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현출 사장, 시공간 극복해야 선진 도매시장 구현 가능
[인터뷰] 박현출 사장, 시공간 극복해야 선진 도매시장 구현 가능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3.0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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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거래’는 시대적 요구 해외 선진도매시장 좋은 예
유통골목 지키는 도매법인, 기득권 놓고 역할 찾아야
시장도매인, 가격 불확실성 제거 소비니즈 반영 기대
가락시장 해외진출 전초기지 적합, 가능성 타진할 것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장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장

“가락시장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선진 도매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 2일 만난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장은 도매시장 발전을 위한 청사진에 대한 답을 이렇게 내놨다.

그가 이런 대답을 내놓은 배경에는 가락시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과 경매라는 거래방법만을 고집해서는 도매시장이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경매시스템 공간 제약 한계

현재 가락시장에는 6개의 청과도매법인이 농안법에 따라 국내 농산물의 수집과 중도매인을 통한 분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가락시장으로 유입된 농산물(지난해 기준) 중 약 90% 가량이 경매 시스템(상장거래)을 거친다. 경매 특성상 도매시장 내에서 거래가 성사되고 분산되는데 박 사장은 이 시스템이 효율적이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가락시장 내 도매법인은 공간의 한계를 넘기 힘들다. 경매만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정부에서 정가·수의매매를 유도하고 법인들이 보조를 맞추고는 있지만 실제 수의매매가 이뤄지는 비율은 미약하다. 도매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매시장은 물류기능이 핵심

그의 발언은 경매 시스템의 한계를 정조준 한 것으로 시장 내 시장도매인 도입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빠르면 2020년 상반기 도입이 가능하다는 게 공사측의 설명. 박사장은 이어 가락시장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해외 도매시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도매시장의 기능은 2가지다. 거래성사와 물류기능이다. 외국의 선진도매시장의 경우 거래성사의 99%는 도매시장 밖에서 이뤄진다. 물류만이 도매시장 인프라를 이용한다. 가락시장의 경우는 거꾸로다. 거래성사(경매)를 위한 공간이 물류를 위한 공간보다 많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래 도매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소분, 가공, 저온시설, 직배송 시설을 갖추고 물류를 효율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매법인 역할 변화 필요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공간이라는 제한된 하드웨어를 거래를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물류를 효율화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경매시스템만으로 물리적 한계를 넘을 수 있겠는가”라며 “수의거래는 시대적 요구”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수의거래에 대한 걱정도 있다. 농민이 수의거래를 할 만한 협상 능력이 되느냐는 우려다. 그는 “과거 도매법인의 역할은 농민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농민들은 일대일 협상을 할만큼 똑똑해졌다”며 “이제는 법인도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반박했다.

무너진 양곡상 반면교사 삼아야

시장도매인 도입과 관련 도매법인과의 갈등에 대한 질문에는 “3년간 공을 들였지만 (의견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면서 “도매법인은 시대적 요구에 맞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공무원 초임시절 양곡산업을 예로 들며 도매법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과거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쌀가게는 서울 시내에만 3만 곳이 영업할 정도로 번성했다. 당시 양곡상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에 로비까지 펼치는 이익단체였다. 당시 슈퍼에서 쌀의 소포장 판매를 두고 극한 대립이 펼쳐졌는데 결국 소비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지금 쌀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시대적 요구를 묵살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매법인도 급변하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 대형마트와 SSM, 온라인, 모바일, 직거래 등 도매시장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다. 해외 도매시장에서는 경매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흐름 속에 도매법인들도 경매에만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경매 시스템이 오히려 ‘깜깜이’

공사 사장으로의 취임 후 그간 박사장의 발언에는 법인에 대한 불신이 자리한다. 농민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법적 혜택을 받는 도매법인들이 상장수수료만 챙기며 이익에만 매몰된다는 이유다.

그는 인터뷰에서 도매법인을 향해 ‘유통골목을 점령한 기득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공사가 도매법인에게 출하자 대신 하역비를 부담하라는 취지의 제도를 추진하려고 하자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며 “이런 모습이 농민을 대변하는 모습인가”라며 반문했다.

법인이 내세우는 경매의 투명성에 대해서도 “경매가 오히려 깜깜이 유통”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사전에 가격을 협의해 상품가격을 책정하는 수의거래와 달리 물건을 출하하고 경매를 거쳐야만 가격을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가격변동폭이 낮은 것도 수의거래의 장점이다.

“농민들에게 필요한 진짜 정보는 남이 얼마에 거래했다는 것보다 사전에 내가 얼마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느냐다.”

소비지 피드백 중요…시장도매인 적합 

소비자와의 스킨십도 강조했다. 소비자를 외면해서는 도매시장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사장은 “소비지의 니즈를 왜곡없이 농민들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수의거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상장이라는 유통단계를 거치는 경매의 경우 소비자의 피드백이 약화된다는 의미다. 이어 “시장도매인은 안정적인 거래를 위한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소비지의 피드백과 시장상황에 대한 정보교류를 통해 트렌드를 파악, 미리 다음 농사도 계획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시장도매인을 도입하면 기준가격이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외국의 사례와 같이 100% 시장도매인 도매시장에서도 기준가격은 형성된다.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는 스마트 시대에 농민을 가격으로 후려치는 시대는 지났다. 더구나 경매제도를 없애자는 것도 아니다. 시장도매인을 도입해 경쟁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농산물 수출 가락시장 전초기지 기대

가락시장이 수출의 전초기지로 변신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남다른 기대감을 표현했다. 지난해 도매시장에서 해외를 노크해 거래된 금액은 700만불. 품목은 건어물, 배추 등으로 한정됐지만 내수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박사장은 “도매시장은 농산물 수출에 유리하다”며 “전국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품목으로 구색을 갖출 수 있고 농산물품질관리원과 협업해 각종 안전성 검사기능까지 장착한다면 수출의 전초기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근거리에 거대한 해외 식품시장을 둔 것은 행운이다. 이제는 경쟁을 통해 국내 소비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해외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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