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68] 충청도(忠淸道) 연풍현(延豐縣)에서 송아지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31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68] 충청도(忠淸道) 연풍현(延豐縣)에서 송아지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0.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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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84호, 양력 : 10월 21일, 음력 : 9월 23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는 강우, 폭설, 천둥, 번개, 지진등 기상재해(氣象災害)는 물론 해, 달, 별자리 등의 변화 등 모든 천기(天氣)의 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실록 전체로는 3만건 이상의 관련 기사를 싣고 있으며, 이중에 벼락에 관한 기사는 580여건으로 가축이나 소(牛)에 피해를 입힌 기록이 각각 20여건씩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천재지변 발생하면 임금들은 자신의 부덕(否德)의 소치로 하늘의 노여움을 산 것으로 여겨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근신(謹愼)하였으며, 재이(災異)를 물리치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인 해괴제(解怪祭)를 지내거나, 바람·구름·번개·비를 각각 관장하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벼락으로 소(牛)에 피해를 입힌 중요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종(太宗)대에는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풍해도(豊海道) 봉주(鳳州)에서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으며, 광주(光州) 사람 2명과 소 한 마리가, 배주(白州), 연안(延安), 영평(永平), 교동(喬桐) 사람 4명과 소 3두가 벼락을 맞아 죽었고, 상주에서도 사람과 소가, 용인(龍仁)의 금령역(金嶺驛) 북산(北山)의 소나무에는 벼락이 쳐서 잠자던 새들이 많이 죽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우박(雨雹)이 내리고, 우레 소리가 들리고 번개를 쳤는데, 경기도 수안(守安) 사람의 말이 벼락을 맞았고, 아침부터 한낮에 이르기까지 짙은 안개가 사방에 자우룩하여, 강화(江華)에 사는 사람의 아내가 벼락을 맞고, 소 한 마리, 말 한 필, 개 두 마리도 또한 벼락을 맞아 죽었으며, 충청도 부여현(扶餘縣)에서는 소 두 마리가 벼락 맞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世宗) 대에는 전라도 고창현(高敞縣)에서 소와 말에게 벼락이 쳤으며,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사람 1명과 소 두 마리가 벼락을 맞았고, 문종(文宗)대에는 광주(廣州)에 거주하는 사노(私奴)와 소 한 마리, 말 한 필이 벼락을 맞았으며, 중종(中宗) 대에는 충청도 부여현(扶餘縣)에서 사람 둘, 소 하나가 벼락에 맞아 죽었고, 경기도 금천현(衿川縣)에 소나기가 내렸는데, 소 세 마리가 벼락을 맞아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종(明宗) 대에는 충청도 청산(靑山)에서는 소 한 마리가 벼락을 맞아 죽었고 땅이 꺼져서 깊이가 몇 척(尺)이 되었으며, 남포(藍浦)에서는 사노(私奴)가 벼락을 맞아 죽었으며, 벼락으로 인한 변고가 각지에서 발생하였는데, 함경도 영흥부(永興府)에 사는 형제가 나란히 밭을 가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불며 천둥이 쳐 형(兄)과 그의 소가 벼락 맞아 죽어 그의 오른쪽 가슴을 살펴보니 전문(篆文)과 같은 흔적이 있었고 소에게는 상흔(傷痕)이 없었던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또한 평안도 의주(義州)에 크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남자 한 명과 소 두 마리가 벼락에 맞아 죽었으며, 가산군(嘉山郡)에는 우박이 물을 붓듯이 내렸는데, 큰 것은 바리만하고 작은 것은 계란만하여 인가의 장독이 박살이 났으며,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날짐승이 맞아서 죽고 벼는 모두 손상되어 단지 뿌리와 줄기만 남은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황해도 신천(信川)에 사는 남자가 소를 이끌고 섶을 베다가 벼락에 맞아 사람과 소가 함께 죽었고, 경상도 영천(永川)에서 농민이 소를 몰고 들에 나갔다가 모두 벼락 맞아 죽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조(宣祖) 대에는 전라 감사가 서장을 올려, 나주(羅州)에 사는 상인(喪人)이 그의 집 송정(松亭)에 앉아 있다가 사노(私奴)와 소가 함께 벼락을 맞아 죽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원주 목사(原州牧使)가 보고하기를, 관문(官門) 3리(里) 안의 냇가에서 어미 소와 송아지를 방목(放牧)하였는데, 별로 비도 내리지 않다가 저녁이 되어 잠시 캄캄해지더니 천둥소리가 한 번 나고 벼락을 맞아 어미 소가 죽었는데 송아지는 온전했으며 그 옆에서 김을 매던 사람들도 다친 자가 없는 비상한 변이가 발생하였다고 한 바가 있습니다.

한편, 현종(顯宗)대에는 평안도 선천(宣川)·귀성(龜城) 등 읍에 우레가 크게 쳤는데, 소와 개가 벼락을 맞아 죽었고, 낙뢰로 인한 불도 일어나 민가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으며, 함경도 경원(慶源) 등 고을에서 소와 가축이 벼락에 맞아 많이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17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충청도(忠淸道) 괴산 지역의 연풍현(延豐縣)에서 송아지가 벼락을 맞아 죽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숙종실록 37권, 숙종 28년 9월 23일 신미 기사 1702년 청 강희(康熙) 41년

충청도 연풍현에서 송아지가 벼락 맞아 죽다

충청도(忠淸道) 연풍현(延豐縣)에서 송아지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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