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③]쌀 생산조정제 삼세판은 해야 된다?
[기획연재③]쌀 생산조정제 삼세판은 해야 된다?
  • 연승우 기자
  • 승인 2018.03.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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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생산조정제의 역사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농민들이 공공비축미로 팔기 위해 트랙터에 쌀 가마니를 싣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농민들이 공공비축미로 팔기 위해 트랙터에 쌀 가마니를 싣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한국의 쌀 정책은 1970년대 쌀 자급 달성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고 1977년 통일벼 보급을 계기로 100% 쌀 자급을 이룩한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생산량과 소비량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공급과잉의 기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쌀 자급을 달성한 이후 양곡정책은 별다른 기조 없이 쌀 농가의 소득보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쌀 수급에 대한 정책은 장기적 관점 없이 쌀농사의 풍흉에 따라 만들어진다. 특히 쌀 수입 개방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쌀 수급은 외적 요인에 의한 재고문제를 떠안게 된다. 여기에 1997년 이후 실시된 대북 쌀 지원이 2008년 이후 중단되고 2004년 쌀재협상을 하게 되면서 쌀 공급과잉은 당연한 순서였지만, 정부의 장기적 대책은 없었다.

1980년 대흉년으로 인한 악성재고 증가

1980년대의 쌀 수급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역대 최악의 흉년으로 꼽히는 조선 시대 경신대기근 이후 가장 큰 흉년이었던 1980년은 전년보다 쌀 생산량이 36.2%나 감소해 미국 등에서 약 225만톤이 긴급 수입되었고, 그다음 해에도 쌀을 수입하면서 정부의 악성 재고가 됐다.

이와 함께 1970년대에 도입된 다수확품종인 통일미가 소비자들의 소득향상으로 외면되면서 정부 재고로 누적된 것도 1980년대 정부 재고가 증가한 요인 중 하나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쌀의 풍작으로 생산량이 590만톤에 달한 것을 계기로 1991양곡년도에는 정부 재고가 약 214만톤에 달하였고, 재고율은 37.3%로 FAO의 최소 재고율보다 2배 이상을 기록하게 되었다.

2000년대 수입쌀과 생산조정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쌀은 최소 시장접근물량을 허용하면서 부분적인 개방과 10년 후 다시 재협상을 한다는 조건도 명시했고 한국은 2004년 쌀 재협상을 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쌀 생산량의 확대, 쌀 관세화 유예에 따른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의 수입으로 공급이 확대되는 반면 쌀 소비량은 계속 감소해 1996년 이후 쌀 재고량이 많이 늘어나 2001년 133만5천톤, 2002년 144만7천톤을 기록하였고, 그로 인해 가격 불안정이 심화되고 농가경영이 큰 타격을 받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런 구조적인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고,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에서 관세화 유예조건으로 명시한 효과적인 생산통제 조치로 생산조정을 실시함으로써 2004년에 열릴 쌀 재협상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2003년에 쌀생산조정제를 실시했다.

이에 앞서 농식품부는 2001년 쌀 재고가 늘어나자 논콩수매제를 실시한다. 사실상 논콩수매제는 쌀생산조정제와 병행돼 실시됐지만 밭콩 2407원에 비해 논콩은 수매가격이 4770원이라 농가의 형평성 문제와 논콩을 심게 되면서 콩 공급과잉을 불러오는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2003년 실시된 쌀생산조정제는 양곡정책에서 처음으로 쌀 감산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3년간 벼 재배 및 상업적 작물 재배 중단을 조건으로 보조금 단가는 비진흥지역 평균 임차료 수준인 300평당 30만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2002년, 2003년 연속으로 흉년이 들면서 쌀 생산량이 감소하고 쌀값이 오르면서 농가들의 참여가 낮았다. 2002년에 약정한 면적은 전체 벼 재배면적의 2.6%인 27,529ha이었으며, 실제 이행율은 2003년 96%, 2004년 92%, 2005년 90%로 낮아졌다.

여기에 참여 농지는 대부분이 중산간지, 비진흥지역의 경지정리가 안 된 논이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생산조정제가 없었어도 휴경했을 농지가 많았기에 재배면적 감소와 함께 생산량을 줄이는 효과가 떨어졌다. 당시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산조정제 참여 농가 조사 결과, 2006년에 벼농사로 복귀하겠다는 면적이 45%로서, 이를 기준으로 재배면적 순감소는 73%이다.

그리고 생산조정 참여 농지의 단수는 전국 평균 단수 대비 3∼5%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되어, 생산조정 시범사업의 생산량 감축 순효과는 43∼70%로 추정된다.

두 번째 생산조정제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

2002~2003년 연속 흉년으로 쌀 재고 감소와 쌀값은 올랐지만 2004년에는 대풍년이 들고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쌀 재협상을 통해 밥쌀용 쌀까지 수입되면서 역대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사실 쌀값만 보면 2016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악재가 겹친 해이다.

