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2] 임금을 호위하는 내금위(內禁衛) 군사는 말을 타고 활을 잘 쏘아야 했다
[54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2] 임금을 호위하는 내금위(內禁衛) 군사는 말을 타고 활을 잘 쏘아야 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4.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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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98호, 양력 : 4월 4일, 음력 : 2월 29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임금이 궁궐의 전각(殿閣)에 거처하거나 궁궐 외부에 행행(幸行)할 때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던 최정예 군사인 근시정병(近侍精兵)을 내금위(內禁衛)라 하였는데, 전체 인원은 200여명이었고, 근무는 3차례 교대하는 3번(番)으로 나누어져 1번(番)의 위군(衛軍)이 30명에 절제사(節制使)가 2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내금위 200여 명 중에는 호위에 적합하지 않은 자가 있어 그중에서 무재(武才)가 특이하고 지략이 있는 자 60명만을 선발하여 3번으로 나누고 윤번으로 입직(入直)하게 하여 봉급을 주었고, 상시시위(常時侍衛)를 할 때는 갑옷을 입지 않고 환도(環刀)만 휴대하였으나, 근정전에서 진행된 조회에서는 모두 쇠로 만든 미늘에 수은을 덧칠하고 가죽으로 엮어 만든 갑옷인 백철갑(白鐵甲)을 입고, 전내에 10인씩 좌우로 분립하였으며, 그 나머지는 월대(月臺)의 동서로 나누어 호위하였고, 후에 활과 화살인 궁전(弓箭)을 패용(佩用)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내금위 등의 병력을 집결시킬 때는 은(銀)이나 나무로 만든 뿔처럼 생긴 나팔을 이용하는 취각법(吹角法)을 활용하였는데, 만약 국왕이 용병(用兵)의 명령을 내리면 병조의 입직 당상관(堂上官)이 친히 품명(稟命)하여 누런 바탕에 선자(宣字)와 청룡(靑龍), 주작(朱雀), 백호(白虎)를 새긴 기(旗)인 선자기(宣字旗)를 받아서 여러 궐문(闕門) 밖에 세우고 취각(吹角)을 하였습니다.

취각은 내취각인(內吹角人)과 외취각인(外吹角人)이 담당하였는데, 임금이 명령을 내리면 내취각인이 각(角)을 1통(通) 불었으며, 외취각인은 곧 문루(門樓)에 올라가 각(角)으로써 응하였고, 사방 높은 곳에 나누어 올라가 군마(軍馬)가 다 모일 때까지 각을 불었습니다. 이때 입직하고 있는 내금위는 모두 갑옷을 입고 병기를 지닌 채 궁궐 문을 수비하였으며, 출번(出番)한 내금위는 취각의 소리를 듣고 즉시 궁궐에 나아가 궐문 밖에서 주둔하고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한편, 임금의 최측근 호위 병력인 내금위는 직임이 근시(近侍)이므로 선발하는 방법도 엄격하게 정해져, 시재(試才)함에 있어서 걷거나 달리면서 활을 쏘는 보사(步射)인 경우 200보(步) 거리에 3시(矢) 이상 과녁을 관통해야 했으며, 말을 타고 쏘는 기사(騎射)인 경우 3발(發)에 2중(中) 이상으로서 말 타는 수법이 민첩한 자를 취하였고, 실력 외에 신분도 중요하여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그 거주지에서 가문의 실태를 조사한 뒤에 서용하였으며, 후기에는 조총과 같은 화기를 다루는 기예도 추가되었습니다.

54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여러 섬(島)의 목장(牧場)에 말이 많이 번식하여서 저절로 늙어 죽으니, 아마(兒馬)를 가려내어 내금위(內禁衛)와 겸사복(兼司僕)에게 나누어 주어서 호양(護養) 조습(調習)시키면, 좋은 말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성종실록 76권, 성종 8년 2월 29일 무술 기사 1477년 명 성화(成化) 13년

좌승지 이극기가 마정에 대해 아뢰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좌승지 이극기(李克基)가 아뢰기를,

"여러 섬[島]의 목장(牧場)의 말이 많이 번식하여서 저절로 늙어 죽으니, 만약에 아마(兒馬)를 가려내어 내금위(內禁衛)와 겸사복(兼司僕)에게 나누어 주어서 호양(護養) 조습(調習)시키면, 좋은 말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마정(馬政)은 국가의 대사(大事)이므로, 신이 아뢰려고 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나의 뜻이다. 말의 수효를 모두 헤아려서 아뢰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76권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