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1] 정부가 양잿물 사용 권고? 페트병 재활용 망치는 환경부의 괴상한 고시
[탐사기획1] 정부가 양잿물 사용 권고? 페트병 재활용 망치는 환경부의 괴상한 고시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3.21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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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 바른 페트병에 ‘우수’ 등급
비접착식 라벨엔 최하등급 부여 
본드 제거 위해 양잿물 공정 필수
환경 호르몬·폐수 등 2차 피해 우려
선진국 제도 도입? 사실과 달라 
시민단체, 권익위에 고발장 접수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환경부가 본드를 사용해 라벨을 붙인 페트병에 '우수' 등급을 주는 '페트병 재활용 등급 기준 개정안'을 곧 확정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고시가 통과되면 정부가 본드를 사용한 페트병 사용을 권장한 꼴이 돼 환경에 역주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페트병은 본드를 주입해 라벨을 붙인 페트병과 라벨 수축으로만 고정한 페트병으로 나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페트병 라벨을 뜯어보면 끈적끈적한 접착제가 남거나 잘 벗겨지지 않는 페트병이 있는데 이 같은 제품이 접착제를 사용한 페트병이다.
 

본드 사용한 접착식 라벨(왼쪽 끝)과 본드를 사용하지 않은 비접착식 라벨(절취선 포함). 접착식 라벨은 제거 시 본드와 이물질이 남는다. 환경부 고시가 통과되면 가운데 사진 중 왼쪽은 재활용 '우수(2순위)' 등급을 오른쪽은 '어려움(3순위)' 등급을 받는다.
본드 사용한 접착식 라벨(왼쪽 끝)과 본드를 사용하지 않은 비접착식 라벨(절취선 포함). 접착식 라벨은 제거 시 본드와 이물질이 남는다. 환경부 고시가 통과되면 가운데 사진 중 왼쪽은 재활용 '우수(2순위)' 등급을 오른쪽은 '어려움(3순위)' 등급을 받는다.

페트병 중에는 절취선이 있어 손으로도 쉽게 라벨을 분리할 수 있는 페트병도 있다. 라벨 스스로의 수축력만 이용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를 '비접착식' 라벨이라 부른다. 이 페트병은 재활용 시 접착제를 사용한 페트병보다 높은 값을 쳐주며 재활용 상품 자체로도 가치가 높다.

문제는 환경부가 재활용 가치가 낮은 접착식 라벨 페트병을 '우수' 등급으로 분류하고 비접착식 라벨을 사용한 페트병을 사실상 '어려움' 등급으로 규정하는 고시를 추진한다는 데 있다. 환경부는 본드를 사용하지 않는 라벨에 중점을 둘 경우 재활용 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며 해당 고시 강행을 예고해 둔 상태다.

비중이 뭐길래···고시에 숨겨진 꼼수

환경부가 발표한 페트병 등급기준 개정안.(출처=환경부)
환경부가 발표한 페트병 등급기준 개정안.(출처=환경부)

환경부가 발표한 페트병 재활용 등급 기준 개정안을 살펴보면 '최우수(1순위)', '우수(2순위)', '어려움(3순위)' 등 3개의 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최우수 재활용 등급을 받으려면 라벨이 ▲절취선 ▲비중 1미만 ▲비접착식 등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우수'는 ▲절취선 ▲비중 1미만 등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되며 라벨이 물에 가라앉는 비중 1이상이면 '어려움'으로 구분된다.

문제는 본드를 바르지 않는 비접착식 라벨은 비중이 1보다 커 ‘어려움’ 등급인 최하 등급으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비접착식의 경우 아직까지 국내 기술로는 비중 1미만을 구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라벨에 본드를 바른 접착식의 경우 비중이 1보다 작아 환경부 고시대로라면 ‘우수’ 등급을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비중이 중심이 된 고시가 강행될 경우 접착제가 사용된 페트병이 ‘우수’ 등급을 받고 비접착식 페트병은 ‘어려움’ 등급을 받는 괴상한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접착식 페트병이 '우수' 등급을 받는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환경부는 '우수' 등급의 경우 물로 분리 가능한 접착제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85~90℃로 끓인 양잿물이다. 실제 순수 물로만 제거되는 접착제는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고시가 통과된다면 정부가 고온의 양잿물로 분리되는 접착제 라벨을 권장하는 셈이 된다. 재활용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비접착식을 권고하고 있으며 대부분 비 접착식 라벨이 활용되고 있다.

