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역사 속으로11] 국내 육류유통의 발전사-2
[팜 역사 속으로11] 국내 육류유통의 발전사-2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8.05.30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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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다른 길을 걷는 한우유통

한우고기의 유통은 돼지고기 유통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돼지유통업자들 상당수가 산지유통과 소비지 도매유통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면, 한우유통업계는 이보다는 우육 유통이 공판장과 도매시장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중도매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다.

소는 돼지와 달리 축산물공판장과 도매시장 중심으로 유통되는 이유로 돼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도축물량과 높은 가격을 들 수 있다. 소 지육 중량은 400kg 정도로 돼지 지육보다 4배 정도 크고 지육의 단가도 돼지(4000원 내외)의 4배 정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도 우육을 한 번에 많이 구매하지 않는다.

높은 지육량과 지육단가는 결국 중도매인의 1일 구매 물량에서 돼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물량을 살 수밖에 없고 소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도매업체들의 취급물량도 돼지 전문 식육포장처리업체와 비교하면 물량으로는 적은 양을 유통시킬 수밖에 없다.

높은 원료육 가격이 도매업체의 볼륨을 작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우사육농가 또한 규모화가 더딘 것도 도매시장 중심의 유통체계에 한몫을 하고 있다.

소의 생리적 습성으로 인해 돼지와 비교해 넓은 축사 공간이 필요하고, 사육기간도 최장 30개월 내외까지 길어지다 보니 많은 두수의 한우를 입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7년 현재 물가로 따지면 송아지를 구입할 경우 400만 원 정도가 들어가고, 30개월 간 사료값도 300만 원 정도가 투자되기 때문에 규모를 크게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중소규모 농가 위주로 산업이 유지되면서 이들 농장이나 유통업자 양측 모두 직거래를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못한 것도 도매업자와 산지 직거래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여기에 냉장상태에서 3~4주, 진공포장의 경우 16주까지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한 쇠고기와 달리 돼지고기는 일반적인 냉장으로는10~14일 진공포장일 경우 최대 40일까지 보관이 가능해 보통 소와 달리 돼지는 빨리 유통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유통속도는 고기의 숙성 기간의 차이가 원인이 될 수 있는데, 쇠고기가 도축 후 강직이 풀리는데 14일 정도가 걸리나 이에 비해 돼지의 경우는 1~2일 정도면 강직이 풀리는 육류의 특성도 기인한다. 결정적으로 공판장과 도매시장 중심으로 유통경로가 구축된 이유는 쇠고기 육질등급제가 정착하면서 시장에서 등급에 따른 차등 가격 지불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특정한 등급을 찾는 수요처에 쇠고기를 납품하기 위해서는 자금의 여유가 없는 중도매인들로서는 거래처에서 요구하는 품질의 쇠고기를 정확히 구매해 납품해야 하는데, 돼지와 같이 산지에서 소를 구매해 임도축할 경우 어떤 등급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고, 거래처에서 요구하지 않은 등급의 쇠고기가 많이 나올 경우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판장과 도매시장에서 도축 후 이뤄지는 경매를 통해 필요로 하는 등급과 품질의 쇠고기에 입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쇠고기 조달 방법으로 여겨지면서 산지와 직거래를 하는 대형마트들도 도매시장에서 한우고기 조달 비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돼지의 육가공업체나, 식육포장처리업체(양돈업계는 두 업태를 모두 육가공업체로 부름) 모두 자체 가공시설을 갖추고 지육을 부분육으로 가공해 유통시키고 있지만, 우육 유통은 중도매인이 공판장에서 구매한 지육을 대부분 도매업자에게 지육형태로 납품을 하는 게 관행이다.

일부 중도매인이 부분육 가공시설을 보유하고 직접 유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요 거래처에 지육형태의 납품이 대부분이다. 마장동이나 독산동과 같은 도매업자는 이를 다시 식당이나 중소슈퍼마켓 등에 납품을 하고, 정육분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정육점에는 지육형태로 납품을 받게 된다.

육계는 왜 수직계열화 되었나

닭고기 도축산업은 국내 도축산업에서 가장 급격히 변화한 분야다. 199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도계업계는 도계물량 확보가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유인즉 도계육 유통보다는 산닭유통이 주류가 되었고, 모호한 법조항 때문에 소와 돼지처럼 도축장에서 위생처리가 일반화되지 않았다.

