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78] 중국과 거래하는 함경도 가축시장에서 소, 말, 낙타 1200여두가 교역되었다
[33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78] 중국과 거래하는 함경도 가축시장에서 소, 말, 낙타 1200여두가 교역되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2.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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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93호, 양력 : 12월 2일, 음력 : 11월 6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조선시대 외국과의 공식적인 교역이나 이를 위한 시장을 개시(開市)라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 후기 청(淸)나라와의 무역을 위해 함경도 회령(會寧)과 경원(慶源)에서 열렸던 북관개시(北關開市)를 들 수 있으며, 조선 초기 태종(太宗) 대에 경성(鏡城), 경원에 여진족을 위해 무역소(貿易所)를 설치하고 교역을 허락한 것이 시초로 당시 이들은 우마(牛馬)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와 조선쪽에서는 소금과 철 등을 바꿔간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후 인조(仁祖)대 정묘호란(丁卯胡亂) 직후부터 청나라가 조선에 강요해 회령을 개시했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계기로 한 때 중단되었으나, 이후 흑룡강성 영안시(寧安市)에 있던 영고탑(寧古塔)의 사람들이 청나라 호부(戶部)의 표문(票文)을 가지고 와서 농기구를 무역해 가면서 회령개시가 재개되었습니다.

회령개시에서는 매년 양국 관리의 감시 아래 일정한 수량에 한정해 교역을 허락하는 공무역을 하였으나, 부수적으로 사무역(私貿易)도 이루어졌으며 점차 번창하여, 중국에서는 봉천·북경 등지의 상인들까지 모여들었고, 조선에서는 함경도 지방 상인을 중심으로 한양 등지에서도 모여들어 교역하였으며, 시기는 봄·가을 또는 겨울에 열렸으나 효종(孝宗)대 부터는 동지 이후로 결정되었습니다.

개시가 열리면 청나라에서는 통관(通官)을 파견하고 해당 지역의 관헌들도 상인이나 축마(畜馬)를 이끌고 왔는데, 이들이 머무르는 동안 접대 및 사료 등을 조선에서 부담하자, 교역하러 오는 인원이 해마다 늘어 관민 600여인, 소·말·낙타가 1,150여필에 달할 때도 있었으며, 체류 기간도 80∼90일에 이르러 조선의 부담이 가중되었습니다.

또한, 인조(仁祖) 대에는 회령외에 경원에서도 청나라와 무역이 시작되었는데, 여진족인 암구뢰달호호(巖丘賴達湖戶)의 사람들이 경원에 와서 농기구를 무역해 간 것을 계기로 격년제로 무역이 실시되어, 청나라 사람들은 소록피(小鹿皮)를 가지고 와서 소(牛), 농기구인 보습, 솥 등과 교환하였고, 교환 비율은 보습 1개에 소록피 2장, 솥 1개에 소록피 1장 이었으며, 사무역은 일체 금하였으나, 점차 민간 상인에 의한 밀무역도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회령개시는 처음에는 매년 열렸으나 뒤에 격년제의 경원개시(慶源開市)가 열리면서, 회령에서 단독으로 열리는 것을 단개시(單開市),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것을 쌍시(雙市)라 하였으며, 이를 총칭해 북관개시 또는 북도개시(北道開市)라 하였고, 조선에서는 정6품의 무관인 북평사(北評事)가 통할 관리 하였습니다.

한편, 북관 개시에는 공시(公市), 사시(私市)외에 마시(馬市)도 개설되었는데, 마시는 조선의 우마와 청마를 교역하던 가축시장으로 청인들이 귀환하기 전 1~2일 동안 열렸으며, 조선에서는 어승마(御乘馬)와 전마(戰馬)로 사용할 청마를 주로 구입하였고, 청나라는 조선의 농우와 잘 달리지는 못하나 짐을 무겁게 짊어지고 멀리갈 수 있는 과하마(果下馬)인 북마(北馬)를 구입하였습니다. 또한 초기에는 청마와 북마 혹은 조선 농우의 교환비율이 조선에 지나치게 불리하여 문제가 되었으나 이후에 만주에서 말의 번식이 극성해지면서 더 이상 북마 유출 문제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337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여러 도(道)에서 소의 돌림병이 번져서, 죽은 소가 수천마리나 되었으므로 우의정이 몇 해를 한정하여 개시(開市)에서 소의 매매를 허락하지 말 것을 청하자, 청나라의 예부(禮部)에 자문(咨文)을 보내는 것을 사신 일행인 절사(節使)의 행렬에 부쳐 보낸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숙종실록 13권, 숙종 8년 11월 6일 기유 기사 1682년 청 강희(康熙) 21년

청나라에서 우리 나라의 주문 가운데 임금의 휘를 쓰지 않은 것을 트집잡다

(상략) 이때에 이르러 민정중(閔鼎重)이 청대(請對)하여, 절사(節使)에 딸려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자, 마침내 사은 문서(謝恩文書)와 방물(方物)을 김석주(金錫胄)에게 부쳐 보냈다. 이때 여러 도(道)에서 소의 돌림병이 번져서, 죽은 소가 수천마리나 되었으므로 민정중이 몇 해를 한정하여 개시(開市)에서 소의 매매를 허락하지 말 것을 청하여, 청나라의 예부(禮部)에 이자(移咨)하는 것도 아울러 절사(節使)의 행렬에 부쳐 보냈다.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8장

【주】

절사(節使) : 명절에 보내는 사신.

개시(開市) : 우리 나라와 청(淸)나라의 무역을 위해 회령(會寧). 경원(慶源)에 둔 시장.

이자(移咨) : 자문(咨文)을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