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3] 경상도 안동에서는 날씨가 추워 양(羊)을 토실(土室)에서 솜을 싸서 키웠다
[51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3] 경상도 안동에서는 날씨가 추워 양(羊)을 토실(土室)에서 솜을 싸서 키웠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4.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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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99호, 양력 : 4월 5일, 음력 : 2월 30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국가에서 중요하게 여긴 가축은 육축(六畜)이라 하여 소(牛), 말(馬), 양(羊), 닭(鷄), 개(狗), 돼지(猪)를 일컬었는데, 임금 대별로 25건의 기사가 실려 있고, 이외에도 잡축(雜畜)이라 하여 5건의 기사가 실려 있으며, 중종(中宗) 때까지 주요한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세종(世宗) 대에는 한재(旱災)가 경기(京畿) 지역에 심하게 되자, 과중하고 번다한 백성들의 요역(徭役)을 다른 도(道)로 옮겨 감(減)할 것은 적당하게 감하게 하였고, 가축을 기르는 관서인 분예빈(分禮賓), 전구서(典廐署)의 젖소를 먹이는 곡식과 풀과 연료, 나무 같은 것도 수량이 대단히 많아 백성들이 심히 괴로우니, 각사(各司)에서 기르는 잡축(雜畜)을 감하게 한 바 가 있습니다.

세조(世祖) 대에는 임금이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친히 문과 중시(文科重試)를 책문(策問)하였는데, 도적이 날로 성하고 육축이 번성하지 않으며, 군기(軍器)가 단련(鍛鍊)되지 않으니,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요령을 대부(大夫)들이 대답하라고 물은 바가 있으며, 정사(政事)를 보면서 육축(六畜)을 번식하게 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여, 한양에는 토지를 소유한 규모에 따라 대호(大戶)는 돼지 15구(口), 소 7두(頭), 말 5필을, 중호(中戶)는 돼지 10구, 소 5두, 말 4필을, 소호(小戶)는 돼지 5구, 소 3두, 말 2필 이상을 기르는 자는 세금을 면제하는 복호(復戶)를 하게 하였고,

지방인 경우 돼지의 수는 한양과 같으나, 대호는 소 10두, 말 8필을, 중호는 소 7두, 말 6필을, 소호는 소 4두, 말 3필 이상을 기르는 자를 똑같이 복호하게 하였으며, 임금이 분판(粉板)을 자리 오른쪽에 항상 놓고, 일을 만나면 모두 기록하여 옻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뜻하는 칠림(漆林), 육축(六畜), 뽕나무를 가꾸는 종상(種桑) 등 10여 조목을 일일이 열서(列書)하고, 승정원(承政院)에 내 보이며, 힘써 권하는 것을 뜻하는 돈권(敦勸)하는 방법을 의논하였습니다.

연산군(燕山君) 대에는 대내에서 매사냥을 관장하는 응방(鷹坊)의 잡축(雜畜)에게 먹일 미곡 1년 소요량을 계산하여 각도에 배정하여 따로 창고를 지어 저장하게 하였으며, 죄를 범하여 벌금 형식으로 내는 속(贖)을 궐내 사람이면 전량을 응방으로 보내 전전관(典錢官)으로 하여금 출납을 맡게 하였고, 날씨가 음산하여 악한 기운이 공중을 덮으니, 임금이 세상에서 7일은 인일(人日)이라 하고, 8일은 곡일(穀日)이라 하는데, 구름이 끼면 재앙이 있는 것이냐고 묻자, 승지(承旨)가 1일부터 6일까지는 각각 육축(六畜)을 뜻하고 7일은 사람을, 8일은 곡식을 뜻하여, 혹 구름이 끼어 어둡던지 하면 그 주장하는 물건이 번성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아뢴 적이 있습니다.

중종(中宗) 대에는 겨울인데도 봄같이 따뜻하여 눈이 내리지 않고 봄인데도 겨울같이 추워서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3월인데도 날씨가 추워 초목에 꽃이 피지를 않으면서 여역(癘疫)이 평안도 한 도(道)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고, 기전(畿甸)에서도 육축(六畜)이 많이 병들어 죽자, 유생(儒生)들이 올린 사찰을 철거하라는 상소를 물리면서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며 윤허하지 않았고,

경상도 예안 현감(禮安縣監, 지금의 안동)이 육축의 짐승은 성질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데 양(羊)은 더욱 심하여 흙으로 만든 방인 토실(土室)에다 두고서 솜으로 싸서 키우더라도 죽게 될까 염려되며, 부지런히 방호(防護)를 해 주어도 자주 병들고 죽는데, 나라에서는 가져다 바치라고 독촉을 하여 곡식을 내다 팔아 3배나 값을 더 주는 폐단이 있다며, 날씨가 훈훈하고 따뜻한 연해(沿海) 지방에 더 많은 마리수를 배정해 달라고 상소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513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대궐 안 후원(後苑)에서 매와 개를 기르며 훈련시키는 일을 맡아 하던 조준방(調隼坊) 잡축(雜畜)에게 먹이기 위해 각도에서 상납한 곡식을 병기(兵器)의 제조 등을 관장하던 자문 군기시(紫門軍器寺)에 간수하게 하라고 전교하고 있습니다.

 

■연산군일기 61권, 연산 12년 3월 1일 신사 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각도에서 상납한 조준방 잡축에게 먹일 곡식을 자문 군기시에 간직하게 하다

전교하기를,

"각도에서 상납한 조준방(調隼坊) 잡축(雜畜)에게 먹일 곡식을 자문 군기시(紫門軍器寺)에 간수하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61권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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