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아버지가 사랑한 술 '장수막걸리'를 찾아서
[탐방] 아버지가 사랑한 술 '장수막걸리'를 찾아서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8.05.10 17:16
  • 호수 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중 막걸리 2병 중 1병은 ‘장수브랜드’
천연 CO2 청량감에 깔끔한 뒷맛
주세 낮아 가격 저렴, 싼술 오해도
초록병 ‘하이네켄’ 상식파괴 닮은꼴

초록병이 쉴새없이 공정라인을 타고 돌아 나온다. 저온 발효를 거친 하얀 액체가 병에 쏟아져 내린다. 기계음은 쉴새없이 돌아가고 제품을 검수하는 작업자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노란 박스에 차곡차곡 담긴 제품은 전국 마트로 분산된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은 하루 10만L 가량. 국내 1등 막걸리 브랜드 '장수막걸리' 제조공장 모습이다.

장수막걸리, 시장점유율 50%

장수막걸리는 1962년 설립된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 생산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전국에 난립한 영세한 양조장들을 한데 모아 협회를 만들었다. 제조공장의 현대화, 첨단화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주세(酒稅, 주류에 부과되는 세금)를 효과적으로 걷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강동, 영등포, 구로, 서부 등 협회에 속한 7개의 제조장에서 명품막걸리를 생산 중이다. 협회에서 생산하는 장수막걸리는 우리나라 전체 막걸리 시장의 45~50%를 점유하고 있다. 1962년 설립 이래 단일 품목 막걸리 부문에선 단독선두다. 살아있는 효모의 맛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당일제조, 당일배송 원칙을 지키는 것도 강점이다.

꼼꼼한 관리로 ‘생’막걸리 품질 유지
 

막걸리 제조공장 첨단 설비시스템 사진. 오류가 생길 경우 즉시 가동이 중단된다.
막걸리 제조공장 첨단 설비시스템 사진. 오류가 생길 경우 즉시 가동이 중단된다.

막걸리는 살균막걸리와 생막걸리로 나뉜다. 살균막걸리는 출하되기 전 효모와 유산균을 멸균해 발효의 진행을 막는다. 맛이 균일하고 유통기한(1년)이 긴 것은 이 때문이다. 반대로 생막걸리는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있어 장 건강에는 좋지만 보관기간이 짧고 유통이 까다롭다.

장수막걸리는 생막걸리다. 효모의 상태, 발효 온도, 작업 기간 등이 막걸리 품질에 절대적 영향을 준다. 작업자 숙련도에 따라 맛이 달라졌던 이유다. 지금은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 되면서 품질 편차를 줄였다. 또한 유통과정에서 나오는 천연 CO2 덕분에 청량감을 선사하고 작업속도의 향상과 과학적인 온도관리로 품질 균일화에 성공하면서 지금은 연매출 1,8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가볍고 깔끔해진 맛, 국(누룩의 일종) 사용

저온숙성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모습. 4개의 관은 온도가 25℃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조절해 준다.
저온숙성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모습. 4개의 관은 온도가 25℃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조절해 준다.

장수막걸리의 자랑은 저온숙성기술이다. 이 기술은 술 제조시 최대한 오랜 시간 낮은 온도로 발효해 막걸리 고유의 맛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탁주협회만의 노하우다. 온도가 높으면 효모가 사멸해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온도관리는 고차 방정식처럼 까다롭다. 쌀의 양, 효모 비율, PH(산도)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맛도 장점이다. 예전에는 누룩을 사용해 숙성을 했다면 지금은 국(麴)을 사용한다. 전통적으로 사용한 누룩은 냄새가 퀴퀴하지만 국은 필요한 균만 키워 단점은 최대한 줄였다. 국을 사용하면 식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예전 막걸리 맛보다 지금의 장수막걸리 맛이 무겁지 않고 깔끔해진 건 이 때문이다.
 

‘하얀색→초록색’ 병으로 고정관념 탈피

염성관 서울탁주제조협회 상무
염성관 서울탁주제조협회 상무

1993년 초록색 막걸리 병이 세상에 나왔다. 과거 흐물흐물한 비닐과 같은 포장재질을 과감히 탈피해 내구성을 높이고 직사광선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통적으로 막걸리는 새하얀 병이 진리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촌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병을 잡을 때 내용물이 솟구쳐 나오는 일이 사라졌고 변질도 크게 줄면서 초록색 막걸리 병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졌다. 과거 갈색병이 진리였던 맥주병에 초록색 병을 도입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난 네덜란드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과 닮은꼴이다. 

염성관 서울탁주제조협회 상무는 “장수막걸리가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온 것은 소비자 덕분”이라면서 “서울탁주제조협회는 앞으로도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막걸리가 가격이 낮아 ‘싼술’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은 고급술”이라면서 “주세가 5%밖에 되지 않아 서민들도 쉽게 구입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으로 막걸리 시장에 불어온 불황을 헤쳐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