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44]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소와 돼지를 전담하여 기르는 관청이 있었다
[53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44]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소와 돼지를 전담하여 기르는 관청이 있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8.06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9-260호, 양력 : 8월 6일, 음력 : 7월 6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돼지, 양, 염소, 거위, 오리 등의 가축을 사육하며 궁중의 잔치인 가례(嘉禮), 길례(吉禮), 진연(進宴), 진찬(進饌)은 물론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주는 술인 선온(宣醞),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는 사연(賜宴) 등에 고기를 공급하고, 전직 고위관리를 예우하기 위해 품계에 따라 일정한 녹봉(祿俸)을 주도록 만든 벼슬인 봉조하(奉朝賀)에게 월별로 지급하거나, 노인(老人)의 세찬(歲饌) 등에 고기를 공급하는 일을 담당한 관청을 사축서(司畜署)라 하였습니다.

사축서의 전신은 고려시대의 전구서(典廐署)로 잡축(雜畜)의 사육을 맡아보았는데, 조선 초기에는 종5품 영(令) 1명, 종5품 승(丞) 2명, 사리(司吏) 2명이 소속되었다가 예빈시(禮賓寺)에 합쳐져 분예빈시(分禮賓寺)라고 하였으며, 분예빈시와 사련소(司臠所)를 합하여 사축소라 칭하여 별좌(別坐) 3명, 별감(別監) 6명을 두었고, 사축소를 후에 사축서라 개칭하였으며, 경국대전에 종6품 아문으로 정비되어, 종2품 제조(提調) 1명, 종6품 사축 1명, 종6품 별제(別提) 2명, 서리(書吏) 4명, 관청에서 잡역에 종사하던 차비노(差備奴) 6명, 문무관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던 근수노(根隨奴) 3명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축서의 가축들을 사육하기 위한 축료(畜料)의 확보를 위해 곡식을 떨고 남은 짚류인 곡초(穀草)와 생초(生草)를 경기(京畿)의 여러 읍에서 공물(貢物)로 받아 충당하였는데, 일종의 품목 장부인 공안(貢案)에 따라 수령들이 백성에게 이를 임의로 부과하는 폐단이 있어,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경기 여러 읍의 민전(民田)에서 곡초와 생초를 수납하도록 규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축료가 너무 크게 늘어나 그 수량을 줄이도록 하는 조치가 있었으며, 대동법(大同法) 실시 이후에는 축료를 호조(戶曹)와 대동미ㆍ대동포ㆍ대동전의 출납을 맡아보던 선혜청(宣惠廳)에서 지급했는데, 풀 값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의 여의도인 여화도(汝火島)에 위전(位田)을 설치하여 위전세(位田稅)를 받아 충당하기도 하였고, 술을 만들고 남은 지게미와 쌀겨인 조강(糟糠)은 한양 도성에 거주하는 방민(坊民)에게 돈을 받아 충당하였습니다.

한편, 사축서에서 기르는 가축의 조달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어, 양(羊)과 염소(羔)는 항상 사축서에서 사육(留養)하는 가축으로 분류되어 여화도(汝火島)에서 40여두 내외가 생산 공급되었으며, 돼지 등은 원래 공물로 취해 쓰는 종류(元貢取用)로 충청, 천라, 경기, 황해, 평안도 등지에서 조달되었고, 거위나 오리는 값을 주고 사서 쓰거나(給價貿用), 원래 공물에서 감하여(代減元貢) 수시로 구매하여 쓴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534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승정원(承政院)에서 사축서(司畜署)에서 소와 돼지를 기르기 위하여 쓰는 비용이 적지 않으니, 그 수(數)를 줄이기를 건의하자, 사축서에서 소와 말을 기르는 것은 중국 사신(使臣)을 위한 것으로, 중국 사신이 나오는 것은 때가 있는데 항상 기르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니, 중국 사신이 올 때에 임박하여 대비(對備)하여도 늦지 않으며, 돼지도 수효를 줄이도록 하라고 전교하고 있습니다.

 

■성종실록 181권, 성종 16년 7월 6일 갑인 기사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승정원이 가뭄으로 인해 민간에서 감해 줄 것들을 아뢰다

(상략)승정원에서 또 아뢰기를,

"사축서(司畜署)에서 소와 돼지를 기르기 위하여 쓰는 비용이 적지 않으니, 그 수(數)를 줄이기를 청합니다. 귀후서(歸厚署)에 공납(貢納)하는 판목(板木)은 그 폐해(弊害)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이 적지 않으니, 청컨대 본서(本署)에 있는 포화(布貨)로 수상 무역(水上貿易)을 행하되 사무역(私貿易)의 예(例)와 같이 하고, 또 1, 2년에 한(限)하여 공목(貢木)을 정지하게 하소서. 와서(瓦署)의 토목(土木)도 평소에 저축(儲蓄)한 것이 적지 않으니, 1, 2년을 한하도록 하여 공납(貢納)을 면제하기를 청합니다. 초서피(貂鼠皮)는 영안도(永安道)에서 준비하여 바치는 것인데, 올해에 본도의 한황(旱荒)이 더욱 심하니, 임시로 공납을 면제하기를 청합니다. 군기감(軍器監)의 방화(放火)에 쓰는 백후지(白厚紙)는 평소에 저축한 것이 여유가 있으니, 2, 3년을 한도로 하여 견감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사축서에서 소와 말을 기르는 것은 중국 사신(使臣)을 위한 것이다. 중국 사신이 나오는 것이 때가 있는데 항상 기르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니, 중국 사신이 올 때에 임박하여 대비(對備)하여도 늦지 않으며, 돼지도 수효를 줄이도록 하라. 와서에 토목을 바치는 병오년까지 귀후서에 공납하는 판목(板木)은 정미년까지 한도로 하여 견감하고, 초서피는 쓰는 곳이 많고, 방화에 쓰는 후백지는 변경(邊境)에서 요긴하게 쓰는 물건이니, 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181권 1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