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이구복 회장 “시장도매인, 농민 신뢰 없으면 진작 망했죠”
[이슈인터뷰]이구복 회장 “시장도매인, 농민 신뢰 없으면 진작 망했죠”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06.12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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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매인, 경매와 경쟁 동반성장 이뤄
수십 년간 데이터 쌓여 농민 신뢰 ‘증명’
널뛰는 가격 잡는 수급 완충 역할까지
농산물 트렌드는 시장도매인이 ‘선도’
이구복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장
이구복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장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깨진 항아리도 소비자에게 파는 곳이 시장이다. 앉아서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유통 기득권은 내려놓고 '일하는 시장'이 돼야 한다. 유통 트렌드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결국 데이터가 증명해 줄 것이다.”

이구복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장은 시장도매인 개장 15주년을 기념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의 시장도매인은 2004년 6월, 영업을 시작해 올해 15주년을 맞았다. 서울과 경기 서부권역을 책임지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동부권역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이어 국내에서 2위의 규모를 자랑한다. 강서시장은 상징성 있는 도매시장으로도 통한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 제도가 병행돼 운영되기 때문이다.

경쟁 통해 양질의 서비스 구현

"강서시장은 일종의 실험적인 시장이죠. 농안법에 따라 두 거래 제도가 하나의 시장에서 공존하고 있잖아요. 농민들은 경매장에 농산물을 상장하기도 하고 시장도매인과 거래하기도 하면서 출하 선택권을 보장받고 두 거래 제도가 경쟁하며 농민들에게 보다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4년 6월 14일 국내 최초로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한 강서시장은 시장도매인제 성공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시장도매인제는 상인들이 산지에서 농산물을 매수하거나 농민이 이들에게 위탁을 맡기면 직접 소매 상인이나 대형 유통 업체에 판매를 하는 원스톱 거래 제도다. 농민이 도매법인에게 농산물을 위탁하면 중도매인이 경매 입찰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 경매제와 대비된다. 일각에서는 시장도매인 제도의 전신인 위탁상 제도를 빗대 불투명한 거래 제도로 폄훼하기도 했으며 가격 발견 기능이 없다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강서시장, 가락시장 대비 성장률 '쑥쑥'

"시장도매인 도입 초기 엄청난 반대가 있었죠. 경매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았고요. 불투명한 시장도매인이 규모가 커지면 애꿎은 농민이 피해를 본다며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데이터가 쌓였습니다. 통계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강서시장에서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는 경쟁하며 보완 발전해왔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두 거래 제도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높은 성장률(물량 기준)로 이를 증명한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는 각각 129.4%, 167.7%의 성장률을 기록, 총 150%가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같은 기간 국내 1위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의 성장률 115.4%에 비해 무려 33% p나 높은 수치다.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의 시장도매인은 2004년 6월 영업을 시작해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의 시장도매인은 2004년 6월 영업을 시작해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시장도매인 우수성, 농민이 '증명'

"경쟁이 있으니 발전이 있는 겁니다. 동반 성장하는 거죠. 만약 시장도매인이 일방적으로 농민에게 갑질을 하는 등 피해를 줬다면 지금처럼 성장이 가능할까요. 농산물 거래는 '신뢰'가 생명입니다. 수치로 따지면 오히려 시장도매인의 성장률이 높죠. 이제 시장도매인의 우수성을 농민들이 증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시장도매인은 일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투명하고 즉각적인 거래대금 정산에 힘써 왔다. 농림축산식품부 승인 아래 시장도매인 60개 법인이 공동출자해 한국시장도매인정산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과거 시장도매인이 출하자에게 출하 대금을 개별 송금했다면 지금은 정산조직이 중간 역할을 하면서 소위 '먹튀 우려'를 씻었다. 거래대금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지난해 정산조합의 실적은 총 6,622억 원을 기록했다.

시간 제약 없는 예측 유통...가성비 '갑'

"시장도매인은 시간, 공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경매는 경매시간이 정해져 있죠. 경매를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고 경매를 위한 공간도 필요하고요. 또 그 과정 자체가 비용이죠. 경매 이후에도 다시 점포로의 이동 등 시장 내에서도 다단계 구조이기도 해요. 경매제는 근본적으로 공간이라는 물리적 약점을 갖고 있어요. 시장도매인은 24시간 출하가 가능하고 경매를 생략하니 유통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도매시장은 늘 공간 부족에 시달린다. 도매시장 현대화사업 시작도 시설 노후화와 면적의 부족에서 출발했다. 시장도매인은 경매를 위한 시공간 생략으로 도매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시공간을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기계화 자동화 비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강서시장 모델은 이같은 가능성을 실제로 구현했다.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은 경매시장보다 1/3의 면적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거래금액, 거래 물량 모두 경매를 뛰어넘었다.

시장도매인은 가격의 편차도 줄이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평균적인 농산물 가격은 시장도매인이 농민과 소비자의 협상을 대리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도출해 낸다. 일각의 우려대로 한쪽의 손만 들어주면 거래선이 끊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늘 가격의 균형점을 잡는 일은 시장도매인의 역량이 된다.

"시장도매인은 농산물 값을 예측할 수 있어요. 예측 장사라고 하는데 소비지와 접점에서 활동하다 보니 소비자 니즈를 금방 파악하기 때문이죠. 이는 농산물이 몰리면 가격이 한없이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유통을 막고 농민과 소비자 모두 만족할만한 거래를 이끌어 내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통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한국시장도매인협회 입구 모습
한국시장도매인협회 입구 모습

크라우드 펀딩 시대, 발로 뛰는 시장돼야

농산물도 유행이 있다. 과거 크고 단단한 채소류가 인기를 누렸다면 지금은 손바닥만 한 엽근채류가 유행이다. 품목별 계절별로 소비자 선호는 시시각각 바뀐다. 두릅은 거꾸로 농민과 유통인이 새롭게 상품처럼 만든 경우다. 이는 산지와 소비지의 최전선에서 스킨십을 하는 유통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산지를 다녀야만 품질을 높이고 고객이 찾는 상품을 선별할 수가 있어요. 산지 현실과 소비자의 니즈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거죠. 시장도매인이 도입한 리콜 제도, 콜드체인 시스템 모두 양 주체의 욕구를 반영한 것입니다. 두 주체 사이에서 현실 가능한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고 농민에게 컨설팅도 하죠. 세상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산지와 소비지는 거리가 있어요."

고객을 파악하는 일은 상품을 파는 기업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 포인트다. 특히 GDP 3만 달러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소비자의 니즈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됐다. 품목을 세분화해 공략하는 카테고리킬러, 소비자들이 직접 돈을 모아 상품을 만드는 크라우드 펀딩이 유행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일제시대 유통을 고집하면 안 되죠. 이제는 발로 뛰는 시장, 역동적인 시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점점 산지와 소비지가 규모화 전문화되면서 도매시장을 이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이제는 도매시장이 농민과 소비자를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언제까지 밥그릇 전쟁만 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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