소나무에 모여 시끄럽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2월 14일 을묘 기사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뭇 까마귀가 궁성 북쪽 소나무에 모여 지저귀다

뭇 까마귀가 궁성 북쪽 소나무에 모여 지저귀었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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