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산에서 놀며 공부 중입니다"···숲을 읽고 보고 쓰는 아이들
[밀착취재]"산에서 놀며 공부 중입니다"···숲을 읽고 보고 쓰는 아이들
  • 박현욱·이은용 기자
  • 승인 2019.08.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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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껍질 만지며 아날로그 감성 '쑥쑥'
숲에 붙이는 다양한 해석에 이해 '쏙쏙'
숲·문화·놀이 융합 '숲나드리' 프로젝트
안상숲 숲해설가가 대전대룡초등학교 오승민 군에게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상숲 숲해설가가 대전대룡초등학교 오승민 군에게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팜인사이트=박현욱·이은용 기자]

학교를 대신하는 숲

"나뭇잎을 꽉 물어 선명한 치아 자국이 생긴 사람이 왕이에요."

삼국시대 신라 초기, 왕은 치아가 많고 건강한 사람이 옹립됐다. 치아가 많으면 연장자라 생각한 고대 풍습 탓이다. 나이가 많으면 지혜가 많고 성스럽게 여겨 신라시대에는 그를 두고 '이사금'이라 칭했다. '이사금'이라 불렸던 왕의 명칭은 신라 3대 왕인 유리 이사금부터 16대 흘해 이사금까지 지속됐다.

생거진천자연휴양림 숲해설가 안상숲 선생님은 숲을 찾아온 아이들에게 숲과 신라시대 문화를 엮어 보여줬다. "이사금은 ‘치리(齒理)’라는 뜻으로 '치'가 치아를 뜻하는 한자어인데 그 옛날 어르신을 우대하는 당시 문화를 엿볼 수 있죠."

아이들은 숲 체험을 통해 신라시대 이사금 제도와 의미를 되새겼다.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숲 해설은 자연에 주석을 붙여 아이들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체험에 참여한 양태길(17·경복고등학교) 학생은 "산에 오르는 게 힘들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 됐다"면서 "옛 선인들의 삶을 상상하고 지혜까지 엿볼 수 있어 생생한 공부가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안상숲 숲해설가가 아이들에게 신라시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상숲 숲해설가가 아이들에게 신라시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숲에 사는 곤충 등 동·식물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숲에 사는 곤충 등 동·식물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놀이공원으로 탈바꿈한 산

"나무 그네는 바이킹 같아요. 심장이 두근거려요. 짚라인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재밌어요. 마치 놀이공원에 온 느낌이에요."

나무 사이로 줄을 연결해 만든 나무 그네와 길게 밧줄을 연결해 나무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 짚라인은 아이들에게 유독 인기가 좋았다. 나무껍질을 만지며 자연과 교감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무와 호흡하는 체험이다. 이응상 힐링플레이 이사가 트리마스터로 나서 장비를 점검하고 설치했다.
 

숲에서 나무그네와 짚라인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숲에서 나무그네와 짚라인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산림 선진국에서는 나무 활용에 적극적이다. 나무 위에 텐트를 설치해 숙박 시설로 이용하거나 나무 사이에 다리를 놓는 등 산을 놀이공원처럼 활용하는 식이다.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서 산림레포츠는 이미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을 만큼 수요가 많다.

이응상 힐링플레이 이사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산림 관광에 산림 레포츠를 도입하면 역동적인 숲체험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힐링플레이 이응상 이사.
아이들이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힐링플레이 이응상 이사.

산림 부산물로 창의력 부쩍

"선이 다르죠.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글씨를 디자인하는 창의적 재능을 보여줘요. 산림 부산물을 활용한 캘리그라피는 자연과 예술의 조화라고 할까요."

숲에서 캘리그라피를 지도한 이고은 작가(부엉이랩 대표)는 아이들의 손놀림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루해하던 아이들도 막상 작업에 들어가자 눈빛이 달라졌다. 먹으로 기본 글씨를 디자인하고 솔방울과 나뭇잎 등으로 색깔과 모양을 덧입히자 훌륭한 캘리그라피가 완성됐다.
 

