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15] 임금이 암·수말을 후원(後苑)으로 끌어들여 교접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58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15] 임금이 암·수말을 후원(後苑)으로 끌어들여 교접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5.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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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31호, 양력 : 5월 27일, 음력 : 4월 23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망아지에 관한 기록은 100여건으로 한자로는 구(駒), 아마(兒馬) 라는 표현이 많이 쓰였으며, 그 외에 암 망아지인 빈구(牝駒), 수망아지인 웅구(雄駒), 하얀 망아지인 백구(白駒)등의 표현이 있고, 임금대별 주요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정종(定宗)대에는 경상도 계림(雞林) 안강현(安康縣)에서 종(婢)이 한 번에 아들 셋을 낳았는데, 말(馬)도 한꺼번에 망아지 두 마리를 낳았으며, 이천(利川)의 민가(民家)에서 말이 네 눈을 가진 암 망아지를 낳았는데 바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태종(太宗)대에는 의정부(議政府)에서 축마(畜馬)의 사의(事宜)를 올리기를, 각도에서 나누어 기르는 번식시킨 망아지와 말(駒馬)이 모두 1백 94필(匹)로 왕실의 마구간인 내구(內廐)에 충용하도록 건의하였으나,

임금이 소(牛)도 길러서 국용(國用)에 이바지함이 마땅하니 이 말(馬)을 가지고 소로 바꾸어 기르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을 내어, 제례용인 희생(犧牲)과 유우(乳牛)가 떨어지면 민가에서 가져다 쓰는데, 소를 많이 기르는 것도 아름다운 법으로 마필 중에 양마(良馬)를 택하여 내구에 충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로 바꾸어 활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세종(世宗) 대에는 제주의 망아지를 의정부, 육조, 여섯 대언 및 대사헌등에게 나누어 준 바가 있으며, 제주에서 진상한 망아지(兒馬)들이 모두 다 덩치가 작아 좋은 말의 씨가 없어져 가는 것은 장래가 염려스러우니, 좋은 말을 찾아서 번식하게 할 조건으로 국립 목장 안에 몸이 작고 흠이 있는 말은 제주의 수령과 감목관(監牧官)을 시켜 가려내어서 육지로 내보내게 하며, 목장에 담을 쌓은 후로는 물과 풀이 부족하여 말이 잘 번식되지 못하니, 목장 밖의 묵은 땅 중에 적당한 곳으로 내어놓게 허락하고, 공사(公私)간 목장들에 품질 좋은 상마는 부(父)라는 낙인을 찍어서 육지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되,

육지로 나갈 때에 부(父)라는 낙인이 찍힌 놈은 본 주인에게 돌려주고, 내어보낼 때마다 각 관원이 그 털 빛깔과 말 주인의 성명을 갖추어 기록하여서 보고하며, 하륙하는 곳의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상고해 살피게 하고, 제주 경내에 몸체가 적은 상마는 날짜를 한정하여 관가에 보고하여 거세하고 영을 어긴 것은 관에서 몰수하게 하였습니다.

문종(文宗)대에는 평안도(平安道)의 방어(防禦)가 긴요하니 외적(外敵)을 방어하는 준비를 위해 봄에 추려서 온 제주(濟州)의 흠 있는 말 7백 필과 충청, 전라, 경상도인 하삼도(下三道) 각 목장(牧場)의 망아지를 가지고 건장한 말로 바꾸어 보내어 말이 없는 군사에게 주어서 전마(戰馬)에 대비하게 한바가 있으며, 성종(成宗)대에는 황해도(黃海道) 철도(鐵島)의 말이 본래 1백 40필이었으나, 현재는 20필뿐으로 전부 민간에서 나누어 기르고 있는데,

그 이유가 섬에는 말꼴(馬草)이 무성하지 않아 나누어 기르고 있으며, 새끼 친 것도 망아지 2필뿐으로, 마정(馬政)은 나라의 큰일인데 헛되이 소모되고 있으니 각도(各道)에 점마를 나누어 보내자는 건의가 있자, 점마관(點馬官)을 보내면 말을 모는 군사가 여러 날 동안 식량을 싸 가지고 일에 나아가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평안도, 황해도 두 도에만 사민 종사관(徙民從事官)을 시켜 점마하게 하였습니다.

한편, 연산군(燕山君)대에는 승정원(承政院)에서 이르기를, 근일에 자주 왕실인 내정(內庭)에서 임금이 당나귀 및 망아지(兒馬)를 들여다본다고 하는데, 임금의 한 마음은 어지럽히는 침노하는 것이 많아, 개나 말(馬)도 그렇고 장기, 바둑이나 글씨, 그림으도 그런데, 좋아하고 숭상함이 비록 다르나 뜻을 상실케 하기에는 매한가지로 제왕의 학문인 성학(聖學)에 뜻을 독실히 하고 개와 말을 좋아하지 말도록 임금에게 건의하자, 다만 한때 구경한 것으로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핑계를 대었으나, 그 이후로도 망아지는 물론 망아지가 딸린 암말을 꾸준히 들이게 하였고, 실록을 기록한 사신(史臣)들은 임금이 비밀리에 암·수말을 후원으로 끌어들이게 하여 교접하는 것을 구경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58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평안도 양덕현(陽德縣)에서 말이 한꺼번에 두 망아지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수컷이고 한 마리는 암컷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4월 23일 임오 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양덕현에서 한꺼번에 두 망아지를 낳다

평안도 양덕현(陽德縣)에서 말이 한꺼번에 두 망아지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수컷이고 한 마리는 암컷이었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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