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24] 임금이 하는 사냥(打圍)에 몰이하는 군사(打圍軍) 4만명을 동원하였다
[53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24] 임금이 하는 사냥(打圍)에 몰이하는 군사(打圍軍) 4만명을 동원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6.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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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40호, 양력 : 6월 17일, 음력 : 5월 1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임금이 주관하여 대규모로 군사를 거느리고 하는 사냥 훈련을 강무(講武)라 하였는데, 군사 동원 없이 임금 또는 중신(重臣)의 책임하에 수행원 및 수행 군사들과 함께 하루나 이삼일의 단기간 일정으로 짐승을 포위하여 잡는 사냥을 타위(打圍)라 하였으며, 기본적으로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시행하였고, 사냥하여 잡은 짐승은 종묘에 제물로 바치거나 어찬(御饌)으로 소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실록에 타위에 관한 기사는 150여건으로, 조선 초기에는 임금 주관 하에 대규모 군사를 동원한 강무가 많아 태종(太宗), 세종(世宗)대에는 기록이 적으나, 강무와는 달리 열병(閱兵)인 대열(大閱)을 통한 진법(陳法) 훈련에 더 큰 비중을 둔 세조(世祖) 대 이후에는 타위에 대한 기록이 많아, 중종(中宗)대에 70여건을 비롯하여 성종(成宗), 연산군대에 기사가 많으며, 이후에는 기록이 많지 않아 전반적인 군사력 약화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고, 임금대별 주요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세종대에는 중국에서는 날마다 닭, 돼지, 양, 소 등을 써서 어찬(御饌)에 이바지한다고 하는데, 조선에서는 토산물이 적어서 올리는 반찬이 이미 박하고, 군사들의 사냥(打圍)도 금하며, 때 아닌 진상도 정지케 하여 어찬이 지나치게 박하니, 당번(當番) 군사(軍士)들에게 돌려가면서 짐승을 잡게 하여, 어찬(御饌)에 이바지하고 군사들을 연습시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타위(打圍)를 한 달에 한 차례씩 하자는 건의를 하자 그대로 따른 바가 있으며,

세조대에는 여러 장수(將帥)를 불러서 타위법(打圍法)을 강(講)하였는데, 타위할 때 호랑이, 스라소니, 돼지, 사슴 등을 보고 여러 위(衛)에서 다투어 잡다가, 만약 황룡기(黃龍旗), 교룡기(交龍旗)를 세우면 본소(本所)로 돌아가고, 초요기(招搖旗)를 세우면 장수(將帥)가 와서 교룡기(交龍旗) 아래에 서면서 여러 장수(將帥)가 모두 오게 하였으며, 또한 여러 장수에 명하여 휘하(麾下)에 3인을 거느리고 뜰에 나누어 주둔(駐屯)하였다가, 징(金)소리에 나아가고 북(鼓)소리에 물러가기도 하고, 혹은 북소리에 나아가고 징소리에 물러가면서 변율(變律)의 법(法)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성종 대에는 비(雨)가 오기를 모든 신(神)에게 다 빌어야 하는데 부처에게만 빌어 응험(應驗)이 없으므로, 광주(廣州) 검단산(檢丹山)에서 짐승을 쫓으면 비가 온다는 얘기가 있으니, 사복(司僕)을 보내어 타위(打圍)하도록 하여 노루와 사슴을 잡아 중국 사신의 연향(宴享)에도 쓰고 비가 오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 바가 있으며, 헌릉(獻陵)의 남쪽 산에서 임금이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근일에 타위에서 화살에 맞은 짐승들이 많아 수색(搜索)하여 찾고자 한다고 하자, 그 짐승들을 백성들이 찾아서 먹는다면 그것도 또한 임금이 내려 주는 것이라고 찾지 못하도록 한 바가 있습니다.

연산군 대에는 임금이 타위를 하시기 전에 문묘(文廟)의 공자 신위에 참배하는 알성(謁聖) 후에 행하기를 건의하자, 성묘(聖廟)를 참배하려면 목욕을 해야 하는데, 감기에 걸릴까 두려워서 못하고 사냥은 목욕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가겠다고 한 바가 있으며, 온 천하의 사람이 임금의 신하 아닌 자가 없는데, 몰이하는 타위군(打圍軍)이 4만 명도 못되는 듯하니, 모든 사모(紗帽)를 쓴 인원은 물론 전직 조사(朝士)들이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인 품종(品從)을 내게 하여 4만명의 수(數)를 채우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중종대에는 타위 때에 범에게 다친 사람에게 전의감(典醫監)의 의원 1인을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으며, 범에게 다쳐서 죽은 사람은 수재나 화재 때문에 죽은 사람의 예에 따라 후하게 돌보도록 하였고, 임금이 고령에 사냥을 하려고 하자, 타위는 원래 종묘에 금수(禽獸)를 잡아 바치고 무사(武事)를 닦기 위한 것으로, 임금의 옥체가 여러 날 미령하시어 쾌차하지 않으신데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달리며 사냥하기가 실로 미안하며, 조정의 체모에도 매우 온당하지 못하니 정지하라는 건의를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은 기록도 나타나 있습니다.

53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서산(西山)에서 사냥(打圍)할 때에 내가 대소(大小)의 모든 관사(官司)에서 여러 가지 설비를 갖춘 장막(帳幕)인 공장(供帳)을 설치하는데, 매우 옳지 못하니 앞으로는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는 외에는 여러 관사의 장막을 일체 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종실록 203권, 성종 18년 5월 15일 갑인 기사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사냥할 때에 공장의 설치를 금하다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서산(西山)에서 사냥[打圍]할 때에 내가 대소(大小)의 모든 관사(官司)에서 모두 공장(供帳)을 설치한 것을 보았는데, 매우 옳지 못하다. 이뒤로는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는 외에는 여러 관사의 장막(帳幕)은 일체 금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1책 203권 11장

【주】

공장(供帳) : 여러 가지 설비를 갖추고 막(幕)을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