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칼럼] 부처마다 청와대 코드 맞추기에 골병드는 축산업계
[편집자 칼럼] 부처마다 청와대 코드 맞추기에 골병드는 축산업계
  • 김재민
  • 승인 2019.03.2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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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통령이 읽었다는 책 저자 황윤감독 초청 만찬
농림부, 축산업 인류최악의 범죄 운운하는 강연회 개최
문체부 정책 홍보사이트엔 '축산업 저격수' 황윤 인터뷰 게재까지

황윤 영화감독이 쓴 축산업 비판 서적 ‘사랑할까 먹을까’를 대통령이 설 명절 연휴 기간 읽었다는 소식이 청와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알려진 뒤 정부 각 부처가 앞 다퉈 ‘대통령 코드 맞추기’에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속속 확인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본지는 축산업 진흥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인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황윤 씨를 초청, 강연회를 열어 그가 평소 축산업과 관련한 잘못된 인식을 강연회의 주된 내용을 삼았다는 것을 문제 삼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강연회 개최와 비슷한 시기인 지난 3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정책 홍보 사이트인 위클리 공감에는 ‘익숙한 육식문화 딜레마……사랑하면 돼지’라는 황 윤씨의 인터뷰가 게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뷰에는 그동안 황 씨가 주장해온 축산업에 대한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위클리 공감’은 대한민국의 국정 홍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홍보파트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공식 홍보 웹진이자 인쇄물로 황 씨의 인터뷰는 정부가 축산업을 폄하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고 비건 주의자들의 주장을 알리는데 앞장서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축산업 비난‧비하에 정부가 앞장서나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지향에 대해 범죄만 아니라면 누구도 나무라할 수는 없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른 사람에게 제안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나름의 가치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축산법, 축산물위생처리법, 가축전염병예방법, 동물복지법, 수의사법 등 수많은 법률에 따라 규제를 받고 존재하고 있는 축산업을 비하하고 비판하는 사람을 국정 홍보에 내세워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비건)과 주장이 전적으로 옳고, 그가 지은 책까지 언급하며 홍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농림부와 실용화재단의 강연건은 축산업무를 진흥해야 할 부처가 비건의 주장이 맞고 축산업이 틀리다는 내용으로 축산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국정홍보처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온-오프라인의 부처 공식 채널을 통해 축산업을 저주에 가깝게 비난해온 인물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 뿐더러 상식에도 맞지 않다.

이는 정부부처와 공무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대통령과 청와대에 코드를 맞추기 위한 노력으로 밖에는 설명될 수 없는 대목이다.

농민대표들 단식 투쟁 끝에 대통령 만났지만

황윤은 지난 강연과 이번 인터뷰를 통해 2019년 신년회에 청와대로 초청되어 식사 한 내용을 소상히 밝혔다.

혹시 고기가 들어간 떡국이 나오면 물만 먹고 와야, 어째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청와대에서 채식 떡국을 별도로 준비해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황씨는 이러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청와대에서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며 다른 행사에서도 비건 옵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참고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 글을 읽고 농민단체대표들과 대통령과의 간담회가 생각나 침울한 마음을 금하기 어려웠다.

지난해 농민단체대표들은 청와대 앞에서 한 달 넘게 단식 투쟁을 진행했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겨우 성사시켰다. 대통령 취임 후 2년 만이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간담회 자리는 결국 소년 농부의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났고, 소년 농부가 생산한 쌀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내용만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소년 농부’의 등장으로 수십 년간 농사를 짓고 농민운동에 투신해온 농축산업계 대표들은 기념촬영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들러리로 전락해 버렸다.

단식이라는 극한선택 말고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농민들의 목소리는 그만큼 절박했지만 대통령에게 하고자했던 말들은 전달될 수 없었고, ‘대통령과의 만남’에 만족해야만 했던 것이다.

황윤의 인터뷰를 읽어 내려가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기 어려웠지만 인터뷰 끝에는 목이 메였다. 축산업을 저주하는 수준의 무차별 공격도, 검증되지 않은 왜곡된 말 때문도 아니다.

그를 위해 채소 미역국을 준비했다는 청와대의 배려가 너무도 눈물겨웠기 때문이다. 단식 투쟁을 불사하며 마련된 농민 간담회에서 청와대는 농민대표들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도 대접하지 않았다.

이번 정부, 진정 축산업은 버리고 갈건가

간담회를 마친 농민대표들은 이번 정부가 농업, 농정개혁을 포기했구나 하는 침통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을 만난 뒤의 황윤은 앞으로 정부가 나서 비건 운동에 힘을 보태 주겠구나라는 생각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테다.

그 이후 마치 예정된 시나리오처럼 농림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의 각 부처는 일제히 농민과 축산업이 어떻게 골병들고 상처 받을지는 아랑곳 않고 비건 홍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난번 농림축산식품부의 부처 명칭 변경할 것을 제안했었다. 정권의 정책 지향에 맞게 ‘농림비건식품부’로 바꾸길 바란다는 제안이었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도달한 생각의 끝에는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로 귀결되었다.

신라, 고려 1000년을 불교국가로 육식을 멀리하며 산 비건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었다.

이제 선포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은 조선 시대 이후 600여 년간 이어온 육식의 역사를 마치고 ‘비건 국가’로 나가겠다고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캡쳐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캡쳐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캡쳐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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