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취재수첩] 동남아 사람 위해 "밥쌀용 쌀 수입해야 한다"는 이병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국감 취재수첩] 동남아 사람 위해 "밥쌀용 쌀 수입해야 한다"는 이병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10.21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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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에 농민은 없었다

농민 위한 쌀 수입 정책 전환 질문에
동남아 사람 위해 "쌀 수입 필요" 강조

채소 가격 폭락으로 농민 피해 컸지만
수급조절 비판에 "부족했다" 답변만

aT 임원 비전문가 총체적 문제 지적
청와대 낙하산 캠코더 인사 도마 위

 

2019년 10월 17일 국회에서 치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국정감사에서 이병호 aT 사장이 국회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9년 10월 17일 국회에서 치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국정감사에서 이병호 aT 사장이 국회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세계무역기구(WTO)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이라든지(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밥쌀용 쌀) 수입은 필요합니다."

2019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국정감사장. "국내 농민들의 입장을 반영해서 과감하게 (밥쌀용 쌀) 수입을 하지 않는 정책적 전환도 필요하지 않느냐"라는 이만희 의원 질문에 이병호 aT 사장은 이같이 답했다. 굳이 한 말씀 더 드리겠다며 추가 답변을 단 것이다.

밥쌀용 쌀 수입은 최소 물량이라 하더라도 국내 농민들에게는 상징적인 일이자 큰 위협이다. 지난 역사에서 농업은 늘 무역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도맡아 했으며 다른 산업의 총알받이가 됐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생각없는 날갯짓에도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진 이유다.

정부가 최근 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려놓기로 결정하면서 농민들의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 초기 농민 소득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이병호 사장의 이번 발언은 농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쌀 관련 단체는 해당 발언을 접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단체 관계자는 "국내 수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쌀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게 대답해야만 했는지 의문"이라면서 "국내 농산물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이병호 사장의 밥쌀용 쌀 수입과 관련한 생각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이날 국감에서 이병호 사장은 양파 등 국내산 농산물 가격 폭락 질문에는 자신들이 "많이 부족하다"라는 답변 이외의 뚜렷한 대안이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올해 수급조절 실패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민들에 대한 코멘트에는 인색한 것이다. 농산물 수급조절에는 연간 6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정도록 막대한 돈이 책정되지만 매년 반복되는 단골 질문에 매번 정답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셈이다.

이 사장은 aT 사장 취임 전 가락시장을 관장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을 거쳤다. 국내 농산물 유통물량의 40%가 가락시장을 경유하며 한해 거래량만도 4조 원을 웃돈다. 국내 농산물 유통의 총사령관 역할을 한 그는 2018년 aT 사장으로 취임했다. 치열한 유통 현장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전문가의 등장에 농민들은 수급조절 사무국 역할을 하는 aT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당시 aT는 농산물 수급 조절매뉴얼을 만든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올해 양파와 마늘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은 큰 아픔을 겪었고 과거보다 더 널뛰는 가격에 호주머니는 더 얄팍해졌다. 천문학적인 정부 예산이 투입되지만 농민들의 피해 규모는 더 깊고 더 넓었다. 가격이 오르면 수입으로 농민 소득을 가로막고 폭락하면 늑장 대처하는 패턴은 수십 년간 농업계가 겪은 수급조절의 민낯이다.

김태흠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 인사가 수급조절 실패 등 aT의 근본 문제로 규정짓기도 했다. 특히 이병호 사장을 비롯한 5명의 aT 임원을 정조준하며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본질적인 여러 부분들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낙하산, 캠코더 중심의 인사"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aT 수급 이사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캠프 농어민 선대 상황실장"이라면서 "(농업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이 같은 임원진으로) 유통공사가 제대로 운영되겠느냐"라고 질책했다. aT 임원 중 하나인 상임감사의 경우 현재 성희롱 비위행위 혐의로 올해 7월 직무정지가 내려진 상태다.

해당 업무와 관련이 없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자기 주변 인물들을 인용하는 문 정권의 정실인사(情實人事)는 차치하더라도 농업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의 수장 입에서 농업의 근간인 농민을 위한 발언은 찾기 힘들었다.

aT의 국정감사에서 농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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