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65] 중국 무장(武將)이 앵무새(鸚鵡)를 보내오자 섬 안에 놓아 주도록 하였다
[3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65] 중국 무장(武將)이 앵무새(鸚鵡)를 보내오자 섬 안에 놓아 주도록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0.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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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81호, 양력 : 10월 8일, 음력 : 9월 10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외물(外物)에 빠져 본심을 잃는 것을 경계하였는데, 이 말은 중국 주나라 무왕 때 사신이 큰 개 한 마리를 바치자 기뻐하며 큰 선물을 내리는 것을 보고, 신하가 글을 올려 간언하기를, ‘사람을 가지고 놀면 덕을 잃고, 물건을 가지고 놀면 뜻을 잃는다(玩人喪德 玩物喪志)’라고 하여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외물은 기본적으로는 외적 기물(器物)을 뜻하는 말로 이를 경계한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유학자들은 외물보다는 본심에 중점을 둔다고 해석하여 학문에서도 문장(文章)과 시부(詩賦)를 통칭하는 사장학(詞章學) 보다는 유교 경서의 뜻을 해석하는 경학(經學)에 더 집중하였으나, 후기에 접어들어 완물상지의 구속력이 약해져, 사대부들의 생활 환경과 문학 활동 전반에 변화가 생기면서, 수만권의 장서를 구비하고 서화와 골동품 등으로 집안을 장식하거나, 비둘기와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 꽃과 물고기를 관찰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잘 꾸며진 정원으로 저택을 화려하게 꾸미는 변화도 있게 되었습니다.

393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중국 명나라의 무장(武將)이 임금에게 앵무새를 보내와, 도 관찰사(道臣)에게 명하여 섬 안에다 놓아주도록 하고 있는데, 실록에 앵무새(鸚鵡)에 관한 기록은 30여건으로 그중에 중요한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종(太宗) 대에는 중국의 환자(宦者)인 내사(內史) 두 사람이 왔는데, 황제가 내려준 앵무새(鸚哥) 세 쌍(雙)을 가져 왔으며, 세종(世宗)대에는 사간원 좌헌납(左獻納)이 창덕궁(昌德宮) 서쪽에 있는 이조(吏曹)를 수리하여, 해청(海靑)을 길러서 더위를 피하게 한다고 하는데 진헌(進獻)을 정지하였으니 놓아 버리자고 건의하자, 해청은 우리 지경에서 많이 산출되는 것으로, 진귀한 새와 기이한 구경거리로서 앵무새나 공작새와 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바가 있습니다.

세조(世祖) 대에는 배를 타는 군사인 선군(船軍)등이 제주(濟州)에서 배를 출발하여 표류하다가 일본 오키나와 인근 유구국(琉球國)에 닿아 체류하다가 돌아와 보고한 내용 중에 그곳에 금수(禽獸)는 가축으로서 소·말·돼지·닭·개가 있었고, 날짐승으로서 까마귀·참새가 있었는데, 그 풍속이 앵무(鸚鵡)새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여 항상 중국에서 사왔다고 하였으며, 실제로 유구국왕(琉球國王)이 사신을 보내어 2차례에 걸쳐 앵무새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연산군(燕山君)대에는 도화서(圖畫署)로 하여금 앵무새 10여 마리를 그리게 하고, 그 정교(精巧)를 다해서 궐내로 들이라고 전교한 바가 있으며, 일본국(日本國)에서 암 원숭이를 바치니, 앵무새를 선왕(先王) 때에 바쳤으나 값만 비싸고 나라에 이익이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 또 암 원숭이를 바치니 무익한 짐승은 도로 돌려주고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타이르라고 어서(御書)를 내리기도 하였고,

대신들이 서계(書啓)하여, 원숭이와 말을 물리치라는 임금의 전교는 진실로 좋은 일이나, 먼 나라 사람이 바치는 것을 일체 물리치는 것은 미안할 일로, 말은 근래에도 받았으며, 원숭이는 선왕(先王) 때에도 받았고, 전교에 ‘옛날에 앵무새를 진상했는데 그 값이 명주 1천여 필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그 당시는 특별히 먼 나라 사람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니, 지금 비록 원숭이를 받더라도 하사하는 물건의 많고 적은 것은 위에서 결정하시기에 달렸을 뿐이라고 논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조실록 14권, 인조 4년 9월 10일 기묘 기사 1626년 명 천계(天啓) 6년

모문룡이 앵무새를 보내오다

모 도독(毛都督)이 앵무새를 보내왔는데, 상이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섬 안에다 놓아주도록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