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역사 속으로13] 굴곡진 한우사육의 근현대 역사2
[팜 역사 속으로13] 굴곡진 한우사육의 근현대 역사2
  • 옥미영 기자
  • 승인 2018.06.22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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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시장 개방, FTA와 광우병 혼란의 2000년대
2001년 4월 인천항으로 들어온 호주산 생우. 수입개방 조치 이후 첫 국내에 상륙한 호주산 생우는 농가들의 반발과 블루텅별 발생으로 농가에 입식되지 못하고 농협에 전량 수매돼 도축됐다.
2001년 4월 인천항으로 들어온 호주산 생우. 수입개방 조치 이후 첫 국내에 상륙한 호주산 생우는 농가들의 반발과 블루텅별 발생으로 농가에 입식되지 못하고 농협에 전량 수매돼 도축됐다.

한우협회가 2001~2002년 전국에서 전개한 호주산 생우에 대한 수입 및 입식 반대운동은 한우농가들을 협회 중심으로 결집시키는데 성공했으며, 결국 생우 수입업체는 수입포기를 선언했다. 1980년대 중반 1백 만호에 달했던 한우사육농가는 산업의 최대 위기를 겪으며 3분1로 줄어 29만호로 암울한 새천년시대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과 2002년 잇달아 구제역까지 발병해 한우산업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1년 한우산업발전종합대책을 수립해 송아지생산안정제(2000년 7월 전국 실시), 다산장려금 제도 도입(2001년 1월), 거세장려금 실시(2000년 7월), 한우자조금제도 도입(2005년)에 이르기까지 꺼져가는 한우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했다.

쇠고기 전면 시장 개방은 한우농가와 산업에 닥친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막상 한우산업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한우산업의 가장 큰 열세는 수입쇠고기와의 가격적인 문제였으나 2001년 생우와 수입쇠고기 전면 개방 이후 수입량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한우가격은 급등 추세를 보인 것이다. 한우농가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한다면 한우시장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붙기 시작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과 품질을 중시여기는 소비성향은 2003년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2003년 미국의 광우병 발생 직후 쇠고기 소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2003년 말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직후 수입량이 급격히 감소했음에도 한우가격은 급격한 하락을 보였다.

이후 한우농가들은 품질고급화에 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한우 자조금 도입과 함께 한우의 우수성을 소비자들에게 적극 어필하면서 시장 차별화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소비자들이 소비에 부응하며 생산기반도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불안은 또다시 먼 나라 미국으로부터 날아들었다.

2008년 가을 두 번째 외환위기로 환율이 폭등해 사료 값이 크게 뛰어 농가 경영을 압박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첫 번째 외환위기(97년) 당시는 소 사육두수 과잉으로 농가 경영이 크게 어려웠던 반면, 2008년은 소 값이 안정된 상태였기에 생산비 증가분을 소 값 상승분으로 상쇄하며 농가들이 이를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선 6월에는 광우병 파동으로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서 한우산업은 ‘미국발 광우병 소용돌이’속으로 급격히 빠져들었다. 미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대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내어준 조공협상이라는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타오른 촛불집회가 꺼질 줄 모르면서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까지 부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해 국민들이 원산지를 파악해 소비할 수 있기 위한 ‘육류음식점원산지표시제’가 그 해(2008년) 7월부터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에서 적용되면서 한우산업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투명한 유통환경의 틀을 갖추게 됐다.

당초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까지 수입키로 한 정부의 무분별한 수입 협상 역시 한우산업에는 외려 보탬이 됐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은 결국 30개월령 이하의 쇠고기에 한해 수입하는 재협상을 얻어냈으며 수입 쇠고기에 비해 한우고기의 안전성과 우수성이 더욱 부각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2000년대 들어 꾸준하게 지속된 한우의 품질고급화 노력으로 수소의 거세율은 2003년 27.9%에서 2008년 67.8%로 늘었고, 이에 따라 1등급이상 출현율도 33.3%에서 54.0%로 끌어올리는 고급화를 이뤄나가며 한우고기의 차별화된 시장을 지켜나갔다.

