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돈산업특집①] 돼지농장에 숨어있는 축산업의 미래
[한돈산업특집①] 돼지농장에 숨어있는 축산업의 미래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3.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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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산업 딜레마: 질병 공포와 환경오염

“돼지가 병들어 죽는 일이 걱정됩니다. 중대한 제물로 쓸 희생물이 이처럼 많이 죽으니, 이는 막대한 재앙이라 매우 경악스럽습니다. 소의 전염병은 치료할 방법이라도 있지만, 돼지는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541년 11월 2일자 ‘중종실록’에는 한 신하가 돼지 전염병에 대해 임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조선 시대에도 동물 사육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전염병이었다. 전염병이 돌면 대량으로 가축이 죽어 나가기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돼지는 소보다 가치가 낮았고 특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전염병에 대한 마땅한 예방책도 없었다. 당시 정부가 할 수 있었던 조치는 돼지를 격리하는 수준이 전부였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축 전염병은 반복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육시설 또한 첨단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은 여전히 창궐하고 있고 규모화 집단화된 사육시설은 오히려 또 다른 문제점을 낳았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를 전후해 축산업의 대량 사육체계가 발전하면서 전염병의 규모와 처리비용 또한 커졌고 농장 악취로 인한 주변 환경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특히 축사의 환경문제는 최근 들어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동물복지에 대한 문제와 결부되면서 ‘싼 가격에 많은 양의 고기를 먹느냐’의 문제에서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행복한 고기’를 먹고 싶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소득 수준과 삶의 질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축사의 환경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농장에서 식탁까지는 한돈산업을 기획하면서 양돈업계의 영원한 숙제인 질병과 환경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분뇨가스, 죽음의 그림자···축사환경 문제로 대두

2013년 5월. 경상남도 거창의 한 양돈장의 분뇨저장조에는 돼지 분뇨가 성인의 허리춤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날씨에 돼지 배설물이 이동하는 배관이 막히자 외국인 노동자가 저장조 상단에 있는 배관을 뚫기 시작했고 그는 곧 분뇨로부터 올라온 특유의 달걀 썩는 냄새에 질식해 쓰러졌다. 이를 발견한 농장주 부인은 구조를 위해 뒤따라 저장조로 들어갔으나 똑같이 가스에 질식했으며 함께 들어간 농장주 또한 가스를 마시고 의식불명에 빠졌다. 농장주와 농장주의 부인, 외국인 노동자까지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사고였다.

최근에는 경상북도 군위에 있는 한 양돈장 정화조 작업장에서도 똑같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돼지 분뇨 정화조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네팔 근로자 2명이 내부청소 작업 중 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비서관 회의에서까지 이 주제가 거론되면서 심각성을 인지했고 파장이 커졌다.

이들이 마신 가스는 황화수소(H2S)로 여름철에 황을 포함한 단백질 등이 부패하면서 생기는 대표적인 유해가스다. 돼지 분뇨에서도 발생해 양돈장에서는 매년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농도에서는 사람이 자각을 못 하는 사이 혼수상태를 일으켜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가스로 반드시 농장에서는 작업 전 농도측정과 산소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들 사건은 단편적으로 사고에 의한 안타까운 사망 사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양돈장의 안전관리와 축사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는 농장들이 대형화되면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분뇨처리 인프라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것으로 밀집 사육의 집약화는 생산성은 높일 수 있었으나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뇨는 이처럼 심각한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것 외에도 여름철만 되면 양돈농가에서는 주위 농가들과 악취와 관련한 민원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한다. 농장주는 최대한 마찰을 피하고자 지역사회에 장학금을 내거나 각종 수단을 동원해 민원을 해결하는 등 축사가 대형화될수록 양돈인들은 환경문제로 인한 리스크를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 돼지고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축사 환경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환경문제는 양돈장, 나아가 축산업 전체의 가장 큰 뇌관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축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뒤처진 인프라

축사환경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축산업의 고도성장과 연관이 있다. 환경을 고려하면서 발전하기에 우리나라는 너무도 빠르고 신속한 산업화의 물결에 취해있었다.

