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 조선 왕실에서 쓰던 말은 서울 뚝섬 목장에서 길렀다.
[605년 전 오늘 - 축산 소식5] 조선 왕실에서 쓰던 말은 서울 뚝섬 목장에서 길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6.22 10: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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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21호, 양력 : 6월22일, 음력 : 5월 9일

조선시대 왕이 거동을 하거나 왕족과 고위 관료 들에게 하사품으로 줄 때 사용하던 말을 내구마(內廐馬)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서울시 광진구 뚝섬 일대에 위치해 있던 왕실 목장인 살곶이(箭串)목장에서 주로 사육되었습니다. 특히 왕의 어승마(御乘馬)와 수레 등을 관리하는 관청을 내사복시(內司僕寺)라고 하였는데, 조선 초기에 관원으로는 정 3품인 내승(內乘) 3명 외에 잡직(雜職)으로 마의(馬醫) 100여명이 근무하였고, 평상시에는 어승마(御乘馬) 30, 재보마(載寶馬) 15, 주마(走馬) 15필을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05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내구마 수를 줄이고 소로 바꾸어 기르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5월 9일 정해 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

의정부에서 축마(畜馬)의 사의를 올리다

의정부에서 축마(畜馬)의 사의(事宜)를 올리고 아뢰었다.

"각도에서 나누어 기르는 번식시킨 구마(駒馬) 가 모두 1백 94필(匹)이니, 바라건대, 내구(內廐)에 충용하게 하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르기를, ‘소(牛)도 길러서 국용(國用)에 이바지함이 마땅하다.’고 하니, 내가 이 말(馬)을 가지고 소로 바꾸어 기르고자 하는데, 그래도 좋겠는가?"

정부에서 아뢰었다.

"희생(犧牲)과 유우(乳牛)가 떨어지면 혹 민가에서 가져다 쓰는데, 많이 소를 기르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법입니다. 원컨대, 양마(良馬)를 택하여 내구에 충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로 바꾸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5장

[註] 의정부(議政府) : 조선시대 모든 관리를 통솔하던 최고의 행정 관서

     구마(駒馬) : 망아지와 말.

     사의(事宜) : 일이 형편에 알맞음.

     내구(內廐) : 궁궐의 마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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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 2018-06-22 16:14:18
한국 축산의 역사를 돌아보게 되는 칼럼이네요 감사합니다 ㅎ

소소 2018-06-22 15:23:26
유익한 기사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