언제나 남거나 혹은 모자라거나…한우산업 새로운 길을 묻다

2010년 1++등급 한우가격은 도매시장에서 kg당 2만원을 넘어서는 등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한우산업은 전성기에 오른 듯 했다.

시장에서의 확실한 차별화와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쇠고기 생산이력제, 자조금 도입 등 각종 정책적 지원과 제도가 힘을 얻어 예상치 못했던 한우고기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면서 높은 가격이 지속됐던 한우산업은 2012년 300만두를 넘어서면서 또다시 위기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비프사이클을 거듭한 것처럼 도매시장에서의 한우가 격은 2010년 정점을 찍은 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2011~2014년까지 끝도 없는 내리막길을 걸어야만 했다.

결국 정부는 2012년 한우암소 도태장려금 지원 예산 300억 원 을 확보해, 또다시 암소 도축으로 수급조절에 나섰다. 이와 함께 165만원 밑으로 송아지 값이 떨어지면 가격을 보전해줬던 송아지 생산안정제도 역시 공급 과잉을 유발하는 제도로 지목하고, 가임 암소 두수와 연계하는 것으로 대폭 수술했다.

소 값 하락에 따른 농가의 경영상 어려움과 한미 FTA 협상 발효(2012년 1월 1일) 그리고 이에 따른 한우농가의 폐업지원금 지급(2013~2014년)은 한우농가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했다. 2010년 말 17만호에 달했던 한우농가는 시장의 각종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5년간 약 7만 농가가 산업에서 밀려나면서, 결국 2015년 말에는 한우농가는 10만호 선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폐업 농가들의 희생을 딛고 다시 일어선 한우산업은 사육두수 조절로 2015~2016년 중 반까지 가격 회복과 함께 회생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생산과잉으로 소 값이 하락하면서 전국 각지에서는 소 값 회복을 위한 한우농가들의 집회와 기자회견이 연달아 열렸다. 사진은 2013년 8월 음성공판장에서 열린 소 값 회복 촉구를 위한 한우인 총궐기대회 모습.
생산과잉으로 소 값이 하락하면서 전국 각지에서는 소 값 회복을 위한 한우농가들의 집회와 기자회견이 연달아 열렸다. 사진은 2013년 8월 음성공판장에서 열린 소 값 회복 촉구를 위한 한우인 총궐기대회 모습.

하지만 2016년 9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인 ‘부정청탁금지법’의 암초를 만나 소비 위축으로 인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우산업은 과도한 사육두수로 가격 폭등과 폭락이 거듭되는 산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산업의 이해 당사자인 한우농가들이 반짝 이익을 누리거나 혹은 경영 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산업에서 내몰리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감내해내며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이 같은 비프사이클은 가격이 오르는 상승기와 가격이 떨어지는 하락기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하지만 정부의 지금까지 수급조절 정책은 모자라면 수입을 늘리고, 많으면 수매하거나 암소를 도축을 촉진하는 식을 수십 년간 되풀이 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 같은 사이클이 또다시 되풀이 된다면 한우산업은 더 이상 산업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때 무려 100만호에 달했던 한우농가 수는 현재 9만여호의 농가만이 살아남아 산업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10~12년을 주기로 늘 소 값 파동이 되돌이표처럼 돌아왔다. 이번 설 명절은 향후 한우산업의 새로운 그림과 수급조절의 틀 을 새롭게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설과 추석 에 맞춰진 한우고기 수급을 연중 소비 구조로 변화시키고 선물세트 등으로 집중 소비됐던 갈비 등의 부위를 어떻게 상시 소비로 전 환할지를 구상해 실천에 옮기지 않을 경우 또다시 물량 공급 과잉이나 부위별 수급 불균형으로 소 값 하락의 깊은 그늘을 지내야 하 게 될 지도 모른다.

특히 김영란법으로 인해 한우전문음식점과 명절 선물세트의 수요가 줄어든 것이 여실히 입증된 만큼 산지 소 값과 농가 경영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적정 사육 마릿수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가 왔 다. 더 이상 암소를 때려잡거나 수매를 통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전 근대적 방식은 더 이상 시장에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구조조정 할 농가도 더는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8만9천호의 한우농가. 우리가 직면한 한우산업의 현 주소다. 이제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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