1960년 이전 우리나라에는 농가 부업형 축산이 대다수였다. 국내 농업은 쌀 중심으로 구축돼 있었고 가축은 농업에 활용할 수 있는 소를 제외하고는 한두 마리 키우는 수준이었다. 전문적인 시설은 없었을뿐더러 헛간이나 집 주위에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치거나 외양간, 돼지우리 형태가 전부였다. 위생시설은 미비했고 생산성도 지극히 저조했다. 다만 규모가 작고 축산분뇨를 비료로 활용하는 순환농법을 영위하고 있었기에 가축분뇨에 의한 환경문제만은 제기되지 않았다. 규모가 작았으니 악취랄 것도 없었고 당시 농촌에서의 분뇨 냄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6·25전쟁이 끝나고 정부에서는 국민이 먹고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였다. 1961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발족하면서 ‘축산법’을 제정해 근대 축산으로의 발전에 첫 삽을 떴고 이후 1970년대에는 사육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전업형 농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사료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축산업이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고 치킨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면서 양계산업은 케이지사육 등 규모화와 기업형 계열화의 길을 걸으며 가장 먼저 대규모 축산시대를 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고성장에 따른 가처분소득 증가 등으로 축산물 소비가 크게 늘었고 급기야 우루과이라운드 등 개방화의 물결을 타면서 축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축산업은 급격히 몸집을 불리면서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고 그 속에서 자연순환농법 등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는 축산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가격도 싸고 급격히 살을 찌울 수 있는 옥수수 사료를 수입해 가축에게 먹이고 외국의 거대한 축사시설 등이 도입되면서 축산의 발전속도는 더욱 급하게 흘러갔다. 여기에 개방의 문이 더욱 넓어지고 자본을 가진 기업들도 축산에 입맛을 다시면서 우리나라 축산은 더욱 규모화의 길을 걸었다. 국토가 좁았던 탓에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공장형 축산이 번성했으며 생산성을 따지는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들이 접목되면서 지금의 축산이 완성되어 갔다.

빠른 성장 속도에는 당연히 환경문제에 대한 지적과 축사시설개선 등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생산의 규모화와 발전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환경문제는 정부와 농가, 관련 업계 모두 돈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관심 없이는 개선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비자들도 잘 먹고 잘살게 되자 비로소 환경과 동물복지에 관한 관심이 점차 늘고 있고 이제는 느린 농업, 친환경축산, 방목형 농장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구제역과의 전쟁

공장형 축사는 환경오염 문제도 발생시켰지만, 질병에는 더욱 취약해졌다. 좁은 케이지에서 밀집해 사육하는 방식은 가축의 면역력을 감소시키는 등 가축이 전염병에 더욱 민감해지도록 만들었고 한번 질병이 창궐하면 수많은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구제역 청정국가였다. 구제역은 19세기 초부터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으나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구제역 미발생국가로 청정지역을 고수해왔다. 기록상으로는 1911년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한 바 있고 1933년에도 발생했지만 1935년부터는 전혀 발견된 기록이 없다. 2000년 3월에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65년간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내려놓은 이후 매년 구제역은 국내 축산업을 괴롭혀 오고 있다.

구제역은 특히 양돈업계에 큰 피해를 줬다. 가장 많은 가축을 살처분했던 2010~2011년에 발생한 구제역 대란은 정부 예산만 2조8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으며 뒷수습을 했다. 당시 살처분된 돼지만도 335만9525두에 육박한다. 이외에도 구제역 발생으로 인한 수출금지, 살처분 과정에서 침출수로 인한 환경파괴, 구제역 발생 시 축산물의 이동제한, 국민의 축산 혐오와 소비급감 등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유·무형의 피해들은 구제역이 경제적 질병, 정치적 질병으로 불리는 이유가 됐다.

그간 정부에서는 질병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질병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밀집사육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밀집사육 자체보다는 밀집사육으로 인한 대리인 문제가 파생되고 경제적인 이유가 중첩된 농가들의 도덕적 해이, 방역문제, 백신 효과 논란 등이 결부되면서 질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다각도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론 축산물 소비가 늘면서 사육두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교류가 활성화된 점 등은 질병을 원천 차단하기에는 불가능하지만, 지금처럼 대란 수준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축산의 근본체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앞에서 구제역만을 거론하긴 했지만 실제로 돼지농장에서는 수많은 질병이 해마다 생기고 있으며 벌써 올해만도 8천건 이상의 돼지들이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전북 김제의 한 돼지농장에 돼지유행성설사병(PEDvirus 감염증)으로 폐사한 돼지들이 누워있는 모습.(출처=농림축산식품부 재해보험팀)
전북 김제의 한 돼지농장에 돼지유행성설사병으로 폐사한 돼지들이 누워있는 모습.(출처=농림축산식품부)