환경호르몬·라벨지 독성 소비자 2차 피해 우려

끓인 양잿물을 사용할 경우 환경 호르몬 배출이나 접착제 독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재활용 과정을 살펴보면 고온의 양잿물로 라벨을 분리한 과정을 거친 페트병들은 플레이크(작은 플라스틱 조각)화 해 다시 녹여 일회용 식품 용기나 옷감을 만드는 실로 재활용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 아웃용 음료컵이나 1회용 도시락 용기, 폴리에스테르 실로 만든 기성복이 대표적인 예다. 90℃의 끓인 양잿물을 통과할 경우 환경 호르몬 등 유해성분이 방출돼 우리의 생활권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양잿물 폐수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결국 양잿물 처리과정을 거친 제품이 소비자 일상 속으로 다시 파고드는 셈인데 정부는 이 과정에서 미처 분리가 안된 접착제나 양잿물 성분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문제 의식조차 없으며 실태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다.
 

일본·유럽제도를 짜깁기 한 괴물고시 탄생 예고

환경부는 이번 고시 개정안에 대해 일본과 유럽(EU) 제도의 장점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본지가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환경부 발표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페트병플랫폼(The European PET Bottle Platform (EPBP))에는 페트병 분류기준을  ‘YES’, ‘CONDITIONAL’, ‘NO’ 등 3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있는데 ‘YES’ 등급의 접착제(adhesive) 규정에는 상온의 물에서 제거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60~80℃의 물이나 알칼리에 녹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환경부가 제시한 규정인 85~90℃와 겹치는 부분은 없었다.

유럽페트병플랫폼(EPBP)의 페트병 분류기준. 재활용 과정에서 접착제 분리 시 상온 물에서 녹아야 하며 필요시 최대 80℃를 넘으면 바람직하지 않고 피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유는 패트병 재활용 원료(플레이크)의 변형을 막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환경부 고시대로라면 정부에서 저질 페트병을 양산하는 재활용 공정을 독려하고 나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출처=https://www.epbp.org/design-guidelines/products 홈페이지 캡쳐)
유럽페트병플랫폼(EPBP)의 페트병 분류기준. 재활용 과정에서 접착제 분리 시 상온 물에서 녹아야 하며 필요시 최대 80℃를 넘으면 바람직하지 않고 피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유는 패트병 재활용 원료(플레이크)의 변형을 막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환경부 고시대로라면 정부에서 저질 페트병을 양산하는 재활용 공정을 독려하고 나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출처=https://www.epbp.org/design-guidelines/products 홈페이지 캡쳐)

유럽의 두 번째 등급인 ‘CONDITIONAL’ 역시 환경부가 제시한 조건은 찾아볼 수 없었다. ‘CONDITIONAL’ 기준에는 고온에서 녹는 접착제(Hot-melt adhesive)를 규정하고 있는데 최대 80℃에서 녹는 알칼리 수용성이라고 명기돼 있다.

결국 환경부가 제시하고 있는 85~90℃의 양잿물 사용은 유럽 고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으며 유럽 규정을 그대로 가져오면 환경부가 ‘우수’ 등급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유럽에서는 최하 등급을 받게 된다.

환경부는 일본의 규정도 곡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본드를 사용하지 않은 절취선 수축라벨을 사용하거나 손으로 라벨 제거 시 접착제가 페트병에 남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90% 이상을 본드를 바르지 않은 절취선 수축라벨을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 풍력선별을 통해 재활용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시민단체가 나섰다. 대한민국신지식인협회는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페트병 재활용 등급기준 개정안’과 관련해 환경부와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하고 특정업체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권기재 대한민국신지식인협회장은 고발장을 제출한 이유에 대해 "환경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달아가면서 친환경 절취선 라벨을 최하 등급을 주는 괴물고시를 강행하려 한다"면서 "이는 오히려 환경을 말살시키는 정책이다. 이런 이유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엉터리 한국기준’을 만들어 고시를 통과시킨다면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번 고시가 강행될 경우 우리나라 페트병 재활용 유통구조가 엉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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