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46] 수해(水害)로 사람이 매몰되고 가축이 피해를 입으니 임금이 자책하였다
[50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46] 수해(水害)로 사람이 매몰되고 가축이 피해를 입으니 임금이 자책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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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62호, 양력 : 8월 8일, 음력 : 7월 8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수재(水災)나 수해(水害)에 관한 기록은 각각 600여건, 80여건에 달하며, 이외 홍수(洪水)나 대수(大水) 또는 대우(大雨) 등으로 실려 있는 기사도 180여건에 이르러 많은 피해를 준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중에 가축과 관련된 기사는 50여건으로 임금대별 주요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태종(太宗)대에는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우레와 번개가 몹시 심하여, 도봉산(道峯山)이 무너졌는데, 벽제(碧蹄)와 고령(高嶺) 사이에 산이 무너진 곳이 2백 70곳이나 되었으며, 경기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 보고에 따르면 수재(水災)에 산이 무너져, 양주(楊州)·포천(抱川)·풍양(豐壤) 등지에서 사람이 죽은 자가 55명이나 되고, 소가 죽은 것이 5두(頭), 말이 죽은 것이 5필(匹)이며, 강원도(江原道)에도 피해가 있어 조종현(朝宗縣)에 산이 무너져 압사(壓死)한 자가 남녀 20명이고, 말이 죽은 것이 7필, 소가 죽은 것이 3두였습니다.

문종(文宗)대에는 서북(西北) 지방의 연강(沿江) 군읍(郡邑)들이 지난해의 큰 물로 인하여 논의 벼와 들판의 풀이 진흙 모래에 잠기어 버렸으며, 남은 것도 더러운 먼지를 띠고 있어 이것을 가축(家畜)이 먹으면 피곤하여 죽으니, 경우(耕牛)와 전마(戰馬)가 공사간(公私間)에 거의 없어졌고, 평안도 의주지역인 정녕군(定寧郡)에서 길들이고 있던 말도 본디는 20필 이었는데 죽은 것이 열 마리 중에 아홉 마리나 되며, 그 외의 군현(郡縣)의 인가(人家)와 요동(遼東)과 야인(野人)의 땅에서도 모두 이와 같은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연산군(燕山君)대에는 겨울철에는 눈비가 평년보다 더하였고, 봄과 여름에는 가뭄이 매우 심하여 안으로 경기 지방의 고을로부터 밖으로 여러 도(道)에 이르기까지 보리와 밀이 거의 상해서 백성들이 밥 먹기가 어려웠으며, 여름을 지나 가을철에 이르러 흙비가 재해가 되고 남방의 여러 고을에는 수재가 계속 일어나서, 백성들의 가옥이 물에 잠기고 사람과 가축이 물에 떠내려가고 나무가 꺾이고 뽑혔으며 곡식이 손상되었으니, 천재(天災)와 지변(地變)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옛날에도 또한 듣기 드문 일인데, 근일에는 서울에 지진(地震)까지 있어, 의정부 영의정 등이 인사(人事)가 어긋나면 천변(天變)이 응하는 것이라며 사직(辭職)하기를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중종(中宗)대에는 전라도 나주(羅州)에 큰물이 져서 사람과 가축이 많이 빠져 죽었다는 보고가 있자, 임금이 함경도에 이미 수재가 있었는데, 또 이와 같이 수재가 있으니 재변이 어찌 헛되이 생기겠는가라고 탄식하며 두려운 마음을 토로하고, 인축(人畜)과 가사(家舍)의 표몰(漂沒)한 숫자를 관찰사로 하여금 속히 조사하여 치계(馳啓)하도록 하였으며, 전라도 관찰사의 서장(書狀)을 보고받고 만경현(萬頃縣)의 수재(水災)는 근고에 없던 일이라서 매우 경악스러움을 금할 수 없으며, 조수(潮水)가 범람해서 많은 사람과 가축들이 빠져 죽었는데도 그 고을 현령은 즉시 구원해 내야 마땅한 일인데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추고하고 벼슬아치를 다시 임명하는 개차(改差)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명종(明宗)대에는 근년 이래로 수해와 한해가 잇달아 농사가 흉년들어 항상 우려해 왔는데, 올해에는 비가 알맞아서 거의 추수할 가망이 있었는데 5월 이후에 석달 동안 장마가 져서 비록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더라도 아직 아주 개일 효험이 없으며, 각 도(道)의 서장(書狀)을 보니 풍재(風災)와 수재가 없는 곳이 없었는데, 이번에 또 전라 감사의 장계를 보니 호남의 수재는 근고에 없던 일로 집들이 떠내려가고 사람과 가축이 빠져 죽었으며 화곡(禾穀)이 손상되어 추수할 가망이 없게 되었다고 하니, 임금이 부덕하여 잘못한 일이 많고 수성(修省)이 지극하지 못하여 하늘을 감동시킬 정성이 모자라기 때문으로 마음이 미안하여 더욱 두렵게 여긴다며, 물에 잠긴 곳들을 즉시 도사(都事)로 하여금 답사하게 하여 치계(馳啓)하고, 구황(救荒)할 제구(諸具)를 시기를 헤아려 미리 조치해서 떠도는 백성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으며,