얼마 전 이재명 성남시장과 토종닭협회와의 갈등이 있었다. 산닭유통과 도축의 성지나 다름없는 모란시장에서 고병원성AI를 이유로 산닭 유통을 금지시키겠다고 한 것이 문제였다. 토종닭은 여전히 산닭 유통이 활성화 되어 있어 주요 거점인 모란시장에서의 유통이 막힐 경우 토종닭 가격이 하락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토종닭 농가들은 성남시의 조치에 반발했던 것이다.

닭고기의 위생처리를 위한 노력은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9월 농수산부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성남 등 7개 도시에서는 닭을 재래식 방법으로 잡지 못하고 반드시 위생처리시설을 갖춘 도계장에서만 잡을 수 있게 조치했다.

하지만 생계유통업자들은 생업을 잃게 된다며 심한 반발했다. 당시 서울시내에만 생계유통업자는 1천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장에서의 닭의 유통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생계유통업자가 산닭을 간이 우리에 넣어 보관했고, 소비자는 우리에 있는 산닭을 직접 선택하면, 유통업자는 현장에서 바로 도축을 해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바닷가 포구의 횟집들이 대형수조에 횟감을 보관하고 있다고 손님이 횟감을 선택하면 눈앞에서 회를 쳐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닭은 유통되고 있었던 것이다.

냉장·냉동 물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닭을 가장 신선하게 소비하는 방법은 소비자에게 넘겨지기 직전에 도축을 하는 것이었기에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장 골목골목 마다 닭목을 쳐 도축하는 광경은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살아 있는 가축을 보며 도축이라는 과정을 상상하지 못하고, 또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잘 상상할 수 없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살아 있는 닭을 보며 치킨이나 백숙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닭의 도축은 일상적으로 소비자 눈앞에서 이뤄졌다.

어쨌든 농수산부의 이러한 조치는 결국 생계유통업자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혀 시행되지 못했다. 정부의 제도화에 희망을 갖고 도계업에 뛰어들었던 업자들은 협회를 만들어 정부를 압박했고, 생계유통업자와 도계업자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도 저도 아닌 제도를 만들었다.

현재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는 축산물의 위생처리를 의무화 하고 있지만 몇 가지 예외 조항을 두고 있는데 그 당시에도 이러한 예외조항으로 인해 닭의 도계장에서의 위생처리는 쉽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정부는 닭과 오리는 위생처리 품목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1990년대 말에 가서야 도계장에서의 도축을 의무화 했다가 최근 다시 자가소비나 직접 조리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가든형 식당에서의 닭의 직접 도축을 허용하고 있다.

한편 도계장들이 개점 휴업상태가 지속되자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 도계장들이 필요한 닭을 구매해 유통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이제는 닭을 농가들에게 위탁해 사육하는 도계장도 생겨났다.

1980년대 후반부터 냉장, 냉동물류시설이 발전을 하고 마침 등장한 1세대 치킨외식프렌차이즈 업체들의 도계육 수요는 법으로도 하지 못했던 도계육 유통시장을 열게 한다. 생계유통업자들도 새로운 시장인 치킨외식시장에 닭을 공급하기 위해 도계장에서 임도축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양계농가가 생산한 닭을 두고 생계유통업자와 도계업자간의 경쟁이 시작되면서 닭고기 값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가격이 들썩였다. 보통 6~8월 복날을 대비해 닭을 사육하는 농가들의 입추 패턴으로 인해 연중 일정한 양을 잡아 공급해야 하는 도계업자로서는 물량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인 위탁사육이다. 보통 여름에만 반짝 닭값이 오르고 가을과 겨울에는 하락하기 때문에 농가들도 가을과 겨울에 닭을 사육하는 것에는 미온적이었다. 도계업자들은 연중 일정한 사육보수를 지급하는 위탁사육을 통해 생계물량을 확보했고, 닭고기 가격 변동에도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이후 1990년 정부의 육계와 돼지의 가격 안정을 목적으로 수직계열화사업에 지원하기 시작했고, 정부의 지원 그리고 시장구조의 변화,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한 구조조정이 더해지면서 현재의 닭고기 산업으로 변모하게 됐다.

도계육 유통은 1990년대 후반 급격히 자리 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말 정부는 축산물가공처리법을 개정해 닭도 위생처리를 의무화 했지만 큰 반발은 없었다. 이미 냉장시설을 갖춘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의 등장 등으로 전통시장에서의 닭고기 수요는 급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도계장에서 위생처리라는 정부의 계획은 제도 도입이 아닌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유통업태 등장에 따른 수요의 변화에 의해 이뤄졌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축산물위생처리법을 개정해 다시 자가조리용과 직접 조리해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임도계를 허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축산물 위생수준을 계속 높여가는 흐름과 역행하는 것과 같은 조치이기는 하나 이는 토종닭을 키우는 농가들의 요구에 의해 이뤄졌다.

