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역사, 그리고 우리의 식탁 변천사
쌀과 역사, 그리고 우리의 식탁 변천사
  • 옥미영 기자
  • 승인 2018.03.29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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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산업 발전과 농지보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새하얀 밥은 부의 상징이자, 넉넉한 인심으로 대표되던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에는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고 같은 민족인 북한은 아직도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쌀이 턱없이 모자랐던 1960년대에는 ‘무미일’을 지정해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쌀을 원료로 한 과자와 엿류의 생산 그리고 서민들의 술인 막걸리 제조에까지 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모두 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반세기 만에 모든 전세는 뒤집혔다.

‘한국인의 힘은 밥심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은 여전히 공공연하게 등장하지만, 먹거리가 넘쳐 많이 먹는 것이 병이 되어버린 지금, 흰 쌀밥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건강한 장수를 위해 좋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밥을 마음껏 배불리 먹는 것이 사는 소망이자 목표인 시절이 있었다면, 탄수화물의 공급원을 많은 부분에서 섭취하는 현대인들은 어떻게 하면 밥양을 줄이고 적게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산다.

하지만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 분명하다. 쌀은 한국인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의 30~40%를 쌀에서 섭취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쌀밥을 포기하거나 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와 쌀의 역사

인류가 쌀을 먹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하지 않다. 쌀 재배의 발상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나라 쌀 재배의 역사는 중국으로부터 벼농사 기술이 전래했다는 것이 농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비교적 일치된 견해이다. 다양한 농사기구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다양한 경로로 벼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쌀은 석기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에게 에너지원의 역할은 물론 문화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쌀 재배의 특성상 많은 물과 노동력이 투입돼야만 해서 외부와의 교류보다는 마을 중심 문화로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쌀은 특히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식량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 공동체의 근간을 형성했다.

우리 조상들이 서로 돕고 생활하기 위해 활용했던 두레나 품앗이 등의 마을 공동 노동 조직도 모두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생성되고 발전해 왔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우리나라가 쌀을 주식으로 본격적으로 이용한 것은 통일신라 시대부터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의 재래벼는 쓰러짐에 약하고 도열병에 약하지만, 우리 풍토에 맞게 추위에 강하고 물이 부족해도 잘 자라는 특징을 가졌다.

재래벼는 지금과 같이 수확량이 많은 형태가 아니라 천수답, 추운 날씨에서도 잘 자라는 벼로 점차 진화됐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농민 스스로 우량 품종을 개발했고 일부 품종은 지식인들에 의해 장려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농업의 역사에서도 일제 강점기의 그늘은 참담하고 우울했다. 일본은 전쟁으로서의 필요한 식량 확보와 자국에 필요한 농산물을 우리나라에서 약탈해 조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농업정책을 펴나갔다.

경술국치 시점부터 1930년대까지는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벼농사를 위주로 해 쌀을 생산하고 이를 일본으로 반출했다. 조사에 따르면 1920년 13.8%에 달하던 쌀 생산량의 이출률은 1934년 절반을 넘어 56.4%에 달했다. 1기부터 3기까지 계획된 일본의 국내 농업정책은 2기인 1930~1938년에 이르자 일본은 자국 내 경제공황과 쌀 과잉 생산으로 인해 미곡통제법을 만들어 한국의 쌀 생산과 이출을 조절했다. 광복이 이뤄지기 전까지(3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군량미 조달을 위해 적극적인 증산을 강행했으며 한국에서 생산된 쌀은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모조리 징발했다.

우리나라의 재래벼 품종은 무려 1500여종에 달했지만 일제 강점기 재래벼를 폐지하고 일본의 벼품종을 도입하는 정책으로 급격히 무너지면서 1935년에는 17.8%인 55종만 남아 재배의 명맥을 간간이 이어갔다.

쌀의 자급자족을 이루다 ‘통일벼’ 개발

요즘 쌀의 문제는 남아도는 것이 문제이지만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이 턱없이 모자랐다. 외화가 부족해 쌀을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쌀의 자급은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였다. 정부는 쌀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혼식과 분식을 장려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여 쌀과 보리의 혼합 비율을 확인했고, ‘양곡 소비 절약에 관한 행정명령’을 통해 음식판매업자, 양곡매매업자, 양곡가공업자의 쌀 판매를 일일이 통제했다.