경상도 감사의 서장(書狀)에 양산(梁山)·창원(昌原)·진주(晉州)등을 포함한 30여 지역에서 지난 7월 이틀간 폭풍 호우가 밤낮으로 계속 몰아쳐 기와가 날아가고 나무가 뽑혔으며, 시냇물이 범람하여 가옥이 표류하고 인명과 가축도 많이 상하였고, 온갖 농작물이 침해되어 아예 추수할 가망조차 없다고 하니 각별히 구황(救荒)할 것을 호조에 이르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500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올여름 한창 자랄 계절에 너무 가무는 한재가 일다가 어느새 비가 많아 수해가 일어 골짜기가 넘치고 산더미가 무너지게 되어, 경기도 양주(楊州) 지방에서는 남녀 여덟 사람이 매몰되고 소·말·닭·개가 모두 피해를 입었으니, 임금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여 천지의 비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인데 백성이 무슨 죄가 있겠냐고 자책하며, 더불어 하늘이 준 벼슬을 이어받아 백성에게 임하는 자들도 각각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서로 미급한 점을 닦아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기를 생각하도록 분부하고 있습니다.

 

■중종실록 36권, 중종 14년 7월 8일 기해 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년

올여름의 한재와 잇따른 수재의 피해에 대해 자책하다

정부에 분부하였다.

"특히 무류(無類)한 내가 외람하게 신인(神人)을 맡아 위로는 조상을 계승하기 어려울까 염려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제곳을 잃게 될까 두려우므로 잠 자고 밥 먹고 할 틈이 없이 다스린 지 지금 14년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성의가 신실하지 못하고 덕이 극진하지 못하여 다스린 공효와 정사한 효과가 아직까지 기록할 만한 것이 없다. 우양(雨陽)이 때를 어겨 기근(飢饉)이 해마다 잇달고 민생들이 고달파 시름과 원망이 날로 쌓이며, 풍속이 야박해지고 간사한 짓이 점점 퍼지므로 하늘의 화기를 간범하여 재해를 초래함이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여름 한창 자랄 계절에 너무 가무는 한재가 일다가 어느새 비가 많아 수해가 일어 골짜기가 넘치고 산더미가 무너지게 되어, 양주(楊州) 지방에서는 남녀 여덟 사람이 매몰되고 소·말·닭·개가 모두 피해를 입었으며, 이번에는 남쪽 고을에서 천상(天象)의 변괴가 지극하고 일관(日官)이 바야흐로 성변(星變)을 아뢰어 왔으니, 나의 측은한 생각이 어찌 한이 있겠는가? 이는 과인(寡人)의 몸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여 천지의 비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인데 백성이 무슨 죄랴?

무릇 나와 더불어 하늘이 준 벼슬을 이어받아 백성에게 임하는 자들이 어찌 각각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서로 미급한 점을 닦아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기를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나의 이런 지극한 마음을 체득하여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여, 산림(山林)과 초야(草野)의 궁벽한 마을과 찌그러진 집에서라도 능히 나라를 근심하고 시국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촉될까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극력 과인의 몸과 조정의 병폐를 지적하도록 하라."

【태백산사고본】 18책 36권 38장

【주】우양(雨陽) : 비오고 개고 하는 것.

      일관(日官) : 관상감(觀象監) 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