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체험 현장] "태어나서 처음으로 숲에 와 봤어요"
[숲체험 현장] "태어나서 처음으로 숲에 와 봤어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5.28 06: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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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숲속 관찰기
산림 소외 친구들의 따뜻한 봄 소풍
대전 맹학교 학생들이 생거진천자연휴양림에서 산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대전 맹학교 학생들이 생거진천자연휴양림에서 산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모기가 보고 싶은 영래

9살 영래는 항아리 가게 주인이 꿈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둠 속에 있었던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세상을 배웠다. 아이에게 손가락은 길잡이였고 손바닥은 눈이 돼 줬다.

그런 영래는 산을 유독 좋아했다. 도시와는 공기부터 다르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적 이모 덕택에 자주 산을 올랐던 영래는 "바람이 나뭇잎을 흩날리면 나무가 손뼉을 치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숲에서는 "딱딱하거나 말랑말랑한 곤충도 만질 수 있다"라고 자랑했지만 "파리와 모기를 만져보지 못한 게 한"이라고 답했다.

또래 아이들과 똑같은 엉뚱함을 지닌 영래는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은 시각 장애인이다. 그나마 영래는 보이지 않을 뿐 걷기 힘들다거나 중복 장애를 겪지 않아 적절한 도움만 있다면 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산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모습.
산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모습.

그런 영래에게도 난관은 있다. 산에 오르는 일이다. 숲에 가는 게 어렵다기보다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산에 오르는 시도조차 힘에 부친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마땅한 시설이 갖춰진 곳이 없어서다.

높은 곳을 차로 이동할 수 있다거나 평평하게 땅을 정비해 놓는 등 장애인이 오를 수 있는 산조차 우리나라에서는 손에 꼽는다. 휠체어라도 타고 있으면 높은 산에 오르는 일은 평생 꿈으로만 남는다. 그나마 대다수는 산 공기조차 마셔보지 못한다. 산을 좋아한 가족 덕택에 숲 경험이 많았던 영래 케이스는 극히 드문 경우다.
 

생거진천자연휴양림 입구 전경, 이곳은 이번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된 곳이다.
생거진천자연휴양림 입구 전경, 이곳은 이번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된 곳이다.

태어나서 처음 산에 와본 주아

초등학교 1학년인 주아는 저시력 아동이다. 명암과 색깔은 구별할 수 있어 스스로 보행이 가능하다. 주아는 확대 교과서로 책도 볼 수 있어 그나마 생활이 편리한 축에 속한다. 그런 아이조차 "산에 처음 와 봤어요"라며 "숲에서는 바스락바스락 나뭇잎 밟는 소리가 난다"라고 즐거워했다.

장래희망으로 아빠를 꼽은 주아는 나뭇잎으로 돛단배를 만들어 물에 띄어 보낸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무에 줄을 매달아 그네처럼 타본 일은 가장 재밌었다고 신나게 털어놨다. 주아 곁에 1:1로 도움을 주는 선생님도 "아이들과 같이 산에 올라 체험활동을 한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양윤형(38) 대전맹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이 학교 내에서 체험 프로그램으로 경험은 할 수 있어도 산이라는 외부 공간에서 체험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은 이동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특히 산에서는 안전을 위한 설비를 따로 구축해야 해서 체험활동을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나무 그네는 아이들이 역동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나무 그네는 아이들이 역동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발명가가 꿈인 대엽이

최근 학교에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배웠다는 13살 대엽이도 눈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는 다시 산에 오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산에 와본 후 태어나서 두 번째로 산에 올랐다고 좋아했다. 꿈이 발명가인 대엽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산에 쉽게 오르는 기구를 발명하는 것도 아이의 발명 리스트 중 하나다.

대엽이의 생활 반경은 대전맹학교인 특수학교에서의 수업 시간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특별할 게 없다. 사실 갈 만한 곳도 많지 않으며 이용할만한 시설도 딱히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엽이에게 산은 남다르다. 나뭇잎의 냄새와 바람소리, 새소리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산에 오니 말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라고 대답한 아이는 "꼭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산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숲 해설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곤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숲 해설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곤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259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지체장애가 124만 명으로 가장 많고 청각 34만 명, 뇌병변과 시각이 각각 25만 명으로 뒤를 잇는다. 정부에 등록된 총 장애인 수만 해도 260만 명에 가깝고 생활이 어렵거나 고령으로 등록조차 하지 못한 장애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생각보다 많다.

장애인들의 비중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생활권에서 그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외곽 시설이나 비좁은 집 어디선가에서 숨 쉬고 있다. 장애인 시설이 밀집 거주 지역에 들어서기 힘든 까닭에 그들은 늘 사람들의 생활권 밖에서 둥지를 튼다. 그들이 모이지 못하고 파편화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가시 돋친 말을 들어보지 않은 장애인이 없는 것처럼 장애인들은 사람들의 언어폭력, 때론 물리적인 폭력에도 노출되기 일쑤다. 장애인 가족들이 악착같이 변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목소리조차 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들을 지우고 안 보이도록 화장해 버린다. 웃고 떠들며 함께 사는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최소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이야기하는 이유다.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민·관이 협력해 만든 따뜻한 봄 소풍
나무에 줄 연결해 타는 짚라인 '인기만점'

숲이 간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숲이 간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복권위원회와 산림청, 주식회사 힐링플레이, 대전맹학교가 머리를 맞댔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이다. 이들 기관은 아이들이 산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숲 해설 선생님들을 배치해 숲과 관련된 동화를 낭독했다. 식물과 곤충도 설명해 줬고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숲 본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휴식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나무에 줄을 연결해 타는 짚라인.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사진은 짚라인을 타면서 즐거워 하는 아이 모습.
나무에 줄을 연결해 타는 짚라인.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사진은 짚라인을 타면서 즐거워 하는 아이 모습.

평소 놀이기구조차 타본 일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나무에 줄을 매달아 나무그네를 설치하거나 줄타기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짚라인을 설치해 숲에서의 역동적인 체험까지 가능하게 했다. 짚라인은 어디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탓에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레포츠로 등극했다.
 

봄꽃 식탁을 준비하기 위해 초밥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모습.
봄꽃 식탁을 준비하기 위해 초밥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모습.

봄꽃과 아카시아 시럽으로 맛을 낸 초밥과 아카시아 코디얼을 활용해 만든 시원한 음료는 아이들이 숲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점심 식사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봄꽃 식탁을 만드는 일에 열광하면서 자연 치유 음식을 맛보고 즐겼다.
 

꽃 초밥을 만들며 좋아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꽃 초밥을 만들며 좋아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유진선 힐링플레이 기획실장은 "장애 아이들이 체험하기 힘든 숲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단체가 많다"면서 "올해는 5개 특수학교를 대상으로 1년간 지속적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림청 등 공공기관의 녹색자금으로 운영되는 이번 행사가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산림 소외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줬다"고 덧붙였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숲 해설을 듣고 있는 아이들 모습.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숲 해설을 듣고 있는 아이들 모습.

힐링플레이는 앞으로도 야간 숲 체험을 통해 낮과는 다른 생물들을 체험하게 한다거나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장애 어린이들이 숲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일반인뿐만 아니라 장애 아동을 위한 기본 매뉴얼을 구축해 산림 치유의 초석을 다져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숲 해설을 하고 있는 선생님 모습.
숲 해설을 하고 있는 선생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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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2020-08-03 21:56:32
우리에게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이벤트가 되기도 하네요!
멋진 활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