우리가 개발한 벼 품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부 연구기관에서는 1930년대부터 벼 품종 개량을 시작해 자포니카 계열의 품종들을 여럿 개발했고, 농민들은 개량된 품종들을 재배했다. 그러나 이 품종들의 생산성은 높지 않아서 우리 국민의 소비량을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생산기술을 바꾸고, 비료를 많이 주어도 생산성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허문회 교수는 식량부족의 해결책은 품종 개량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생산성이 높은 벼 품종 개발을 계획했다. 그는 필리핀, 대만, 일본 벼의 삼원교배를 통해 ‘통일(IR667)’ 품종을 개발했다. 이는 예전에 시도되지 매우 획기적인 육종방법이었다.

그가 속해있던 국제미작연구소는 육종연구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농촌진흥청과의 협력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71년에 ‘통일벼’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1972년부터는 농가에 보급되어 기반을 마련했다. 마침내 1976년 자급자족의 꿈을 이뤄냈다. 통일벼로 쌀의 자급을 이루게 됨에 따라 그동안 대표적인 절미정책이었던 무미일(無米日)이 폐지됐다.

무미일은 1969년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 일명 ‘무미일(無味日)’로 정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규제한 것이다. 1977년 쌀 수확량이 사상 처음으로 4천만 석을 돌파해 식량 수급이 가능해지자 정부는 무미일(분식날)을 폐지하고, 쌀도 백미에 가까운 9분도로 도정하게 했다.

여러 쌀 수요 억제책들도 완화되었다. 특히 쌀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 만인 1977년 12월 쌀막걸리 제조를 허가했는데, 쌀막걸리의 등장은 그해 10대 뉴스에 포함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매년 통일계 신품종의 재배면적이 늘어감에 따라 쌀의 생산량도 높아졌으며, 1976년에 신품종 재배면적은 전체의 44%로 확대됐다. 1977년에는 600.5만 톤의 쌀을 생산했으며, 전국 평균 수확량은 10a당 494kg으로, 일본(1975)의 종전 세계 최고기록(447kg/10a)을 넘었고, 쌀의 자급률은 113%를 기록했다.

비록 1978년부터 병충해, 냉해 등으로 통일계 신품종이 큰 타격을 받고 수확량이 크게 떨어졌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통일벼의 개발과 보급에서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자포니카 품종에 대한 개량 연구가 계속되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주곡인 쌀의 실질적인 자급을 이루고 있다.

국내 쌀 생산과 소비의 변화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kg을 정점으로 매년 줄어 2015년 62.9kg까지 감소했다. 이를 일일 섭취량으로 환산하면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72.4g으로 전년보다 5.8g 감소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부에선 쌀의 소비 감소를 한국인의 주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의 대체인 빵과 국수 등 소비에서 찾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된다.

1인당 밀가루 소비량 역시 1973년 6.3kg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00년 3.4kg, 2005년 1.5kg, 2010년 1.5kg, 2015년에는 1.2kg으로 2000년에 들어 완만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쌀과 밀가루, 여기에 서류의 소비가 동시에 감소하고 있지만, 잡곡과 두류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리의 경우 줄거나 늘지 않는 대신 일정소비량을 지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잡곡 소비는 1981년 1인당 소비량이 0.3kg까지 줄었으나 일명 ‘혼합곡’ 등장과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 말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해 2000년 0.8kg에서 2002년 0.9kg까지 늘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14년 1.0kg대에 진입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1kg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는 두류의 경우는 1970년대에는 4kg대를 소비하다 90년대 들어 3kg대로 소비가 줄었으나 2011년과 2012년에는 1.8kg, 1.9kg 수준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 웰빙과 건강에 관한 관심 증가로 다시 증가세로 반전되면서 2013년 2.1kg, 2014년 2.5kg, 2015년에는 2.8kg까지 증가했다. 보리쌀은 한때 1인당 소비량이 40kg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1974년 쌀 생산량이 크게 부족할 당시 보리 소비는 39.9kg으로 정점을 찍었다. 통일벼 생산으로 쌀 생산이 소비량을 앞지르면서 보리 소비는 큰 폭으로 줄어 1986년에 3.6kg으로, 1990년엔 1.6kg까지 줄었다.