2004년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12.3%가 늘면서 쌀값은 연일 하락했다. 여기에 추곡수매제가 2005년부터 폐지되면서 농가들의 쌀값이 더 떨어질 거라는 불안 심리가 더해지면서 재고를 갖지 않으려고 낮은 가격에 쌀을 매각했다.

그러나 2005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으로 쌀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정부의 쌀 재고는 부족해지고 쌀값이 다시 오르자 쌀 수급대책은 더 나오지 않았다.

2004년 대풍에 이어 4년 뒤인 2008년 또다시 대풍이 들면서 쌀값은 떨어지고 정부 재고는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북 쌀지원이 중단되면서 북한으로 보내지던 수입쌀이 국내로 유입돼 공급과잉에 한몫 더했다.

농식품부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2011년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을 도입했다. 당시 재고량을 보면 2008년 68만6천톤, 2009년 99만3천톤, 2010년 150만9천톤이었다. 재고로 인해 쌀값이 2000년 이후 최저치로 하락하였고, 재고미 보관에 따른 정부의 부담도 많이 늘어났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농식품부는 벼 종자 개량, 재배기술 발달 등으로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소비량은 지속해서 감소해 쌀의 공급과잉이 구조화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자급률이 낮은 콩이나 조 사료 등을 논에 재배하여 곡물의 자급률을 높이고, 쌀의 공급과잉 구조를 해소한다는 목표 아래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한시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생산량이 20% 이상 감소하는 흉년을 맞으면서 이 사업도 흐지부지된다. 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의 평균 이행률이 애초 계획의 45%에 지나지 않았고 2010년 흉년으로 인해 쌀 재고가 감소하고 쌀값이 오르면서 농식품부는 시행 1년 만에 사업 규모를 1/8 수준으로 대폭 축소했다.

이 사업은 수요 예측에 실패했고 일관성 없이 즉흥적으로 시행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2003년 쌀생산조정제를 그대로 베낀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2012년 연속 흉년으로 인해 쌀 재고량은 2012년 76만톤으로 FAO의 권고치 80만톤에 모자라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의 쌀 생산량과 정부재고
한국의 쌀 생산량과 정부재고

2017년 생산조정제 도입 불발

2012년을 기점으로 흉년이 끝나고 2013년부터는 쌀생산량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소비감소가 맞물리면서 재고가 증가했다. 생산량과 재고 부담으로 쌀값이 떨어지자 농식품부는 2016년 쌀 생산조정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고 농민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과거 실패사례를 들어 예산을 전액 삭감해 사업은 불발됐다. 2016년 도입한다고 발표한 생산조정제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재탕에 삼탕이었다. 풍년 이듬해에는 생산량이 감소하던 기존과는 달리 2014년과 2015년 생산량은 계속 늘어났다.

이와 함께 정부 재고를 방출하지 못해 2017년 정부 양곡 재고가 233만톤, 민간 재고 118만톤으로 재고량이 총 351만톤까지 늘어났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농식품부는 2016년 말 ‘2017 중장기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보완대책은 벼 재배면적 3만5000ha를 감축하고 소포장(5kg 이하) 유통, 등급표시제ㆍ혼합금지제 등 개선, 소비권장기한 표시제 도입 검토를 통해 소비자 수요에 맞는 고품질 쌀 유통 활성화와 소비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증산과 감산 반복되는 싸이클

1990년대 이후 양곡정책에 있어 증산정책은 사실상 폐기가 됐지만,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쌀 생산 유지정책은 2000년대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3%대로 무척 낮다. 그나마 쌀자급률은 2012년 80%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쌀 생산을 유인하는 정책의 효과가 크다. 쌀 생산을 유인하는 대표적인 정책은 쌀소득보전직불제이다.

쌀을 생산하는 논을 유지하고 있으면 소득을 보장하는 고정직불과 쌀값 하락에 따른 보전을 지원하는 변동직불금이 현재까지 쌀 생산을 유지하는 요인이라는 점은 학계 등에서 지적하고 있는 사실이다.

증산을 유도하는 정책은 없지만, 생산을 유지하는 정책을 사용하면서 쌀값이 폭락할 때마다 농식품부는 감산정책을 시행했다. 쌀 정책의 핵심인 쌀직불금을 유지하면서 생산조정제를 도입하게 되면 쌀 농가는 양쪽을 저울질해 자기에게 유리한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첫 번째 쌀생산조정에서는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논을 중심으로 농가들이 신청했고 2012년 쌀값이 오르자 농가들이 계약을 중도 해지하거나 참여율이 낮아 결국 실패로 전락했다.

논콩 또는 조사료 재배가 쌀만큼의 소득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의 가격을 지지하는 변동직불금 정책이 유지되는 한 감산정책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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