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09] 마필 한 마리의 가격(馬價)이 3천만원을 넘지 않게 고시하였다
[48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09] 마필 한 마리의 가격(馬價)이 3천만원을 넘지 않게 고시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5.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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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25호, 양력 : 5월 14일, 음력 : 4월 10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 시대 초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유통한 화폐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로 된 명목 화폐인 저화(楮貨)와 면화, 삼베, 모시 등을 재료로 직조한 직물류를 사용하는 포화(布貨)였으며, 저화는 실제로 유통이 활발하게 되지 않아 처음 시행된 태종(太宗)대에는 저화 1장에 쌀 2말 가치로 상5승포(常五升布) 한 필(匹)에 준하는 가치였던 것이 점차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종이돈이라는 민간의 불신이 커져, 세종(世宗) 대에는 쌀 1되 정도로 시장에서 가치가 현저하게 낮아져, 관(官)에서도 고액의 명목 화폐인 저화를 보완하기 위해 포화를 사용하게 되었고, 백성들 사이에서는 실질적 가치가 있는 포화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실록에 마필 가격(馬價)에 대한 기사는 30여건으로 무역으로 이루어진 가격이나 개인 간 거래에서 언급된 내용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마필의 유통가격을 기록한 기사는 많지 않으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종대에는 말 값(馬價)이 너무 무거우니, 태조(太祖) 때 정한 조격(條格)에 준하여 저화(楮貨) 4백 장(쌀 기준 : 저화 4백장 x 2말 x 현시가 3만7천원 = 2천960만원)을 넘지 않게 한 바가 있으며, 세종 대에는 저화의 증가로 말 가격에 비례하여 저화량을 조정하게 하여, 당초 의정부(議政府)의 수교(受敎)로 말 값(馬價)을 저화로 큰 말은 상등에 4백 50장, 중등은 4백 장, 하등은 3백 50장이고, 중마(中馬)는 상등이 3백 장으로, 아홉 등급의 말을 매 등급에 50장씩 차를 두어 가격을 정하였으나, 종전에 동전(銅錢) 일관(一貫)이면 저화 10장과 상등(相等)하던 것이 지금은 30장에 해당하니, 공사(公私)의 말 가격을 옛날과 같이 하는 것이 옳지 못하여, 종전에 4백 50장 하던 말이면 1천 3백 50장으로 조정하고, 4백 장 하던 말이면 1천 2백 장으로 말 가격을 정하여 매매(賣買)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신축년(1421년)과 계묘년(1423년)의 말 값으로, 중마(中馬) 상중등(上中等)은 한 마리당 견(絹) 3필, 목면(木緜) 2필이고, 중마(中馬) 하등(下等)과 하마(下馬) 상등은 견(絹) 2필, 목면 3필, 소마(小馬) 중하등에는 견(絹) 2필, 목면(木緜) 1필로 하고, 주고받기 전에 사고로 인하여 잃어버린 말이나,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인하여 잃은 말, 도망하여 달아난 말에는 한 마리에 견(絹) 1필씩 값을 정하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중종(中宗)대에는 임금의 측근에서 호위를 맡은 군대인 내금위(內禁衛)의 금군(禁軍) 조차도 탈 말이 없고, 무예 시험을 거쳐서 선발된 정예 군사인 갑사(甲士)와 별시위(別侍衛)도 말을 준비 못하고 있는데, 진법(陳法)을 연습하는 습진(習陣) 때 쓰는 말의 가격(馬價)이 전에는 반 필(半疋)만 주어도 샀는데, 지금은 3필을 주어도 쉽게 살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8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서쪽 지방 일대는 역로(驛路)가 잔약하고 피폐하여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듯한데, 특히 황해도에서는 말 한 필의 값이 면포(綿布) 50 동(同)이나 되어도 말이 좋지 않아 매우 염려스러우니, 회복시킬 계책이 없는지에 대한 논의를 한 바가 있습니다.

 

■중종실록 84권, 중종 32년 4월 10일 무오 기사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삼공에게 서북 지방의 역로와 마정에 대해 의논하게 하다

영의정 김근사(金謹思), 좌의정 김안로(金安老), 우의정 윤은보(尹殷輔)에게 전교하였다.

"오늘 안주의 전위사 정백붕(鄭百朋)을 인견할 적에 말하기를, '서쪽 지방 일대는 역로(驛路)가 잔약하고 피폐하여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황해도에서는 말 한 필의 값이 면포(綿布) 50 동(同)이나 되어도 말이 또한 좋지 않았다.' 했으니, 매우 염려스럽다. 이 서쪽 일대의 도(道)들이 입은 폐해가 다른 도보다 배나 되는 것은 천사가 올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북경(北京)에 가는 사신이 또한 잇달아 끊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곤란과 폐단이 이에 이르렀으니 따로 회복시킬 계책이 없겠는가?

여타의 마정(馬政)에 있어서는 대신들이 마땅히 사복시 제조(司僕寺提調) 등과 상의하여 조목조목 진달(陳達)하면 되겠지만, 오직 이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일은 특별히 조치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 곳의 목장 안에 쓸데없이 늙고 있는 말들을 가려내어 역(驛)의 크고 작음을 헤아려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또한 태자(太子)를 책봉(冊封)한 다음에는 천사가 나올 것인데, 일대의 역말이 모두 나자빠진다면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니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병조와 함께 회복시킬 방도를 의논해야 한다."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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