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역사 속으로⑨] 축산자조금 좌절과 성공의 역사-2
[팜 역사 속으로⑨] 축산자조금 좌절과 성공의 역사-2
  • 옥미영 기자
  • 승인 2018.05.24 09:32
  • 호수 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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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자조금의 탄생과 축산자조금의 역할

고비 넘긴 한우자조금과 활짝 핀 의무자조금

양돈에 이어 한우와 낙농, 산란계와 육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5년 오리까지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했다. 특히 한우의 경우 사육농가가 당시 무려 16만7천농가에 달해 사육농가의 절반 이상인 8만여 농가들이 투표에 참여해 야만 대의원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한우부문의 의무 자조금 도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우려가 높았다.

하지만 한우지도자들의 전략 속에 전업 규모 이상의 농가들이 투표에 대거 참여하면서 당시 ‘평균사육두수 7마리’라는 취약한 산업 구조 속에서도 투표에 참여한 농가들의 사육두수가 3분의 2를 넘는 ‘사육두수 유효투표율’로 대의원 선출의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2004년 8월 25일 영남권을 시 작해 11월 11일 충청권을 마지막으로 실시된 대의원 선거결과 전국 250명 의 대의원 정수의 96%인 240명을 선출해낸 것이다. 2005년 2월 열린 한우자조금 대의원총회에서는 의무자조금 거출과 2만원의 거출금액 그리고 자조금관리위원선출까지 마무리 지었다.

초대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에 선출된 남호경 회장은 “소규모 한우농가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여건에서 한우자조금 도입을 위한 대의원 선출은 피를 말리는 과정이었다”면서 “자조금 도입에 대한 농가들의 강한 의지를 모아 협회가 중심이 되어 규모화된 농가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면서 대의원 선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술회했다.

무난하게 진행된 양돈과 낙농에 비해 양계분야 자조금은 시행에 우여 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육계분야 역시 법안 발효 직후인 2004년 11월 육계자조금 공동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이듬해 10월 대의원 선출까지 확정지었으나 1차 육계자조금대의 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것이다. 이후 5년간 계속 표류해온 육계자조금은 2009년에 이르러서야 자조금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 규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육계부문의 자조금이 쉽게 정착하지 못했던 것은 닭고기 소비촉진을 위해 자조금을 사용하면 닭을 사육하는 농가가 아니라 계열화업체만 혜택을 보 게 된다는 농가들의 반발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5년 2월 농협 안성연수원에서 열린 한우자조금 설치를 위한 제1회 대의원회 총회에서 남호경 당시 한우협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2005년 2월 농협 안성연수원에서 열린 한우자조금 설치를 위한 제1회 대의원회 총회에서 남호경 당시 한우협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닭고기 소비가 확대 되면 결국 전체 산업과 농가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앞세워 농가들을 설득했지만 자조금 사업의 주도권 문제가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양계협회와 계육협회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양계협회로 기울어지자 김홍국 하림 회장까지 나서 자조금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며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결국 모든 논란이 잦아진 201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계란자조금은 2009년 의무자조금이 도입되었지만 도축장과 유가공공장 등 거출지점이 확실한 다른 품목과 달리 거출지점이 없는 품목이어서 거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일반 축산물과 우유의 경우 도축장과 가공처리장 등 최종 처리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특성이 자조금 거출률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한 데 반해 계란은 농산물과 유통환경이 비슷한 소비재 상품이어서 산란성계와 산란종계, 산란중추 출하 시 자조금을 거출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중간 유통에서의 대납과 무임승차 등 완벽한 의무자조금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산 축산물 차별화의 일등공신 ‘축산자조금’

축산부문의 의무자조금 사업은 도축장과 유가공공장이 수납창구로서의 역할 등 사업파트너로서 함께 조력하면서 자조금 조성의 기반이 되는 거출 업무에 어려움 없이 추진할 수 있었다.

의무자조금 도입 초기인 2008년에는 양돈자조금과 거출기관인 도축장이 납부되지 않은 자조금 징수의 책임을 둘러싸고 헌법 소원까지 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돌발 변수들 역시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축산자조금은 산업 의 마케팅 보드로서의 역할과 함께 시의 적절한 연구와 교육사업을 진행하며 축산업과 농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사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특히 자조금 사업은 수백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농가 스스로의 힘으로 조성하고 축종별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이들 품목별 단체의 위상과 영향력을 키우며 정부가 생산자단체를 새로운 농정파트너로서 인식, 주요 정책과 사업들을 함께 결정하는 반열에 올려놓았다.

가장 늦게 출범한 한우협회를 제외하고 양계협회, 낙농육우협회, 양돈협회 등 축종별 생산자단체는 60~70년대 속속 출범했지만 자조금 사업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농축산분야의 대표적인 생산자단체는 협동조합이라는 인식이 강했었다.

자료: 각 사업부문별 홈페이지.(닭고기자조금은 2016년 실적)
자료: 각 사업부문별 홈페이지.(닭고기자조금은 2016년 실적)

협동조합은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병행하며 급속한 성장을 맞은 가운데 품목별 생산자단체들은 농정활동에만 전념해오다 본격적인 의무자조금 시대를 맞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홍보사업과 함께 대국회·정 부를 대상으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것이다. 자조금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자조금 제도의 목적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우리 축산물이 수입육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국내산 축산물이 수입 축산물에 비해 가격이 높지만 소비자들은 수입육 대비 국내산 축산물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가격을 지불하는 등 지속적인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더욱이 전 품목에 걸쳐 농가의 규모화와 사육두수 증가로 공급량이 크게 증가하고 여기에 수입개방으로 인해 더욱 싼 값의 축산물 수입이 크게 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국내산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국내산 축산물은 품질에서의 우위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펼친 것과 함께 2004년부터 자조금을 활용한 홍보와 소비자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가격 이상의 경쟁력을 자조금을 통해 확보하게 된 것이다.

소비활성화에 집중됐던 축산자조금은 최근 축산업이 전업·규모화되면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축산업과 축산물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적절히 활용되고 있다.

동물성 지방이나 축산물이 무조건 몸에 좋지 않다는 각종 서적과 잘못된 정보 전달을 바로잡기 위해 자조금은 다큐멘터리와 소비자 홍보 교육을 지속해서 실시하고 있다. 사육방식 등을 문제삼는 동물보호단체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대응하며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위해 보이지 않는 ‘축산 지킴이’로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