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2-페트병 고시에 대한 재활용업체 사장의 고백]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쉬쉬’···환경에 역주행 하는 환경부
[탐사기획2-페트병 고시에 대한 재활용업체 사장의 고백]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쉬쉬’···환경에 역주행 하는 환경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4.08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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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 사용 사실상 강제하는 환경부
"특정 본드업체와 유착 의혹 의심"
국내 재활용 현실탓만···개선의지 無
국내 한 재활용업체에 쌓인 페트병들.
국내 한 재활용업체에 쌓인 페트병들.

일본 페트병은 VIP 대우 받는데
한국 페트 품질은 ‘빛 좋은 개살구’
가성소다 때문에 녹이면 황변 나와

제도가 되려 환경개선 걸림돌 우려
20년 재활용업체 사장 익명의 고백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됩니다”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재활용 업계에서 2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A씨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사진과 영상은 거부했다. 인터뷰만 가능하다고 했다. “아시잖아요”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환경부로부터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최대한 입을 다무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페트병 고시 개정안으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관행대로 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그런 그가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며 A씨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A씨는 마음이 불편하다. 환경부가 개정하려는 페트병 재활용 관련 고시 때문이다. 환경부는 페트병 재활용 과정에서 사실상 페트병 라벨에 본드를 사용하도록 권하는 고시 발표를 앞두고 업계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본지 3월 21일 자 [탐사기획1] 정부가 양잿물 사용 권고? 페트병 재활용 망치는 환경부의 괴상한 고시 참고, http://www.farminsight.net/news/articleView.html?idxno=1846) A씨는 환경부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환경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는 행태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본드를 사용하면 상당히 부작용이 많죠. NAOH(수산화나트륨)라는 강염기를 사용해 본드를 제거해야 하고 또 제대로 하려면 그걸 85℃ 이상으로 끓여야 해요. 수산화나트륨이란 소위 말하는 양잿물인데 이 물로 본드를 제거한 후에도 헹굼 과정을 거치죠. 상당한 양의 에너지와 물이 사용되는 셈이고 오염된 물은 또 2차, 3차 오염을 일으키겠죠.”
 

톤 단위로 묶인 페트병.
톤 단위로 묶인 페트병.

우리가 분리수거 한 페트병은 수집상을 지나 선별장을 거쳐 세척분리업체로 흘러간다. 세척분리업체에서는 순수한 페트병을 녹여 다시 제품을 만든다. 딸기를 담는 플라스틱, 편의점 김밥 용기, 커피숍 테이크아웃 잔 등이 대표적이다. 재활용 된 페트병이 식품과 연관된 식탁 생활권으로 다시 유턴하는 셈이다. 정부가 본드 라벨을 권장할 경우 우리 식탁이 화학물질에 위협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환경부에서는 물에 녹는 본드라 괜찮다는 입장이지만 A씨 이야기는 다르다.

“지금 환경부에서는 H사(본드제조사)에서 만든 본드의 경우 수용성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수용성이라고 하면 물로 벗겨져야 하는 게 상식적이잖아요. 지금 당장 편의점에 가서 페트병을 사서 본드를 물로 세척해보세요. 끈적끈적 한 잔여물이 그대로 남죠. 말만 워터솔루불(water soluble, 수용성). 말장난이죠.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예요.”

상황이 이런데도 환경부는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4월 환경부는 포장재 사용 생산업체 19곳과 자발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참석한 한 업체 관계자는 “수분리성(본드를 사용한 라벨) 접착제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MOU를 환경부와 맺었다”라고 밝혔다. 협약서 문안에는 ‘라벨은 비중 1 미만의 합성수지재질을 사용한다’고 되어있다. 자발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환경부가 나서서 본드 사용을 독려한 것이다. 올해 개정을 앞둔 고시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우수)에 본드 라벨을 랭크해 놨다. 이 때문에 본드 제조사인 H사와 환경부의 유착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제가 볼 때는 본드 제조사에서 지속적으로 로비를 하지 않았나 의심이 가거든요. 워낙 (본드) 쓰는 양도 많고. 음료 쪽은 다 바뀌었거든요. (본드) 사용량이 어마어마해요.”

일부 재활용 업체들은 왜 양잿물 사용을 꺼릴까. 고온의 양잿물은 페트병 원료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때 일본 제품과는 품질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세계시장에 나가면 우리나라 제품(페트 플레이크)은 반짝반짝 윤이 나죠. 아주 깨끗해 보여요. 오히려 일본 제품은 지저분합니다. 그런데 일본 제품 가격이 훨씬 비싸요. 가성소다(양잿물)를 안 쓰기 때문에 (재활용 과정 시) 본연의 색깔이 나오는 거예요. 우리나라 제품은 녹여보면 누렇게 황변이 나오죠. 이게 다 결국 본드 때문입니다.”

풍력선별기를 거친 페트병 모습. 라벨이 붙어 있는 페트병들은 대부분 접착식이다.
풍력선별기를 거친 페트병 모습. 라벨이 붙어 있는 페트병들은 대부분 접착식이다.

환경부는 우리나라 재활용 현실을 고려할 때 양잿물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항변한다. 국민들이 라벨을 뜯지 않고 버리기 때문에 이를 한꺼번에 분리하기 위해서는 양잿물에 넣고 라벨을 물에 띄워 선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페트병과 라벨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풍력으로 분리하거나 양잿물을 통과해야하는데 풍력선별로는 대부분 분리가 안된다는 얘기다.

“풍력선별기요? 사실 업체들에서 귀찮아서 그렇지 열처리하기 전 몇 번 반복해서 돌리면 대부분 라벨이 제거됩니다. 페트 플레이크를 20mm정도로 크게 해서 반복적으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고요. 물론 이 과정에서 시설보강을 해야 하는 업체도 있지만요. 결국 개정안대로라면 정부에서는 본드를 쓰는 악순환 고리를 만드는 겁니다.”

환경부는 본드 라벨에는 우수 등급을 주고 본드를 사용하지 않는 라벨에 대해서는 그 보다 낮은 등급을 부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의 방침대로라면 유통업체에서부터 우수등급 페트병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 자연스럽게 시장에서는 본드 바른 라벨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음료업체 담당자는 "저희가 힘이 있나요. 환경부 방침대로 따르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방법이 어렵다면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A씨는 ▲ 페트병 재활용 대국민 홍보 ▲비접착식라벨 권장 ▲세척분리업체 풍력선별기 지원 등 3가지를 꼽았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비중 1미만인 비접착식 라벨이 개발되는 길이죠. 문제는 아직 기술이 따라오지 못하니 사실상 환경부가 말하는 최우수 등급은 없는 셈입니다. 기술 개발은 결국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페트병 뚜껑도 단일 재질, 동색으로 통일하고 라벨지도 한 가지 재질로 통일하면 재활용 과정이 훨씬 단순해지고 쉬워지겠죠.”
 
A씨는 이번 고시에 대해 정부, 업계, 페트병 생산업체 등 모두가 환경에 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쉬쉬한다고 말한다. 기존 방식대로 운영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그냥 현실에 최대한 끼워 맞춘 꼴이죠. 큰 그림을 보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비접착식 라벨을 오히려 더 권장해야 해요. 정부, 재활용 업계, 음료업계 모두가 알고 있는데 모두가 쉬쉬하죠.”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되죠.”

본 취재에 협조한 모든 업체들은 익명을 요청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끝내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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