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1] 눈(雪)을 기원하는 기설제(祈雪祭)에는 10일 동안 기른 돼지를 사용하였다
[47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1] 눈(雪)을 기원하는 기설제(祈雪祭)에는 10일 동안 기른 돼지를 사용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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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96호, 양력 : 12월 13일, 음력 : 11월 17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국가 제사 중 정사(正祀)를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구분하였는데, 이중에 가장 등급이 낮은 제사를 소사(小祀)라 하였으며, 풍사(風師), 우사(雨師), 뇌신(雷神), 영성(靈星) 등 자연 현상을 관장하는 신은 물론 명산대천(名山大川)등에 제사를 지냈고, 마신(馬神)에게 지내는 마제(禡祭), 황충의 재해에서 벗어나고자 지낸 포제(酺祭) 등 다양한 제사가 소사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사 중에 한겨울과 초봄에 추위를 관장하는 북방의 신인 현명(玄冥), 또는 현명씨(玄冥氏)라고도 불리는 사한(司寒)에게 향사(享祀)하던 것을 사한제(司寒祭)라 하였는데, 사한제는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원하는 기온(祁溫), 날씨가 추워지기를 기원하는 기한(祁寒),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설(祈雪) 및 순조롭게 얼음을 저장하고 이용하는 장빙(藏氷), 개빙(開氷) 등을 위해 거행하던 제사로, 제사를 지내는 날짜가 정해진 것은 없었으나, 음력 12월인 계동(季冬)에 얼음이 얼기 시작할 때와 춘분(春分)에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에 사이에 길일을 택하여 지금의 서울 옥수동 일원의 남교(南郊) 사한단(司寒壇)에서 거행하였습니다.

사한제를 시행하는 절차는 향관(享官)이 3일 동안 재계(齋戒)를 시작으로, 향사 1일 전부터 제례에 필요한 각종 물품과 시설물을 진설하고, 향사 1일 전의 희생 제물을 살피는 성생기(省牲器), 향사 당일 헌관이 잔을 올리는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복주를 나눠 마시는 음복(飮福), 과일이나 마른 음식을 담는 제기인 변(籩)과 육류, 생선, 포(脯)등을 담는 두(豆) 등 제기를 하나씩 옮겨 두는 철변두(徹籩豆)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한제는 기우제, 기설제, 기청제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농사의 풍년을 기구하고, 자연 이변으로 야기되는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식으로, 특히 제사에 쓰이는 희생은 전생서(典牲署)에서 10일 동안 기른 돼지만을 사용하였으며, 음악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478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전교하기를, 제사는 나라의 대사(大事)로 희생(犧牲)이 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제사에 적합하지 못한 것인데, 병이 전염되어 많이 죽으니, 이는 제사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소치로, 모든 제향관(祭享官)과 제구(祭具)에 삼가지 않고 정결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다시 살피도록 하면서, 겨울이 반이나 지나도록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고 섣달 눈도 기약할 수 없으니, 농사를 위해 기설을 하는 것도 무방할듯하다 고 하였습니다.

 

■중종실록 96권, 중종 36년 11월 17일 기해 기사 1541년 명 가정(嘉靖) 20년

제사의 희생이 죽어가는 일에 대해 제향관과 제구가 정결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살피게 하다

대신에게 전교하였다.

"제사는 나라의 대사(大事)이기에 희생(犧牲)이 살지지 않은 것만도 제사에 적합하지 못한 것인데 더구나 계속해서 병들어 죽는 것이겠는가. 근래에는 옮겨서 기르고 있지만 병이 전염되어 많이 죽으니, 어찌 그 이유가 없겠는가. 이는 반드시 제사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소치이다. 모든 제향관(祭享官)과 제구(祭具)에 삼가지 않고 정결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다시 더욱 살피도록 하라.

그리고 수재(水災)와 한재(旱災) 가운데 한재가 더욱 농사에 큰 해를 끼치는데 금년에 봄부터 여름까지 가뭄이 더욱 심했던 것은 지난 겨울에 눈이 오지 않아 땅을 적셔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겨울이 반이나 지나도록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고 섣달 눈도 기약할 수 없다. 만일 내년에도 금년처럼 가물면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니,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우리 나라에는 기설(祈雪)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의논이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모든 일은 천조(天朝)의 일을 모방해서 하니, 농사를 위해 기설을 하는 것도 무방할 듯하다. (중략)

나는 일찍이 정사(政事)에 부지런할 것을 생각하고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이처럼 의논하여 번거로움을 따지지 않는다. 경들도 국사를 걱정하여 위아래가 모두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 대신들이 빈청(賓廳)에 모여 이것을 의논하도록 하라."

【태백산사고본】 49책 96권 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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