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72] 제주도 고라니(麂子)는 원(元)나라에서 들여와서 놓아먹이던 것이었다
[62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72] 제주도 고라니(麂子)는 원(元)나라에서 들여와서 놓아먹이던 것이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3.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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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88호, 양력 : 3월 21일, 음력 : 2월 1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고라니는 미록(麋鹿) 또는 궤자(麂子)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30여건의 기사가 등재되어 있으며, 생물학적인 특징은 견치(犬齒)가 송곳 모양으로 길게 자라서 끝이 구부러져 입 밖으로 나와 있고, 암수가 다 같이 뿔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고라니 피는 사슴피와 같이 귀중하게 여기었고, 뼈는 열탕으로 끓여 마시면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금대별 고라니에 대한 주요 기사들을 살펴보면, 우선 태종(太宗) 대에는 임금이 상체(上體)가 미령(未寧)하여 온천인 온정(溫井)에 탕치(湯治) 행차를 핑계하여, 전라도 임실(任實)에서 사냥을 하려하자, 대신(大臣)들이 산천이 험조(險阻)하여 말을 달려 사냥하다가 넘어져 쓰러질 염려가 있으며, 사냥을 하려는 강무장(講武場)에 초목(草木)을 베어내어 불태우는 것은 옛 성현(聖賢)도 경계하였다고 상언(上言)하였으나, 거리가 이틀 정도(程道) 가까운 거리이고 고라니와 사슴이 많아 무리를 이룬다고 하니,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기에는 이와 같은 곳이 없고 단지 구경할 따름이라며 논쟁을 한 바 있습니다.

세종(世宗) 대에는 궁궐 내 정원을 관리하고 과일·화초 등에 관한 일을 하던 상림원(上林苑)에 이르기를, 자신이 꽃과 새를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고라니(麋)와 사슴을 기르고 화초를 키우는 것이 본래 긴요한 일은 아니지만, 심어 놓은 식물(植物)등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면 국가의 용도에도 보탬이 있을 것이라고 관리들을 질책한 바가 있으며,

전라도 감사가 전의감(典醫監)이나 제생원(濟生院)에 바치는 녹용(鹿茸)이 애초에는 땅이 넓고 백성이 적어서 고라니와 사슴이 번성하여 각 관청에 바치는 것을 쉽게 마련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백성이 날로 불어나서 고라니와 사슴이 희소하여 며칠 동안 사냥을 다녀도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여 백성들의 괴롭힘이 너무 심하다고 보고하자, 바치는 양을 모두 감하고, 바치는 것도 각 고을에 분배시키지 말고, 군사들이 있는 영(營),진(鎭)에서 갖추어 바치게 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병조(兵曹)에서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제주는 원래 마소(牛馬)를 놓아먹이는 장소일 뿐 아니라, 원(元)나라에서 들여와서 놓아먹이는 고라니(麂子)를 번식시키는 곳으로, 한잡(閑雜)한 무리들이 마소와 고라니를 마구 잡아 죽여 거의 다 없어져, 제주 감목관(監牧官)등 에게 마소를 놓아먹이는 것과 고라니가 사는 곳을 살펴보고, 그 부근에 사는 사람들을 감찰(監察)하게도 하였습니다.

한편 중종(中宗)대에는 함경북도 병사(兵使)가 보고한 계본(啓本)에는 함경도 혜산 지역에서는 원래 고라니, 사슴, 담비인 초서(貂鼠)가 많이 나기 때문에, 야인들이 늘 와서 사냥하면서 방비가 허술한 때를 타 침범하므로 국경이 소란할 염려가 있어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620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산속에서 고라니인 미록(麋鹿)이 있는 곳을 잘 알고 있던 전 판사(判事)에게 솜을 가운데 넣고 안팎으로 무명을 바쳐 겨울에 입는 유의(襦衣), 활과 화살인 궁시(弓矢)를 내려 주었으며, 군대를 이끌고 미록(麋鹿)몰이를 잘 한 해주 총패(海州摠牌)에게는 각궁(角弓)을 내려 준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2월 15일 갑자 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사슴의 거처를 잘 아는 김여에게 옷과 활·화살을 하사하다

전 판사(判事) 김여(金洳)에게 유의(襦衣) ·궁시(弓矢)를 내려 주니, 김여가 산속에 미록(麋鹿) 의 있는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지총제(同知摠制) 유은지(柳殷之)가 일찍이 해주(海州)를 다스릴 때, 이 사람을 알았으므로 그를 천거하였었다. 또 해주 총패(海州摠牌) 4인에게 각기 각궁(角弓)을 하나씩 내려 주니, 이 사람들은 군대를 이끌고 미록(麋鹿)몰이를 한 까닭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9장

【주】유의(襦衣) : 동옷

      미록(麋鹿) : 고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