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59] 경기도에서만 현종(顯宗) 이후 15년간 우역(牛疫)으로 소 5천여두가 죽었다
[33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59] 경기도에서만 현종(顯宗) 이후 15년간 우역(牛疫)으로 소 5천여두가 죽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9.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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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75호, 양력 : 9월 23일, 음력 : 8월 2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대가축에 가장 치명적인 우역(牛疫)에 관한 기록은 중종(中宗) 36년(1541년) 이후 고종 44년(1907년)까지 366년간 300여건에 가까운 기록이 실려 있으며, 북방지역인 평안도, 함경도는 물론,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등 전국에 걸쳐 발생하였고, 제주도, 심지어는 한양 도성(都城)에서 까지 발생하였는데, 이중에 경기도에서 발생한 우역에 관한 기사는 전염병으로 표기된 기사 까지 포함하면 20여건에 이르며, 임금대별 중요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현종(顯宗) 대에는 국정 전반을 총괄하던 비변사(備邊司)인 비국(備局)에서 여러 재신(宰臣)들을 인견하였는데, 영의정인 영상(領相)이 금년 들어 우역(牛疫)이 크게 번져 경기(京畿)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인 양서(兩西)는 더욱 심하였고, 평안도 지역인 관서(關西) 지방은 1천 두 가까이 죽어 큰 이변이라고 보고하자, 임금이 당시로부터 26년 전인 정축년(1637년)에 우역으로 죽은 소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 병자년(1636년)부터 정축년까지 죽은 소가 수도 없어 거의 남아있는 종자가 없으며, 정부에서 비국랑(備局郞)을 시켜 몽고 땅에서 소를 사왔고, 지금 있는 소들은 모두 그 종자라는 보고를 한바 있습니다.

또한 무신년(戊申年, 1668년)에는 8월에 경기 지방에 소의 전염병이 심하게 번져 1백여 마리가 죽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경기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소가 1천 6백여 두에 이르고, 지금의 강원도인 원양도(原襄道)에서도 한결같이 치성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2년 후인 경술년(庚戌年, 1670년)에는 경기 각 고을에 된 서리가 연일 내려 벼가 말라 죽었으며, 소의 전염병이 크게 번져 거의 남은 종자가 없었고, 농가에서는 사람이 소 대신 밭을 갈았는데 9명의 힘으로 겨우 소 한 마리의 일을 해낼 수 있었으므로 가을갈이에 가망이 없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숙종(肅宗) 대 신유년(辛酉年, 1681년)에는 경기(京畿)의 광주(廣州) 등 13개 고을에서 전염병(牛疫)으로 죽은 소가 2백여 두(頭)나 되었다고 관찰사인 도신(道臣)이 보고하였으며, 같은 해 경기(京畿) 여러 고을에 8월 이후 전염병(牛疫)으로 죽은 소가 2천 3백 78두(頭)였는데, 다른 도(道)에서도 대략 그와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28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숙종 갑자년(甲子年, 1683년)에 경기(京畿) 장단(長湍) 등 일곱 고을에 우역(牛疫)으로 7백여 마리가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현종(顯宗) 무신년 이후 대략 15년간 5천 여두의 소가 우역으로 죽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숙종실록 15권, 숙종 10년 8월 25일 무오 기사 1684년 청 강희(康熙) 23년

경기 지역의 7현에 우역이 돌다

경기(京畿) 장단(長湍) 등 일곱 고을에 우역(牛疫)으로 7백여 마리가 죽었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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