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54] 천인(賤人)인 상놈이 한양 성내에서 말을 타는 것을 금하였다
[35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54] 천인(賤人)인 상놈이 한양 성내에서 말을 타는 것을 금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9.0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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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70호, 양력 : 9월 3일, 음력 : 8월 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천인(賤人) 신분에 해당하는 자가 국가에 대하여 부담하는 신역(身役)을 천역(賤役)이라 하였는데, 천인 신분의 대다수는 노비였기에 천역은 일반적으로 노비 중에서 특히 국가가 공적 소유권을 가진 공노비(公奴婢)가 부담하는 역을 말하였으며, 공노비는 16~59세까지 중앙 각 관서 및 지방 각 관아, 병영, 역원(驛院), 향교(鄕校) 등에 배속되어 국역을 부담하였고, 천역은 노비의 경우 거의 자손에게 세습되었으나, 상벌(賞罰)로 인하여 천역에 종사하게 되거나 천역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천역 중에 공노비가 종사하던 각종 잡직(雜職)도 천역에 해당되었는데, 문반(文班) 잡직으로는 공조(工曹)를 비롯하여 내시부에 부설되어 왕명 전달, 궁궐 열쇠 보관, 대궐 정원 관리, 임금이 쓰는 붓 ·벼루 ·먹 등의 조달을 맡은 액정서(掖庭署), 경적(經籍)의 인쇄와 교정·향축(香祝)·인전(印篆) 등을 맡아 보던 교서관(校書館), 저화(楮貨)의 발행과 보급, 노비로부터 공납되는 면포를 관리하던 사섬시(司贍寺), 종이를 제조하던 조지서(造紙署), 임금의 식사와 궐내의 음식 공급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사옹원(司饔院),

임금의 의복 등 왕실의 재물을 관리하던 상의원(尙衣院)외에 사복시(司僕寺), 군기시(軍器寺), 토목·영선에 관한 일을 맡은 선공감(繕工監), 장악원(掌樂院), 궐내 정원의 꽃과 과실에 관한 일을 맡은 장원서(掌苑署), 도화서(圖畵署) 등의 관서에 소속되어 궁궐 문의 자물쇠와 열쇠 관리, 서적 인쇄, 필연(筆硯, 붓과 벼루) 공급, 화폐 제조, 종이 제조, 요리, 바느질, 말(馬) 사육, 무기 제조, 토목 공사, 악기 연주, 제수(祭需) 물품 공급, 그림 그리기 등의 일을 맡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천역 중에 칠반천역(七般賤役)이라 하여 국역 종사자 중에 가장 천대받던 7가지의 국역 종사자가 있었는데, 조례(皁隸), 나장(羅將), 일수(日守), 조군(漕軍), 수군(水軍), 봉군(烽軍),역보(驛保) 등으로 이들은 대체로 신분은 양인이나 노비와 같은 천역을 지고 있었기에 신량역천(身良役賤) 층으로 분류되기도 하였으며, 이중에 조례는 중앙 관서나 종친·관리에게 배속되어 수종(隨從), 호위(扈衛), 심부름 등을 수행하였으며, 나장은 중앙의 사정(司正) 또는 형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서에 소속되어 경찰, 옥지기의 일을 수행하며, 순라(巡邏), 형벌 집행 등의 일을 맡았습니다.

또한 일수는 지방의 각 관아나 역원에서 사객영송(舍客迎送), 건축 및 수선등 영조(營造)의 일과 관둔전(官屯田), 역전(驛田)을 경작하는 일을 맡았으며, 조군은 세곡의 조운(漕運), 파선(破船)의 수리, 소금 생산, 선박의 간수 등을 맡았고, 수군은 해상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격퇴하기 위하여 선상(船上)에서 근무하며, 둔전 경작, 어염이나 기타 해산물 채취, 병선 수리, 축성 등의 잡역에 종사하였으며, 봉군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설치한 봉수대에서 밤낮으로 횃불과 연기를 올리고 경계하는 일을 맡았고, 역보는 전국 각 처의 역(驛)에 소속되어 사신의 생활용품을 대어 주거나, 공문서 전달, 역마(驛馬)의 사육과 관리, 역전(驛田)의 경작 등 잡다한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351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형조와 한성부가 해서는 안 되는 법률 조항인 금제조(禁制條)를 입계하면서, 형조에서는 소와 말을 도살하는 일(牛馬屠殺), 상놈이 성안에서 말을 타는 일(常漢城內騎馬)을 금하고 있고, 한성부에서는 소와 말고기를 금지하는 일(牛馬肉禁)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종개수실록 19권, 현종 9년 8월 5일 신미 기사 1668년 청 강희(康熙) 7년

형조와 한성부가 새로 정한 금제조를 입계하다

형조와 한성부가 새로 정한 금제조(禁制條)를 입계하였다. 형조는 모두 8조목이었는데, 소와 말을 도살하는 일[牛馬屠殺], 술을 금하는 일[酒禁], 난전에 대한 일[亂廛], 상놈이 성안에서 말을 타는 일[常漢城內騎馬], 신사가 높고 중한 데 대한 일[神祀高重], 조운선에 대한 일[漕船], 음녀에 대한 일[淫女], 성안의 승려들에 대한 일[城中僧人] 등이었다. 한성부는 모두 6개 조목이었는데, 각전이 높고 중한 데 대한 일[各廛高重], 소와 말고기를 금지하는 일[牛馬肉禁], 도성 주위 산의 소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하는 일[四山松禁], 난전에 대한 일[亂廛], 되와 말의 크기를 규제하는 일[大小升斗], 동·서활인서의 무녀를 적간하는 일[東西活人署巫女摘奸] 등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