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역사 속으로11] 국내 육류유통의 발전사-1
[팜 역사 속으로11] 국내 육류유통의 발전사-1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8.05.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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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가격도 정부가 정하던 나라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국가 못지않은 계획국가 중 하나였다. 좋게 표현하면 국가의 역할이 큰 케인즈주의를 따랐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경제를 시장에 맡겨 두기보다는 정부의 통제가 극심했다.

그 당시에는 목욕이나 이발요금 같은 서비스업의 요금도 정부가 정해 고시했고 지금도 정부의 관여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는데 택시비와 버스요금과 같은 대중교통요금, 휴대폰 요금 등을 정부가 인가해 주고 있다.

축산물도 마찬가지다. 소와 돼지, 말, 양과 같은 가축은 1960년대 이미 위생처리가 제도화 되어 있었고, 닭과 같은 가금류와 개 등은 임의로 도축이 가능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는 도축장에서 처리되어 반출되는 쇠고기 등과 같은 육류의 가격을 정부가 통제했다. 물가 안정을 중시했지만, 가격을 통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당시 정부는 곧바로 축산물 특히 쇠고기의 품귀현상을 경험했고, 가격을 통제하는 바람에 정육점이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 사태도 발생했다.

1969년 쇠고기파동은 정부가 정육점의 쇠고기 판매가격을 한 근에 400원으로 한정하면서 지육의 수요를 촉진시켰으나 반대로 농가의 소 구매 가격은 낮을 수밖에 없어 농가들이 생산비보장이 되지 않는 가운데 농우를 도축하거나 비육용으로 소를 따로 키울 유인이 사라졌던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미아리 등 서울의 도축장 3곳을 폐쇄하고 마장동에 위치한 성풍산업에 서울 시내 도축사업을 위탁시켰는데, 독점에 대한 불만이 서울시내 정육점들 사이에 높았다. 당시에는 사실상 도축부분을 공영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육과 정육가격을 통제할 수 있었다.

도축시설, 소비지에서 산지로 이동

도축시설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앞선 이야기처럼 소비지와 가까운 도시 내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냉장물류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부패하는 축산물의 특성상 최대한 살아 있는 형태로 소비지로 운송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보면 과거 독산동이나 마장동에 도축장이 있었고 1980년대 서울, 대전, 인천, 광주, 부산, 대구 등에 대도시에 축장(축산물도매시장)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도축장은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실제로 수시로 가축이 반입되고 계류되는 동안 축산분뇨에 의한 악취, 도축 과정 중의 악취가 주변으로 퍼져나가 주변이 개발되면 이전 대상 1순위가 됐다. 그럴 때마다 도축시설은 첨단화 됐고 그래도 한계가 오면 소비지에서 산지로 조금씩 그 위치를 옮겨가게 됐다.

서울시내 마지막 도축시설이었던 농협가락공판장은 2011년 음성으로 이전했고, 대전 오정도매시장 내에 위치했던 축산물도매시장은 폐쇄, 안양의 축산물도매시장도 2025년까지 이전키로 하는 등 대도시 도축시설은 점차 산지로 이동했다.

이 같은 도축장의 위치 변화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인구가 뉴욕과 워싱턴과 같은 동부지역에 밀집되어 있던 시기에는 서부지역에서 소를 키웠던 축산농가들은 소를 몰고 동부로 이동해 도축업자에게 판매를 했고, 철도가 놓이면서 시카고를 중심으로 도축산업이 발전해 미국 전역의 소가 시카고로 보내지기도 했다.

이후 도로망이 발달하고 냉장 및 냉동인프라가 확충되면서 도축장은 산지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생축의 운송이 지육이나 부분육의 운송보다 여러 면에서 불리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상이 국내 도축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도축장으로 유통구조 일원화

처음부터 도축장에서 소와 같은 가축이 위생처리된 것은 아니었다. 닭은 1990년대까지 밀 도축이 성행했고, 1980년대까지 시골마을에서는 때가 되면 소나, 돼지, 개 등을 마을에서 도축해 마을 주민들과 나누어 먹었다.

정부는 가축의 밀도축 특히 소와 돼지의 밀도축을 엄히 처벌했다. 이는 세금체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금은 폐지가 됐지만 도축세가 있었다. 도축세는 소·돼지의 도살에 대해 과세하는 지방세로 소·돼지의 도살행위에 대하여 과세하는 소비세 또는 행위세적 성격의 독립세이다.

도축세는 도살을 하는 시·군에서 소·돼지 시가의 1,000분의 10 이하의 세율을 적용했으며, 소·돼지의 도축은 대부분 도축장에서 이루어지므로 도축장경영자가 특별징수의무자로 지정됐다. 닭과 같은 가금류는 도축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도축세가 운영되던 시기 세원이 풍부하지 못한 지방정부는 혐오시설이지만 지방재정에 큰 기여를 하는 도축장이 매우 요긴할 수밖에 없었고 세원확보 차원에서라도 밀도축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엄격한 관리를 하게 됐다. 허가된 도축장이 아닌 곳에서 도축을 막는 유용한 수단이 되면서 축산물유통구조를 단순화 시키고 축산물이 위생처리 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다르게 도축세가 부과되지 않았던 닭, 개, 토끼, 염소 등은 별도의 도축설비가 존재하지 않았고, 재래시장 등지에서 즉석에서 도축되어 유통됐다. 이후 닭은 도계장에서 위생처리를 의무화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다가 육계수직계열화사업이 시작되고 도계육 대형수요처인 치킨외식산업의 발전과 대형할인점의 등장과 함께 2000년대 들어서야 도계장 도축이 완전히 정착되게 되었다.