토종닭 전용 도계장이 부족하고 가든형 식당의 경우 직접 닭을 키우며 손님이 오면 바로 닭을 도계해 판매해왔는데 이 같은 양도 얼마 되지 않으니 현실을 인정해 주기로 한 것이다.

위생처리 예외 조항 때문에 현재도 모란시장에는 간이도계를 하는 생계형 상인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AI가 확산되는 시점에 계속해서 도계를 허용하는 것은 질병전파를 방조하는 행위라며 농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성남시가 닭의 도축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며 충돌했던 것이다.

소·돼지·가금류 도축업 어떻게 다른 길을 걷게 됐나?

산업동물을 식용이 가능한 축산물로 변신시키는 도축장은 축산물 유통의 시작점이다. 가축을 도살해 방혈과 가죽과 털 그리고 내장을 제거하는 것으로 도축 공정은 마무리 되고 세척 후 냉각시켜 유통을 하게 된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 각 축종별 특성에 맞는 도축공정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피와 털과 가죽, 내장제거와 냉각 공정은 동일하다. 가축을 도살해 축산물로 상품화를 하는 동일한 공정을 하는 축종별 도축장은 1990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먼저 도계장은 별도의 도계업에서 가축사육업과 통합되고 이후에는 종계와 부화업과 또 다시 배합사료업과 통합되면서 닭고기 가치사슬의 일부가 됐고, 더 이상 도계수수료에 의존해 운영되지 않고 있다.

전후방 연관 산업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도계업, 사육업, 종계와 부화, 배합사료가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고 도계육 가격에 모두가 웃고 우는 산업이 되었다. 오리산업도 닭과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산업초창기부터 수직계열화를 기반으로 산업이 성장했고 그 중심에는 유통, 오리 도압업이 중심을 잡았다.

소와 돼지는 정부의 여러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세는 임도축과 판매기능이 결합된 공판장과 도매시장으로 생산과 도축, 유통이 정확히 분리되어 발전하고 있다.

일부 정부 정책에 따라 도계장과 같이 소나 돼지를 직접 매입해 위생처리 후 유통까지 시키는 도축장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주류는 생산과 도축, 유통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발전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산업의 구조가 마냥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닭과 오리처럼 농장과 결합하거나, 유통과 결합되는 구조변화가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배합사료업계가 양돈농장 계열화에 나서고 있고 이들 기업들 상당수가 도축장 없이 돈육유통에 나서고 있는데,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상당수 도축장이 인수합병 될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양돈협동조합의 경우 도축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양돈전후방산업의 통합을 전망할 수 있는 단초다.

양돈농장계열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곳은 이지바이오, 하림, 사조 등으로 현재 도축 인프라를 가장 많이 확보한 이지바이오와 하림은 어느 시점에서 도축장과 육가공, 양돈농장을 결합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소의 경우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도축장 운영형태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본다. 공판장과 도매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지역에 기반을 둔 한우브랜드들이 유통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산지 도축장에서의 임도축을 확대함으로써 지금은 도축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지일반 도축장들에 기회가 올 것으로 보인다.

시사점

도축산업, 육가공산업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축산업이 발전하는데 도축업은 음으로 양으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축종별 산업구조 그리고 도축 이후 소비지유통의 변화가 도축장의 운영방식을 결정하고, 유통생태계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도축산업의 발전 방향도 이와 같을 것이다. 축산농장이 얼마나 규모화 되는지, 소비지에서는 어떻게 축산물을 구매하려 하는지 그리고 대규모 자본이 얼마나 유입될지 등은 축산유통의 구조를 바꾸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축산유통정책은 규범적으로 진행된 면이 있다. 무조건 대형화를 추구하거나, 수직계열화를 요구해 왔다. 오랜 시간 점진적으로 변화해온 축산유통부분을 정해놓은 틀에 맞춰 개혁하려 하다 보니 그 성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닭고기를 도계장에서 도축하려 애를 써도 되지 않던 것이 치킨외식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대형유통이라는 경로가 생기면서 안착된 것처럼 유통경로의 구축은 결국 전후방산업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됨을 자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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