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 "씨앗 전쟁···몇 년 후면 일본 아성 넘는다"
[특별기획2] "씨앗 전쟁···몇 년 후면 일본 아성 넘는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9.10.30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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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품종 틈새시장 공략 소비자 정조준
해외 연구소 구축 종자 수출 기업 '잰걸음'

씨드로드(Seed Road)를 찾아서...품종 국산화의 길
[인터뷰] 책 쓰는 CEO 류경오 아시아종묘 대표이사

 

류경오 아시아종묘 대표이사.
류경오 아시아종묘 대표이사.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류경오 아시아종묘 대표이사는 실무형 CEO로 통한다. 전 세계를 직접 발로 뛰며 부딪쳐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일어·영어에 능통한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공략하는 작은 종자기업을 세웠다. 남다른 영업력으로 작은 기업을 굴지의 코스닥 상장 수출 전략 기업으로 키워낸 그는 종자 혁신을 이뤄내며 류경오 이름 석 자를 하나의 브랜드로 키워냈다. '아시아종묘는 몰라도 류경오는 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는 업계에서 잔뼈가 굵다. 40년 가까이 종자산업에 헌신하면서 '기능성 채소', '기능성 건강식 모듬쌈채' 등 14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책 쓰는 CEO로 유명해진 그는 여러 매체에 집필활동을 하는 종자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다.

"씨앗은 한 국가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류 대표이사 명함 뒤쪽에는 아시아종묘의 대표 품종 '미인풋고추'가 새겨져 있다. 언제 어디서나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란 이유에서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는 늘 이름을 말하고 씨앗도 홍보한다. 종자를 알리기 위한 행동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종자는 금보다 귀합니다. 인류 식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안전한 먹거리 확보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종자산업을 육성시켜야 할 이유이기도 하죠. 이번 일본과의 무역 전쟁을 보더라도 품종 국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죠."

최근 한일 간 경제 무역보복 사태로 빚어진 반일 기류는 농업계에 제2의 종자 신토불이 바람으로 불어닥쳤다. 우리가 무심코 먹었던 채소와 과일이 일본 품종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종자주권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가는 채소 중 양파가 있습니다. 국내 유통되는 양파 대부분이 일본 품종이고요. 하지만 양파도 품질면에서만 보면 국산 품종이 일본 품종을 많이 따라잡았습니다. 국내 종자회사들 대부분이 일본 품종에 버금가는 양파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3년 정도 후면 국산 품종이 일본 품종을 앞서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류 대표이사가 자신이 저술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 대표이사가 자신이 저술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존 품종 선호 경향으로 신품종 정착에 수십 년
유통 관행 진입장벽 높아 신품종 개발 어려워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종자시장은 유통시장과 관련이 크다. 종자 수요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종자도 사멸한다. 국내 농산물 유통은 아직까지 도매시장의 영향력이 큰 탓에 경매사나 중도매인이 찾는 품종을 농민들도 선호한다. 기존 품종을 고수하려는 유통인 성향 때문에 신품종이 시장에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면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일본 품종이 쉽게 대체되지 않는 이유다.

"아시아종묘에서 작고 맵지 않은 작은 고추 '따고또따고'를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육질이 아삭하고 식미가 우수해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품종이었죠. 문제는 도매시장에서 원하는 외형이 아니었습니다. 기존 품종보다 작았기 때문인데요. 대체로 경매사들은 관행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품종과 똑같은 외형을 지닌 품종을 원합니다. 그들이 지금의 유통구조에서 종자시장은 바꾸기 힘들다고 조언하더군요."

좋은 신품종이 유통시장 벽을 넘지 못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야심작 '따고또따고'는 사멸할 위기에 처했지만 뜻밖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인근 학교 교장 선생이 해당 품종의 맛을 보고 학생들이 좋아하겠다며 학교 급식에 납품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해당 품종은 일부 농가에서 재배돼 급식업체로 납품되고 있다.

숫자 내미는 종자산업 생태계 악순환 반복
단거리 아닌 마라톤 육종가 육성 환경 조성해야

류 대표는 종자기업 경영에 대해 모래성을 쌓는 어려운 과정이라고 털어놨다. 품종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종자산업은 마라톤처럼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동안 종자기업들은 단거리 선수를 키워내듯 숫자만 내미는 성과 위주의 경영으로 좋은 육종가들을 발굴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종자기업의 경영자가 철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보통 글로벌 리딩(Leading) 기업들은 자신들의 주 작물, 잘 팔리는 주요 품종에 집중하고 해당 연구원만 대우했죠. 성과 위주의 숫자 경영 때문인데요. 단기적인 경영 성과를 올리기 힘든 종자산업 특성상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는 우수한 육종가가 발굴되기 힘든 구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종자 산업은 이런 이유로 정체돼 있다고 생각해요. 기업들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인프라를 소중히 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막 자란 새싹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막 자란 새싹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틈새시장 공략, 3만 달러 시대 트렌드 맞춰 품종 다양화
미니 양배추 꼬꼬마·망고 수박 소비자 관심 'UP'