방역 섬세한 정밀타격 필요···다양한 연구 진행돼야

현재 질병 문제는 예방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지금의 축산환경에서는 방목농장을 운영하게 한다든지 각종 규제 수위를 급격히 높여 친환경 축산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은 사실상 단기간에 해결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프라 수준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다양한 방역대책과 축사규제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어떤 백신이 가장 알맞은지는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논외로 하고 농가들이 방역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역할은 뭐가 있을까.

유인책과 벌칙을 혼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문제를 다루기는 쉽지 않다.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살처분 보상금을 높이면 질병이 걸린 그 즉시 신고함으로써 신고율이 올라가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어차피 보상금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니 따로 방역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이는 농가가 방역에 대한 경각심을 사라지게 만들어 질병 상시화 가능성을 높여준다. 실제로 살처분이 이익이 될 때 농가는 감염된 가축을 생산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거꾸로 살처분 보상금은 낮고 규제와 처벌이 높으면 농가들은 질병 발생을 숨기게 되고 이런 환경은 질병의 확산을 더욱 키우는 꼴이 된다. 어떤 국가는 지연된 신고에 대해 벌칙을 부과해 가축 질병에 따른 위험을 농가에 일부 전가하기도 한다.

결국,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초기 살처분 보상금은 높이고 후기에는 보상금은 낮추고 벌칙을 높이는 등의 세밀하고 정밀한 보상제도의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방역정책에는 대표적으로 예찰과 질병완화조치(질병 확산을 막는 등)가 있는데 그림과 같이 예산 규모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점모양의 교차점을 찾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일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4가지 정책적인 접근별 영향을 사후적으로 추정한 결과가 있다. 밀집사육지역에서의 분석결과 구제역 발생 농장 반경 2km 예방적 백신(감염동물 살처분)이 총 손실이 가장 낮았으며 확산 최소화 측면에서는 반경 5km, 구제역 확산이 제한적이면 살처분 정책(구제역 감염, 감수성 동물 전수 살처분)이 좀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는 구제역 상황에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며 1가지 방역정책에도 주위환경에 따라 다양한 장단점이 도출돼 천편일률적인 정책이 불가능함을 시사해 준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17년이 됐지만, 우리는 질병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백신조차 논란이 될 정도로 합리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처럼 심층적인 연구와 논의를 계속해 우리 현실에 맞는 대안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질병·악취만 잡으면 축산업의 미래가 보인다

‘페놀아줌마’가 등장했다. 7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은경(61) 지속가능성센터 지우 대표에게 환경부장관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 신임 장관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당시 대구 시민대표로 나서 환경운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환경친화적인 인물로 페놀 아줌마로 불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환경특보로 활동했으며 참여정부 민원제안비서관과 제도개선비서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문재인 대통령과는 18대 대선후보 시절 캠프에서 생태환경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김 장관의 등장은 앞으로 환경정책의 무게중심이 더욱 환경친화적으로 옮겨갈 것을 시사한다. 축산업계에서는 반기기 힘들겠지만 결국 축산은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발전하기 힘들게 됐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한 만큼 앞으로 정부의 정책기조는 환경을 최대한 보호하는 기조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각에서는 축산업, 무엇보다 분뇨와 악취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양돈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히려 업계에서는 체질을 변화시킬 기회로 삼아야 한다. 축사환경에 대한 투자와 고민은 위기에서 나올 수 있다. 지속가능한 양돈업, 국민에게 사랑받는 한돈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축산업의 치부를 드러내고 알려서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양돈은 질병과 악취문제에서만 벗어난다면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고기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도 친환경 축산에 관한 관심을 높여가 새로운 축산물 시장을 만들어준다면 농가들이 친환경 축산의 카테고리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축산업이 2000년대 눈부신 양적 발전을 이뤄냈다면 저성장 시대 지금은 환경과 복지를 생각하는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할 때다.

참고문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가축질병의 경제적 영향 분석. 2006. 11.

Livestock Disease Policies: Building Bridges Between Science and Economics (2013), 가축질병정책에 경제학적 접근의 접목

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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