2000년 초반 1.0kg까지 감소한 보리 소비는 이후 보리쌀의 영양학적 장점이 부각되면서 조금씩 늘기 시작해 2010년 1.3kg대를 회복했고 줄곧 줄거나 늘지 않고 6년째 1.3kg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쌀과 함께 소비가 감소하고 있는 서류의 경우는 1960년대가 소비의 절정이었다. 식량을 대신했던 1967년 당시 1인당 소비가 6.3kg에 달했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3kg대를 유지했던 서류는 1988~1995년까지 2~3kg 내외 소비를 오르내리다가 2000년 들어 3.7kg으로 대폭 증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해 2003년부터 2kg 내외에서 소비변화를 지속하다 지난해 다시 2.5kg으로 줄었다. 쌀 소비 감소와 잡곡 소비 증가는 전국의 도별 논밭별 경지면적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1975년 127만6599ha에 달했던 논 면적은 1990년 134만5280ha까지 늘었다가 이후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100ha 선이 무너졌다.

이 같은 감소세는 이듬해까지 이어지다 2012년과 2013년 96만6076ha, 96만3876ha으로 증가하는 듯 보였으나 2015년 현재 90만8194ha까지 줄어든 상태다. 반면 밭 경지면적은 늘어나고 있는 상태다. 1975년 96만3093ha 규모였던 밭 경지면적은 쌀 소비가 증가하며 감소세를 지속했었다. 1990년 76만3532ha였던 밭 면적은 2000년 73만9724ha, 2005년 71만9228ha까지 줄었다가 증가세로 반전되면서 2010년 73만1161ha에서 2012년 76만3905ha까지 늘었다. 증가세는 이듬해에 주춤했으나 2014년 75만7498ha에서 2015년 77만828까지 늘었다.

1990년 벼 재배면적의 56.7%에 불과했던 밭 경기면적은 2005년 65.0%에서 2010년 74.2%로 증가했으며 2015년 현재 논 대비 약 84.8%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농업면적에서 차지하는 논의 면적은 1990년 63.7%에서 2000년 60.8%로 줄었으며 2010년 57.3%에서 지난해 54.0%로 절반 수준까지 급락했다.

쌀 산업의 미래와 가치 사슬

하루에 밥 두 그릇도 채 먹지 않는 쌀 소비의 현실은 1인 가구의 증가 등 가구구조의 변화도 크지만 최근 쌀밥이 비만과 당뇨, 고혈압 등 대사성 질환의 주범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오해가 확산하는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쌀은 밀보다 소화 흡수가 느려 오히려 급격한 혈당 상승을 방지함으로써 비만과 당뇨 등 각종 성인병 질환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영양학계의 공식 입장이다. 밥은 반찬과 함께 섭취하기 때문에 포만감이 오래 지속돼 오히려 건강한 몸을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최근 농업계는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는 한편 양적인 소비는 줄지만 대신 맛과 질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인 쌀의 씹는 느낌과 풍미를 두루 갖춘 품종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개발하는 등 이제 맛과 품질로 경쟁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트렌드는 단순한 에너지원으로서의 쌀에서 맛은 물론 건강기능성으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전통적인 쌀의 역할을 보강해 다이어트와 성장촉진, 알콜 분해 등의 기능성 성분을 강화한 기능성 쌀의 출시가 그것이다. 이밖에도 식이요법이 필요한 선천성 대사질환, 당뇨 등의 환자를 위한 맞춤형 쌀 개발과 출시는 음식을 통한 치료와 예방목적으로서 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새로운 소비 시장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쌀 소비와 재고 증가 여기에 경지면적 감소 등 쌀 산업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대안으로 손꼽힌다.

기능성 쌀의 생산량과 소비량은 아직 미비한 수준이지만 한국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이자 주곡인 쌀의 변신은 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소비자들의 건강에 관한 관심을 고려할 때 쌀 산업의 블루오션으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에 쌀을 활용한 국수와 피자, 라면 등의 가공식품 개발, 막걸리와 화장품과 세면용품 등의 바이오산업 역시 쌀 산업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농업계 내부에서는 최근 양곡의 소비 패턴이 쌀 소비는 줄고 있지만, 잡곡과 두류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해 이제 밥을 쌀로 한정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의견을 제기한다. 밥으로 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쌀로 인정하고 확대함으로써 소비를 지속해서 흡수, 확대하고 우량 농지를 보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식량안보 그리고 농지 보전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인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량안보의 핵심은 주식의 자급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단순한 생산액과 소비의 개념이 아니라 산업이 가진 모든 가치 사실 측면을 고려해야 하며 같은 개념의 연장 선상에서 농지 보전은 곧 농지의 양적인 확보라는 단편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농지보전제도를 통해 우량 농지의 양적 확보뿐만 아니라 질적인 보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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