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03] 관청에서 쓰는 마필(雇馬)을 전문적으로 조달하는 용역 조직이 운영되었다
[40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03] 관청에서 쓰는 마필(雇馬)을 전문적으로 조달하는 용역 조직이 운영되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6.14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9-239호, 양력 : 6월 14일, 음력 : 5월 12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에 사신이나 지방관의 왕래 및 관용 물자의 운송에는 주로 역참(驛站)에서 보유하고 있던 역마(驛馬)와 백성들에게 요역(徭役)의 형태로 부과하여 입마(立馬)시킨 관용마(官用馬)를 이용하였는데, 이 관용마를 쇄마(刷馬)라 하였으며, 초기에는 민간의 말을 징발하는 쇄마제를 시행하였으나 역호(驛戶) 및 마호(馬戶)가 마위전(馬位田)을 경작해서 얻은 재원으로 입마하는 역참제가 확립되면서 주로 역마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중한 부담, 역마가의 상승, 전란 등으로 역참이 부실해지고 근무하는 역속(驛屬)의 이탈 등으로 역마를 확보하기 어렵게 되자 역마를 맡아 기르는 마호(馬戶)를 두는 등 민간으로부터 말을 조달하는 쇄마제를 다시 시행하게 되었으며, 이에 관에서는 쇄마가(刷馬價)를 징수하거나 말의 구입 및 임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관청이나 역참에 재정 기구를 설치하였는데 이를 고마청(雇馬廳) 또는 고마고(雇馬庫)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요역제가 화폐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지방 관청에서는 민간의 말을 돈을 주고 사는 쇄마고립제(刷馬雇立制)를 도입하였으며, 역참에서는 국비로 말을 사서 각 역(驛)에 나누어 배치하는 역마고립제(驛馬雇立制)를 시행하게 되었고, 후기에는 관청이나 국가에서 말을 사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이 조상 대대로 소유한 전지(田地)인 민결(民結)에서 징수한 대동미(大同米) 중에서 지방 재정을 위하여 지방에 남겨 둔 저치미(儲置米) 또는 유치미(留置米)로 마필을 구입하거나, 별도의 목돈을 마련하여 그 이자로 마필 구입비를 충당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관(官)에 상납하는 고마(雇馬)를 집단으로 용역 받는 조직이 들어섰는데 이를 마계(馬契) 또는 고마계(雇馬契), 입마계(立馬契), 쇄마계(刷馬契) 등으로 불렀으며, 이렇게 마계를 조직하여 고마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마계에는 말을 기르는 마호(馬戶)와 말의 주인인 마주(馬主), 말을 다루는 구인(驅人)을 두었으며, 패두(牌頭)나 두목(頭目) 등의 위계 조직도 갖추어, 패(牌)를 가지고 돌려가며 일을 하여, 한양의 경우는 한강에서 도성까지 세곡(稅穀)을 운송하는 일도 마계에서 맡아, 호조(戶曹)에서 비용이 지급되는 공계(貢契)로도 운영되었습니다.

한편, 민간에서는 고마에 드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계라는 납세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이 조직을 고마계(雇馬契), 대동계(大同契)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403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역옥(逆獄)이 일어나 죄인을 체포해 오는 일이 잇따르는데 역참(驛站)의 인마(人馬) 숫자가 많지 않으니, 근래의 전례대로 강원도, 황해도, 공홍도 등의 역말 가운데 상등과 중등의 말 15필씩을 임시 관원인 차사원을 특별히 정하여 올려 보내도록 하유하고, 부족한 것은 우선 대동미의 출납을 관장하는 선혜청으로 하여금 쇄마(刷馬) 30필을 5일 동안 값을 주고 빌려서 보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광해군일기[정초본] 103권, 광해 8년 5월 12일 신사 기사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병조에서 죄인 압송에 필요한 말을 우선 빌려 쓸 것을 아뢰다

병조가 아뢰기를,

"역옥(逆獄)이 또 일어나 체포해 오는 일이 잇따르는데 두 역참(驛站)의 인마(人馬) 숫자가 많지 않으니 매우 민망하고 염려스럽습니다. 근래의 전례대로 강원도, 황해도, 공홍도 등의 역말 가운데 상등과 중등의 말 15필씩을 차사원을 특별히 정하여 성화같이 올려보낼 일을 본도 관찰사들에게 하유하고, 그 사이 올라오자면 필시 날짜가 많이 걸릴 것이니 우선 선혜청으로 하여금 쇄마(刷馬) 30필을 5일 동안 값을 주고 빌려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정족산사고본】 23책 103권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