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IMF 때도 이렇지 않았다. 가락시장이 깡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심층인터뷰] “IMF 때도 이렇지 않았다. 가락시장이 깡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5.16 0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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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가격 출하선택권 보장하는 상장예외품목 늘려야
시장도매인 등 경쟁체제 도입이 도매시장 살릴 핵심변수
상장예외품목 이탈영업은 가락시장 구조적 문제서 기인
이증규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
이증규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가락시장이 태동하기 전 용산 도매시장부터 농산물 유통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증규 씨(73)는 가락시장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 중 가장 연장자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으로 다른 중도매인들로부터 귀감이 되고 있는 그가 최근 상장예외품목이 논란이 되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상장예외품목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난립할 것을 우려해서다.
 

불법 아닌 불가피한 이탈 영업
상장예외품목 저격한 흠집내기

“특정 상장예외중도매인이 가락시장에서 독점적으로 이탈 영업을 한다는 내용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들이 실제 상장예외거래에서 불법을 저지른 일은 없습니다. 이탈 영업은 당초 설계물량을 상회하는 반입물량 증가로 발생한 가락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서울시가 허가한 중도매인들은 불가피하게 배정 점포를 벗어나 영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락시장 면적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다. 농산물이 반입되는 복도나 처마 밑, 통로 등에서 비가림 시설만 갖춘 채 서울시공사에 점용료를 내면서 영업하는 경우도 있다. 공사는 수십 년 전부터 포화된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의 이탈 영업 역시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불법 영업 문제는 상장품목(경매)에서 발생합니다. 경매에 참여하는 매매참가인의 경우 시장 밖에서 영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매법인의 묵인 아래 버젓이 시장 내에서 파렛트를 깔고 영업을 하죠. 상장예외품목만 한정해 논란이 된다는 건 일부 세력이 상장예외품목을 저격한 흠집내기로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틈새시장 엿본 상장예외품목 태동
도매시장 활성화 핵심인력 '중도매인'

상장예외품목의 탄생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 품목 의무 상장이 시행됐지만 경매 회사에서는 기록 상장을 하거나 부당 수수료를 징수하는 등 편법 거래로 세간의 지탄을 받았다. 1994년 법이 개정되고 1995년 30개 품목으로 출발한 상장예외품목이 탄생했다.

“현재 가락시장에는 168개 농산물 거래 품목 가운데 115개의 상장예외품목이 지정돼 중도매인과 출하자 간 경매를 거치치 않고 수의거래로 운용되고 있어요. 참여 중도매인 수만 해도 가락시장에 329명이 포진하고 있으며 1년간 상장예외거래를 이용하는 출하처만 해도 1만 5,500여 곳에 달하죠. 상장예외품목은 도매법인의 수집 능력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틈새시장에서 도매시장이 발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죠.”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들은 농산물 유통의 모세혈관처럼 전국을 누볐다. 상장예외 거래 규모는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거래 물량 19만8,701톤 거래금액 5천억 원을 상회했다. 번듯한 품목단체로 성장한 상장예외품목에 대해 이 씨는 도매시장 활성화를 위한 핵심인력이 바로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이라고 설명한다.
 

농민과 영농계획 짜는 중도매인
새로운 작목 발굴, 농민과 협업 이뤄내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들은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에 대해 책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경매는 요즘처럼 농산물 가격이 낮을 때 농민들에게 '경매 가격이 그렇게 형성돼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죠. 도매법인 입장에서 보면 참 편한 논리 아닌가요. 농민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잖아요. 반면 수의거래는 가격 책정이 중도매인의 능력으로 인식됩니다. 제값을 못받을 경우 농민들은 거래선을 끊어버리거나 엄청난 클레임도 들어오고요. 예전처럼 폭리 취하는 일은 요즘에는 상상할 수 없죠.”

산지 출하자와의 직거래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들은 농민과 함께 영농계획을 짜기도 한다. 내년 고구마 풍작이 예상되니 폼목을 다양화해 리스크를 분산하자는 식이다. 간접적인 수급조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농민들은 유통 전문가를 믿고 이듬해 생산량을 늘리거나 품목을 다양화하면서 가격폭락 충격에서 오는 위험을 분산한다. 신뢰가 쌓여 가능한 일이다. 농민과 믿음을 쌓지 못한 중도매인은 거래가 끊겨 도태된다. 중도매인들은 소비지와의 접점에서 활동하는 점을 활용해 소비 트렌드를 농민에게 귀띔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품목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다. 달래가 대표적인 예다.

“예전에 달래라는 작목은 상품화되지 않았어요.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이 달래의 상품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농민과 중지를 모은 합작품이죠. 새로운 작목에 대한 시도는 경매에서는 쉽게 도전하기 힘들죠. 3만 달러 시대 다양한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농민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중도매인은 항상 현장에서 발로 뛰죠.”
 

농산물 대금 떼일 우려 ‘제로’
정산회사 설립 후 미정산 사례 전무

일각에서는 상장예외품목을 두고 과거 위탁상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한다. 농산물을 중도매인에게 보냈으나 대금을 정산하지 않고 증발한 사례를 들어서다. 정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2013년 상장예외품목 정산회사를 설립해 5년째 운영 중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이 30억 원을 공동출자해 탄생했다.

“정산회사의 설립은 대금 정산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계기가 됐죠. 출하자의 출하 대금을 100% 보장합니다. 정산회사 설립 이후 출하자가 농산물을 보내고 대금을 정산 받지 못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수의거래의 경우 중도매인이 농민에게 소위 ‘갑질’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같은 품목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중도매인들이 경쟁하면서 중도매인 마음대로 가격을 높이거나 낮출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핸드폰으로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에 농민에게 일방적인 갑질이 통용될까요. 개설자가 감독하고 주변 상인이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경쟁자인 경매 회사가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오히려 상장예외품목은 반입신고, 송품장 등록, 판매 후 가격 등록, 가격 정산 절차가 매뉴얼로 확립돼 있기 때문에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죠.”
 

직거래·출하 선택권 보장은 핵심 경쟁력
상장예외품목 발목잡는 시행규칙 개정해야

상장예외품목의 경우 상장품목(경매)과 경쟁한다.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상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도매시장 법인과의 경쟁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어떤 출하자들은 일부 농산물은 상장경매를 이용하고 또 일부는 상장예외거래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더 높은 가격을 보장하는 출하처를 선택할 권리와 한쪽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분산하기도 한다. 직거래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진열과 경매시간, 대기시간, 경매 후 점포로의 이동 등과 같은 경매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모적인 비용이 생략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장예외거래는 중도매인 점포에 하역만 하면 바로 판매가 가능해 시간과 비용이 절감됩니다. 또한 상온에 노출될수록 상품성 하락에 취약한 농산물의 신속한 유통이 가능한 효율적인 제도죠. 상장예외거래 확대는 출하자와 소비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예요.”

이 씨는 거래 제도의 다양화와 직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라고 불렸던 가락시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상장예외품목의 확대가 시행규칙에 발목 잡혀 늦어지는 점 등을 꼽으며 이와 관련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중도매인이 자유롭게 직거래 할 수 있도록 시장도매인 도입도 하루빨리 시행해야 된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가락시장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IMF 때 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현장 반응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도매시장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유는 뭘까요. 몸은 바뀌었는데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셈이죠. 지금이라도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에 발맞춰 거래제도를 다변화하는 등 소프트웨어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저질 농산물이 난립하는 소위 ‘깡시장’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