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9] 역용(役用)으로 쓰기 위해 노새를 도입하여 소(牛)나 말과 번식시키려 하였다
[53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89] 역용(役用)으로 쓰기 위해 노새를 도입하여 소(牛)나 말과 번식시키려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4.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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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05호, 양력 : 4월 15일, 음력 : 3월 11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암말과 수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驢)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 70여건에 불과하고 임금대별로는 선조(宣祖), 인조(仁祖) 대에 많으며, 주로 중국과의 무역이나 사신과 관련된 내용이나 자체 번식하려는 내용도 있으며, 중종(中宗)대까지의 주요한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세종(世宗)대에는 중국 황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성절사(聖節使)로 북경을 다녀온 사신이 임금에게는 선(善)을 행(行)하면 하늘이 은연중에 복(福)을 내린다는 위선음즐서(爲善陰騭書) 6백권을, 상왕(上王)에게는 나귀·노새 각 10마리를 가져와 바쳤는데, 사신이 북경에 들어갈 때 말 6필을 주고 나귀·노새와 무역하기를 요구한 것을 황제가 알고 하사한 것이었으며,

사헌부에서 중국으로 사신으로 가는 조현(朝見)시 따라가는 대소인원을 검찰 할 사목 중에 중국 사람을 만나거든 온후(溫厚)하고 유순한 태도로서 접대하고, 비록 관부(館夫)와 마부(馬夫)에게라도 꾸짖고 구타하여 욕보이지 말 것이며, 말과 노새 골라잡아 타기를 다투지 말도록 하고 이를 어긴 사람은 논죄할 것이라고 한 바가 있고,

또한 의정부(議政府)에서 병조(兵曹)의 첩정에 의거하여 중국으로 사신이 갈 때 황해도와 평안도 목장의 암말과 포화(布貨)를 가지고 가서 노새와 나귀를 무역하고 먹여 기르는 법도 아울러 알아 와서 번식하게 하자고 한 바가 있습니다.

문종(文宗)대에는 나귀는 먹는 것이 적으나 힘은 강하여서 쓸 만한 동물로 태종조(太宗朝)에는 중국에 나귀와 노새를 청하여 많이 길렀으나, 지금은 이미 절종(絶種)되었으니 북경(北京)에 가는 자로 하여금 사 오게 하여 이를 기르는 것이 어떠한가를 중신들에게 물었으나 중국에서 금하는 것으로 사 올 수가 없다는 답변을 듣고 사서 들여오자는 뜻을 거두어 들였으며, 세조(世祖) 대에는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에게 전교하여, 호랑이에게 상하고 병든 군사에게는 약물(藥物)을 갖추어 주고 병이 낫거든 여행중에 양식인 행량(行糧)과 노새나 나귀와 같은 각력(脚力)을 주어서 올려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성종(成宗)대에는 좌찬성(左贊成)이 숫노새(雄騾子)를 바치며, 암말(牝馬)이 노새와 교미(交尾)를 잘하여 노새를 낳아 암말도 아울러 바치기를 청하였으나, 노새는 번식하여 자라게 하고자 할 뿐으로 많이 있더라도 국가에 무슨 소용이 없으니 암말을 바치지 말고 기르도록 한 바가 있으며,

연산군(燕山君) 대에는 사복시(司僕寺)에 전교하여, 잘 걷고 잘 달리고 몸집이 큰 길든 말 10필을 급속히 끌어오고 키우고 있는 자색(紫色) 노새가 몇 필인지를 글로 서계(書啓)하며, 흰 말도 갈기와 꼬리가 모두 검은 것을 널리 찾아 들이게 하라고 하였으며, 약재로도 쓰이는 소목(蘇木) 10근을 대궐 안으로 들이고, 노새 안장 2벌과 여러 기구를 고쳐 수리하라고 하였고, 중국에 다녀온 주문사(奏聞使)가 사온 노새 12마리를 왕실 마구간 중 하나인 기구(麒廐)에서 기르게 하였습니다.

53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중국 사람들은 짐을 실을 적에 모두 노새를 쓰는데, 노새 값이 대단히 싸다고 하니 널리 무역해 소에 교접시키거나 말에 교접시키어 취종(取種)하면 7, 80년 뒤에는 크게 번식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임금이 중국 갈 때마다 나귀를 무역하게 하였으니, 무역하여 온 것을 검색하여 취종하는 것이 어떤지를 물었으나, 개와 말 같은 것은 그 지역 토성(土性)이 아니면 잘 크지 않아 나귀가 중국에서 본국에 이르면 열에 네다섯은 죽어 번식하지 못한다고 하자, 임금이 그것은 토성(土性)이 그러한 것이 아니고 맡아서 기르는 자가 불성실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종실록 201권, 성종 18년 3월 11일 신해 기사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장령 홍흥 등이 충청도 관찰사 채수가 아비를 데리고 청주에 내려간 일을 아뢰다

(상략)

특진관(特進官) 이계동(李季仝)이 아뢰기를,

"중국 사람들은 짐을 실을 적에 모두 노새를 쓰는데, 중국은 노새 값이 대단히 쌉니다. 널리 무역해다가 혹 소에 교접시키고 혹 말에 교접시키어 취종(取種)하면 7, 80년 뒤에는 크게 번식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일찍이 갈 때마다 나귀를 무역하게 하였으니, 지금 마땅히 무역하여 온 것을 검색하여 취종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홍흥이 말하기를,

"개와 말이 토성(土性)이 아니면 잘 크지 않습니다. 나귀가 본국에 이르면 열에 네다섯은 죽습니다. 그러므로 생산이 번식하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토성(土性)이 그러하겠는가? 이것은 맡아서 기르는 자가 불성실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하략)

【태백산사고본】 30책 201권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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