"아시아종묘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3만 달러 시대 품종에 대한 요구도 다양해졌는데요. 출혈 경쟁이 되는 품종은 내려놓고 트렌드를 반영한 독특한 품종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아시아종묘는 미니 양배추인 '꼬꼬마'를 개발해 큰 관심을 받았다. 샐러드에 들어가는 채소는 많은 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커다란 양배추는 손질하는 작업이 번거로워 쓰임새도 애매하다. 상품 그대로 넣을 수 있는 초소형 꼬꼬마 양배추는 소비자의 이런 고민을 크게 줄였다. 꼬꼬마는 군산시농업기술센터가 주축을 이뤄 농가들과 함께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독특한 상품은 또 있다. 1~2인 가구를 겨냥한 뉴꼬꼬마 수박도 아시아종묘만의 시그니처 품종이며 속이 노란 망고 수박은 소비자의 큰 관심거리다.
 

아시아종묘의 꼬꼬마 양배추, 망고수박, 미인풋고추(사진제공=아시아종묘).
아시아종묘의 꼬꼬마 양배추, 망고수박, 미인풋고추(사진제공=아시아종묘).

"단순히 외형만 특별한 품종뿐만 아니라 기능성 채소 공략도 하고 있습니다. 미인풋고추가 대표적인데요. 도매시장에서 반응이 좋지 못한 '따고또따고' 후속작입니다. 미인풋고추는 외형이 매끈해 시장 반응도 폭발적이고 무엇보다 혈당을 낮춰주는데 효과적이어서 기능성 상품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미인풋고추는 연구원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뛰어난 혈당 강하 효과로 연구원들로부터 되려 어떻게 만들었는지 전화가 올 정도다. 출시 9년째를 맞는 미인풋고추는 국내 고추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농민 원맨쇼 요구 이제 그만"
품종·상품 다각화로 농민 소득 '쑥쑥'

국내산 신 품종을 개발하는 일은 식량주권뿐만 아니라 농민 소득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농민에게 생산, 유통, 판매, 6차 산업까지 요구하는 우리나라 농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류 대표의 생각이다.

"우리 농업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획일적으로 변했죠. 다양성이 사라졌어요. 날씨가 좋아 한 품목의 생산량이 조금이라도 늘면 가격이 떨어져 크게 손해 보는 게 우리 농업의 현주소죠. 한 품목에서도 다양한 품종이 개발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잎 수가 많고 잎 색이 진한 기능성 품종 '시래기'는 획일적인 무 품종을 벗어나고자 개발한 시래기 무 전용품종이다. 3년간 시장을 개척해 나간 '시래기'는 차츰 농민들로부터 반응이 뜨거워지고 있다.

종자기업으로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건강에 좋은 미인풋고추를 원료로 하는 다양한 상품 개발이다. 현재 해당 제품을 활용한 드링크제와 화장품이 시제품으로 나와 판촉 단계에 있다. 미인풋고추차는 이미 4년 경력을 쌓고 시장 확대를 넘보고 있으며 치약도 개발 중이다.

"씨앗만 팔고 나 몰라라 하면 시장이 죽습니다. 종자에서 시작해 생산, 그리고 가공품까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죠. 아시아종묘의 철학은 농민들이 돈을 벌게 해야 한다입니다."
 

아시아종묘는 양배추로 농업계에서는 생소한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아시아종묘는 양배추로 농업계에서는 생소한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IT업계에서 '화들짝' 양배추로 장영실 상 수상
수출 전략 정조준, 해외 연구소 확보 세계화 성큼

정작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종묘는 전 세계 양배추 품종의 강자다. 전 세계 곳곳 아시아종묘에서 생산되는 양배추 종자가 수출된다. 양배추 품종으로 아시아종묘는 IT·전자 업계에서 독식하는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종묘의 앞으로의 목표는 토마토 종자 개발이다. 토마토는 전 세계 먹거리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누구나 좋아하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양파도 류 대표가 생각하는 전략 품목 중 하나다.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양파 품종은 국내 인기 품종이 아닌 '롱데이'라 불리는 장일성 양파다. 류 대표는 2개 품목을 석권해야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인도와 베트남에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인도는 가짓과 채소 중심으로, 베트남은 열매채소를 중심으로 꾸려갈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우즈베키스탄에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인데 해외 연구소가 안정화되면 국내 4곳, 해외 3곳이 유기적으로 결합, 본격적인 수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기업 인프라가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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