오리의 경우 본격적인 산업화가 2000년대 들어 시작됐고, 육계수직계열화를 모델로 하다 보니 도압장에서의 도축으로 전환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염소의 경우 2010년대 들어서 위생처리의 여론이 높아지면서 염소도축장이 생겨나고, 한국양토양록조합의 투자로 토끼전용도축장이 들어서는 등 도축산업의 산업화된 가축 대부분이 위생처리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1960년대 이미 소, 돼지, 말, 양의 경우는 도축관련 법률이 존재하고 도축장에서 검사 후 유통이 의무화 되어 있었지만 닭, 개, 토끼와 같은 가축의 경우는 별도 도축시설이 존재하지 않았고 관련 제도 또한 미비했다.

도축장에서는 가축의 도축뿐만 아니라 출하된 가축의 질병 감염여부를 검사하고, 소비자들이 구매의 기준이 되는 등급을 부여하는 등 여러 공적 업무들이 수행이 된다.

우리가 주로 섭취하는 육류는 돈육, 계육, 우육, 오리육, 개고기, 염소고기, 양고기, 토끼 정도일 것이다. 이 중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사육되는 품목은 양을 제외한 7개 품목이고 이 중 개를 제외한 6개 품목은 전용 도축시설을 갖추고 있다.

소와 돼지는 같은 도축시설을 사용하고 있으며, 오리, 닭, 염소, 토끼는 품목별 전용도축장이 존재하며, 2010년대에서야 염소와 토끼 도축장이 일반화 됐으니 도축과 관련된 역사는 소와 돼지, 닭 그리고 오리의 도축 역사라 봐도 무방하다.

돼지유통은 왜 육가공회사 중심으로 재편되었나?

육가공회사는 주요 수요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육가공업체란 생돈을 도축하여 2분도체나 부분육으로 가공해 유통하는 곳으로 농협목우촌, 한냉, 대상, 롯데햄, CJ제일제당, 선진 등이 1일 1000두 이상을 가공하는 주요 육가공업체며, 1000두 미만의 업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육가공업체를 식육포장처리업체로도 불리긴 하는데 보통 산지에서 생돈을 직접 구매하거나 수집상을 통해 구매하기 때문에 이들 물량은 대부분 임도축되어 자사 육가공공장에서 부분육으로 가공하거나 육가공품을 제조해 직접 유통하게 된다.

육가공업체의 영향력은 경매의 비중 변화로 알 수 있는데 1998년 34.8%에 달했던 경매비중은 2015년 상반기 9.5%로 감소했고, 2017년 1분기 경매 비중은 8.3%로 그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돼지 유통이 공판장과 도매시장이 아닌 육가공업체 중심으로 재편된 이유는 먼저 목우촌, 한냉, 롯데햄과 같은 대형육가공업체가 존재하면서 산지와 직거래가 유통비용 절감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게 되면 상장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햄과 소시지와 같은 육가공품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원료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산지와의 직거래를 통해 물량을 미리 확보할 필요성도 컸다. 또 이들 대형업체 중 일부는 도축시설을 소유하고 있어 도축설비가 있는 도매시장에서 원료육을 구매할 필요가 없는 곳도 있다.

초기 이러한 대형유통업체 중심으로 돈육시장이 재편되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돈육의 브랜드화가 진행되면서 생산 부분의 특화 시도가 이어졌다. 대형할인점의 등장 이후 소매유통업의 대형화, 체인화가 진행되고, 대형외식프렌차이즈 업체의 등장으로 원료육을 안정적으로 조달받기를 원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육가공업체들이 등장하게 된다.

양돈장의 규모화도 육가공업자와의 산지직거래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대형수요처의 요구와 함께 많은 양의 돼지를 출하하기 때문에 상장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고, 육가공업계의 필요와 규모화 된 양돈장의 유통비용 절감에 대한 필요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 볼 수 있다.이들 육가공업체는 식육포장처리업체로도 불리면서 산지에서 생돈을 구매해 일반도축장에서 임도축한 돼지 지육을 자체 육가공시설에서 부분육으로 가공해 거래처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육가공업체 중심으로 돼지유통이 전환된 마지막 이유는 돼지 등급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한우의 경우 육질이 최종 소매단계에서도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으나 돼지의 경우는 돼지 등급이 소비자의 구매 기준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서 쇠고기와 같이 도매업자가 등급을 확인하고 거래할 유인이 없었다.

육가공업자가 산지에서 생돈을 구매하게 한 원인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이 같은 원인으로 돼지의 도매시장과 공판장으로의 출하 비중은 줄어들고 도매시장과 공판장도 돼지의 경우 임도축 물량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도축업계도 소가 공판장으로 쏠림현상이 지속된 가운데 일반도축장과 LPC의 경우 돼지를 중심으로 도축장을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도축장 가동률을 살펴보면 중규모 이하 도축장의 가동률이 같은 규모의 소에 비해 큰 것을 알 수 있으며, 중소규모 도축장들이 돼지 위주로 도축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