캘리그라피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캘리그라피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완성된 작품은 벽에 걸려 전시됐다. 각양각색 독창적 개성의 캘리그라피가 모이자 그 또한 작품이 됐다. 작품에 집중했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느 순간 몰입이 됐다"라는 반응이었다. 찰나의 표현이 우연을 만나 아름다운 서체가 되자 스스로 창작했다는 자신감과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함이 아이들을 자극하면서 재밌는 산림 놀이 공부가 된 셈이다.
 

완성된 캘리그라피를 전시한 모습.
완성된 캘리그라피를 전시한 모습.

숲속의 비밀 정원 보탑사

"이렇게 아름다운 절을 사람이 만들었다는 게 신기해요."

숲속에 숨어있는 충북의 보탑사는 여행객들에게 절경으로 유명한 절이다. 삼국시대에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목탑이 많았는데 이후 건축술이 단절되면서 유일하게 경내에서 걸어서 오를 수 있는 탑을 재현했다. 황룡사 9층 목탑이 주변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지었다면 보탑사의 3층 목탑은 1992년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장인들이 참여, 불사를 시작해 1996년 완공됐다.

보탑사 3층 목탑은 사람이 경내로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탑사 3층 목탑은 사람이 경내로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탑사 적조전에는 누워있는 불상인 와불이 특히 유명하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의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와불은 그 크기와 장대함에 아이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숲속에 있는 우리나라 절들은 늘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연과 하나 되는 장인들의 건축술을 보고 배우며 선인들의 지혜를 듣는다.

"나무로만 만들어진 3층 목탑을 보면 아파트 14층과 맞먹는다고 하는데 대단한 것 같아요.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짜 맞춰 만든 기술이 있다는 것도 놀라워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의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와불.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의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와불.

여성 장수가 놓은 농다리 체험

"구불구불 농다리는 마치 지네 같아요.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물에 떠내려가지 않는 게 신기해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된 농다리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충북의 보물이다. 임씨 집안 오누이가 내기를 하게 되면서 다리를 놓았지만 돌 한 칸을 남겨두고 죽은 여장수(妹,누이매)의 남은 몫을 일반인이 채워 완성된 다리다. 장마가 오면 일반인이 놓은 다리 한 칸만 떠내려간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농다리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농다리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농다리를 걷고 있는 모습.
농다리를 걷고 있는 모습.

진천군 자연휴양림으로부터 30분 거리에 위치한 미르숲을 가기 위해서는 농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농다리는 외견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풍경을 자랑한다.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해 만들어 동양철학이 배어 있고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물리게 쌓는 과학 기술까지 녹아있어 국내 토목 공학계에도 귀중한 자료로 연구되고 있다.

농다리 체험관을 둘러본 오승민(11·대전대룡초등학교) 학생은 "정말 잘 만들어진 다리네요. 손볼 게 없을 것 같아요"라며 극찬했다.
 

농다리 주변 환경은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농다리 주변 환경은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지네처럼 생긴 농다리 전경.
지네처럼 생긴 농다리 전경.

아날로그가 주는 감동에 취한 아이들

"엄마·선생님과 같이 하는 게 즐거워요. 제 무게를 견뎌 줄 수 있다는 믿음도 있고요. 숲속에서 땀 흘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도 좋아요."

농다리를 지나 미르숲에 온 아이들은 밧줄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동그랗게 모여 밧줄을 잡고 그 위를 건너면 선생님과 학생들은 건너는 아이의 무게를 지탱하며 웃고 떠든다. 지극히 단순한 행위지만 아이들은 작은 것에서 협동심과 동료애를 배운다. 미르숲이 사전 예약한 단체만 특별히 허용되는 숲에서 아이들은 몇 시간을 즐기며 놀았다. 
 

밧줄 놀이를 하는 모습.
밧줄 놀이를 하는 모습.

국내 자동차 부품 기업인 현대 모비스가 사회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초평호 일대에 조성한 미르숲은 108ha(33만 평) 규모의 아름다운 숲이다. 숲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나무 향기를 맡으며 하는 활동은 도심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든다.

숲에 손을 내밀면 숲은 자연의 소리로 응답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학생들은 아날로그가 주는 잔잔한 감동에 어느 순간 집중한다. 무당개구리, 무당거미, 애벌레, 도토리, 잠자리는 자연이 그리는 화폭 속에 숨어있는 소중한 조연들이다.

