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72] 멧돼지가 사람을 다치게 하자 왕실 내의(內醫)가 구료(救療)하게 하였다
[480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72] 멧돼지가 사람을 다치게 하자 왕실 내의(內醫)가 구료(救療)하게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1.0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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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88호, 양력 : 11월 5일, 음력 : 10월 9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조선왕조실록에 돼지에 관한 기록은 700여건이나 멧돼지에 관한 기록은 60여건으로 한자로는 시(豕), 저(猪), 산저(山猪), 야저(野猪)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사냥이나 제향에 쓰인 기록이 많으나 이외에 농사에 피해를 주거나 사람을 다치게 한 내용 등 임금 대별 주요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세종(世宗)대에는 상왕(上王)인 태종(太宗)이 강원도 철원 부사를 장막(帳幕) 안에 불러 관내 남산(南山) 등지에 노루와 사슴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자, 사람을 보내어 사사로이 사냥하는 것을 철저히 금(禁)하여 노루·사슴·멧돼지가 참으로 많다고 보고를 한바 있으며, 예조(禮曹)에서는 지금의 창경궁(昌慶宮)인 수강궁(壽康宮)에다 음력 12월인 납월(臘月)에 진상하는 멧돼지,사슴 각각 5마리, 노루 7마리, 토끼 15마리, 산 꿩 50수(首)를 각도에 나누어 진상하도록 하였고, 궁중에서 사용하는 법주(法酒)에 노루 뼈를 넣는데, 오위(五衛)에 속(屬)하는 정3품(正三品) 무관(武官)인 상호군(上護軍)등이 이를 위해 경기도 남양주 일대인 풍양(豐壤)에서 사냥을 하다가 사복시의 제원(諸員)이 멧돼지에게 살해되는 일이 있자, 의금부에 가두었다가 곧 석방하면서 지금부터는 노루 뼈를 넣어서 담는 술은 만들지 말도록 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강원도 감사의 첩정(牒呈)에 의거하여 철원 인근의 회양부(淮陽府)의 남곡(嵐谷) 등지는 강무장(講武場)과 가까워 사냥을 금했기 때문에, 멧돼지가 번식하여 곡식을 해침이 더욱 심하니 금했던 사냥을 풀어 달라고 하자 멧돼지 잡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명하였으며, 사냥몰이를 하는 구목(驅牧)이 산을 감시하는데 한 마리의 큰 멧돼지가 화살에 맞고도 포위망을 뚫고 나와서 왕실마인 내구마를 들이받아 죽게 하자, 사복시 제조 등이 여러 관원들이 조심하여 간수하지 않아서 말을 죽게 하였으니 죄를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임금이 뜻밖에 생긴 일로 큰 멧돼지가 이 말에게 달려와서 부딪힐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거론(擧論)하지 말라고 한 바도 있습니다.

성종(成宗)대에는 멧돼지가 사람을 다치게 하자, 임금이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는 내의(內醫)에게 명하여 가서 구료(救療)해 주도록 한 바가 있으며, 청계산(淸溪山)에 거동하여 사냥을 하여 노루·사슴·멧돼지·토끼등 모두 25마리를 잡아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를 보내 잡은 짐승을 종묘(宗廟)에 바치게 하였고,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평안도 강변 여러 고을에 생쥐(鼷鼠)와 곰·멧돼지가 곡식을 거의 다 먹어버려 이로 인해 농사가 실패하여, 초가을에 면포(綿布) 한 필이 쌀 6, 7말(斗)의 값이 되었는데 지금은 쌀 두 말 값이라, 군사가 비록 면포를 가지고 가더라도 백성이 가진 곡식이 없어 양식을 준비할 수 없다고 보고하자, 종친(宗親)의 일을 담당하던 돈녕부(敦寧府)의 정1품 관직인 영돈녕(領敦寧)에게 의논하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중종(中宗)대에는 영사(領事) 등이 아뢰기를, 경기도 파주의 예종(睿宗)의 정비(正妃) 능인 공릉(恭陵) 위를 멧돼지가 파헤쳤다 하니, 먼저 사유를 고하는 제사를 지내는 일을 관원을 보내어 별도로 지내고 다시 능을 수축(修築)한다 하더라도 또다시 그렇게 되면 소용이 없을 것이므로 그 짐승을 몰아낸 뒤에 함이 옳다고 하자, 임금이 대신이 가서 직접 살펴본 뒤에 처리하고, 멧돼지의 소행이라도 실은 재이(災異)이니, 임금이 친히 참석하는 제사인 친제(親祭)는 하기 어려워도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480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가을이나 겨울에 사냥하여 잡은 날짐승을 종묘(宗廟)에 올리는 천금(薦禽)은 으레 군사 훈련을 겸한 사냥인 타위(打圍)나 강무(講武)를 할 때 했는데, 친행(親幸)할 경우에는 폐단이 따를 뿐만이 아니라 자주 할 수가 없는 형편이고, 동서(東西)의 산에는 악수(惡獸)가 들끓어 백성들과 곡식에 피해를 입히고 있으니, 한 장수에게 명하여 당번 군사만을 이끌고 나아가 사냥을 하게 하여, 천금도 하고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어, 이런 내용을 삼공(三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에게 의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종실록 92권, 중종 34년 10월 9일 계유 기사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사나운 짐승이 많아져 곡식에 해를 끼치는 일이 많아 삼공과 의논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중략) 천금(薦禽)과 연병(鍊兵)은 모두 중대한 일이다. 옛날의 천금은 으레 타위(打圍)를 하거나 강무(講武)를 할 때 했는데, 친행(親幸)할 경우에는 폐단이 따를 뿐만이 아니니 자주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나의 생각에는 천금은 궐할 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東西)의 산에는 악수(惡獸)가 들끓어 백성들과 곡식에 피해를 입히고 있으니, 마땅히 한 장수에게 명하여 당번 군사만을 이끌고 나아가 사냥을 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바깥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한다면, 한편으로는 천금도 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어서 두 가지 다 온전히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타위하고 싶어서 의논하는 것이 아니다. 타위는 하지 않더라도 천금은 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으로 삼공에게 의논하라."

【태백산사고본】 47책 92권 3장

【주】

천금(薦禽) : 사냥에서 첫번에 잡은 날짐승의 고기를 조상(祖上)의 신주(神主) 앞에 먼저 올리는 행사. 즉 임금이 가을이나 겨울에 사냥하여 잡은 날짐승을 종묘(宗廟)에 올리는 행사.

타위(打圍) : 임금의 사냥. 여러 사람이 짐승을 포위하고 이것을 임금이 사로잡았기 때문에 생긴 말로 군사 훈련을 겸한 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