최우석(15·봉원중학교) 학생은 "숲 해설을 듣고 숲에 사는 동물과 식물, 곤충을 쫓다 보면 자연 시간표를 알게 돼 신기하다"면서 "숲이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구나를 깨닫게 된다"라고 감탄했다.
 

숲 속 곳곳에 숨어있는 무당거미.
숲 속 곳곳에 숨어있는 무당거미.
미르숲 입구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미르숲 입구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방문지는 진천문화여권에 도장 '쾅'

이번 숲나드리 체험에는 특별한 아이템도 눈길을 끌었다. 충북 진천 관광을 독려하기 위한 여권이다. 여권에는 진천 문화투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도와 설명이 나와 있고 여행 방문지에서 확인 도장까지 받을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권에는 진천중앙시장과 연계해 지정된 점포에서 할인혜택까지 받을 수 있도록 연동돼 지역 경제 살리기에도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힐링플레이 주식회사 유진선 실장은 "진천중앙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이 특별히 숲나드리 프로젝트에 애정을 가져 주셔서 여권을 구할 수 있었고 진천군청에서는 이번 행사에 문화해설사를 파견해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면서 "많은 분들이 숲나드리 행사에 물심양면 지원과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천중앙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에서 지원한 진천문화여권은 여권에 나온 방문지에서 확인 도장을 받을 수 있다.
진천중앙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에서 지원한 진천문화여권은 여권에 나온 방문지에서 확인 도장을 받을 수 있다.

산림청, 산림관광 콘텐츠 발굴에 힘 써
지역 경제 접목 일자리 창출에도 한 몫

충북 진천 여름숲은 산림청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 주최하고 힐링플레이 주식회사가 생거진천자연휴양림, 현대모비스 미르숲과 공조한 산림관광 청소년 숲속 나드리 체험이다.

산림청이 아름다운 숲과 지역 관광자원을 결합해 새로운 방식의 여행 만들기를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만들어진 숲나드리 행사는 전국에 숨어있는 지역 콘텐츠를 지역주민과 함께 발굴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충북 진천을 비롯해 경기 연천과 양평, 강원 강릉, 강원 홍천, 경북 영덕, 전남 곡성, 전남 화순 등지에서 다양한 숲체험 행사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숲나드리 프로젝트에 참석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숲나드리 프로젝트에 참석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산림 관광문화 발굴과 지역 경제에도 톡톡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체험 프로그램이 숨어 있던 지역 명소들을 발굴해 내면서 체험객들 사이에 신규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어서다. 행사 이후 사람들의 재방문율 또한 크게 늘어난다는 게 지역 상인들의 평가다.

충북 진천의 전통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미(52) 씨는 "충북 진천에는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이런 행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진천을 알게 되고 방문해주면 소비도 늘어난다"면서 "행사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시 방문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는 숲나드리 행사의 체험 모집과 사후 모니터링 등 질 높은 산림관광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 혁신기획팀 옥승수 대리는 "산림청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는 지역기반 산림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해 소득,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활성화 및 대국민 서비스 품질 향상 도모를 위하여 민간 주도의 산림관광 콘텐츠 공모사업을 기획했다"면서 이번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민간 주도로 전국 각 지역의 숨겨진 산림 관광 자원을 발굴하고 여행상품을 기획해 운영함으로써 향후 지속 가능한 산림관광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기업 '닥터노아'에서 기념품으로 제공한 대나무칫솔을 들어보이며 즐거워 하는 모습. 대나무칫솔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칫솔이다.
사회적기업 '닥터노아'에서 기념품으로 제공한 대나무칫솔을 들어보이며 즐거워 하는 모습. 대나무칫솔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칫솔이다.

한편 1박2일 코스로 짜인 진천 체험행사에는 충북지역의 문화와 관광, 힐링플레이의 체험 콘텐츠, 숲 인프라 등이 입소문을 타면서 예약 신청을 오픈한지 하루 만에 매진, 조기 마감됐다.

유혜선 힐링플레이 대표는 "숲이라는 콘셉트에 지역 문화 콘텐츠와 스토리를 버무려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 메뉴를 구성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휴양, 힐링, 배움 그 이상의 가치를 안겨준다"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독일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힐링플레이만의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숲나드리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
숲나드리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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